두 특위 개최 성공
국회 본관의 분위기
한국당의 총력 저지
김관영 원내대표의 승부수
바른미래당 특위 위원 4인만 설득
바른정당계와 국민의당계 포기
민주평화당의 존재감 과시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결국 가결까지 길고도 길었지만 완료됐다.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국회 본관 정무위원회 회의실(604호실), 사법개혁특별위원회는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실(506호실)에서 전체회의가 열렸다. 

29일 22시50분 두 특위가 개최됐는데 기표소도 마련됐고, 위원들도 모두 입장했고, 의결정족수도 채워졌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필리버스터(의사진행을 고의적으로 방해하는 합법적 수단)에 온 힘을 쏟았다. 온갖 감정적 비난 발언을 쏟아냈다. 정개특위는 비교적 조용했지만 사개특위에서는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 한국당 의원들이 곳곳을 둘러싸고 “헌법 수호! 독재 타도!”를 외쳤다. 

장제원 의원(오른쪽)이 심상정 정개특위 위원장(왼쪽)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4당(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준연동 전국 권역별 비례대표제·선거 연령 18세 하향 등) △검경수사권조정안(검찰청법·형사소송법) △공수처법(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법 2건)을 패스트트랙(지정하고 330일 이후 본회의 표결)에 올리기로 합심했다.

하지만 한국당은 극렬하게 반대한다. 게임의 룰인 선거법을 합의없이 밀어붙이면 안 된다는 주장, 공수처로 야당 의원들을 탄압할 것이라는 우려 등 수없이 반복했지만 4당 입장에서는 각각의 이유로 두 제도를 꼭 관철시켜야 했다. 소수 3당(바른미래당·평화당·정의당)은 승자독식 선거제도 하에 되풀이 되는 거대 양당 중심의 대결 정치체제를 타파해야 하고, 민주당은 20여년을 끌어온 숙원 사업이자 고위층의 부정부패를 공정하게 수사할 공수처를 꼭 도입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지난 25일·26일과 같이 29일에도 치열한 수싸움이 횡행했고 국회 분위기는 을씨년스러웠다. 한국당 측 인사들(보좌관 및 당직자)은 민주당의 움직임을 중심으로 염탐한 뒤 동선을 보고했다. 정의당은 자기 회의실에서 작전 회의를 짜면서 대기했고, 평화당은 21시 의원총회를 열고 마지막 고심을 나눴다. 민주당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장에서 의원총회를 열고 작전을 모의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한국당 쪽 인사가 민주당 상황을 파악하고 다른 데로 가서 전화를 해서 동선 보고를 올렸다. (사진=박효영 기자)
4당의 사개특위 위원들이 예결위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정개특위 회의실로 자주 쓰였던 행안위 회의실(445호실)의 모습. (사진=박효영 기자)
정개특위 회의실로 자주 쓰였던 행안위 회의실(445호실)의 모습. (사진=박효영 기자)

21시55분에는 두 특위 소속 타 정당 의원들이 예결위 회의장으로 집결했다. 22시20분이 되자 이상민 사개특위 위원장을 필두로 특위 위원들이 회의장을 나섰고 한국당 의원들이 스크럼을 짜고 있는 220호(사개특위 회의실로 주로 사용)와 445호(행정안전위원회 회의실로 정개특위 회의 주로 개최)로 갔다가 막혔다. 그러나 미리 짜둔 플랜대로 정무위와 문체위 회의실로 향했고 회의가 열리게 됐다.

한국당 의원들의 필리버스터가 무르익자 23시30분 즈음 이 위원장은 패스트트랙 지정 표결에 들어가기 위한 의사진행을 시작하려 했고 몇몇 흥분한 의원들이 위원장석으로 다가와 방해했다. 이 위원장은 경위권을 발동시켜 접근을 막았다. 23시58분 즈음 이 위원장은 4개 법안에 대한 패스트트랙 지정 가결(찬성 11표)을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렸다. 한국당 의원들은 국회법상 공식 회의를 방해하면 명백한 형사처벌 대상이라 물리적 저지를 할 수 없었고 표결 직전 집단 퇴장했다. 그리고 회의실 밖에 드러누워 “오늘 민주주의는 죽었다”는 현수막을 덮고 “독재 타도!”를 목이 터져라 외쳤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상민 사개특위 위원장(왼쪽)을 향해 항의하고 있는 한국당 의원들. (사진=연합뉴스 제공)

23시50분 즈음 심상정 정개특위 위원장은 패스트트랙 지정 표결 절차에 착수했고 한국당 정개특위 간사인 장제원 의원이 위원장석으로 다가가 “위원장님 이런 식으로 선거제도를 처리할 겁니까?”라며 무한 반복했다. 장 의원은 계속 말을 쏟아냈고 심 위원장은 무시하고 검표 위원 선정 등 표결 실무 절차들을 빠르게 설명하고 산회를 선포했다. 30일 자정이 넘는 즉시 차수 변경을 해서 표결에 들어가기 위해서다. 장 의원은 평소 소신대로 대결 정치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선거제도 개정과 분권형 개헌 동시 논의를 마지막으로 호소했다. 김재원 한국당 의원은 투표소 안에 들어가 시간을 끄는 방식으로 끝까지 방해 공작을 펼쳤다. 마침내 0시36분 즈음 심 위원장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대한 패스트트랙 지정 가결(찬성 12표)을 선포했다.

사실 한국당의 물리적 저지는 한 두 번은 몰라도 지속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관건은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바른미래당이다. 

김관영 원내대표는 이번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서 가장 열심히 노력했고 뛰어다녔다. (사진=박효영 기자)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흔들리는 4인(김동철·김성식·임재훈·채이배)의 마음을 다잡기 위해 승부수를 던졌다.

바른미래당 내 ①국민의당계(김삼화·김수민·김중로·신용현·이동섭·이태규)와 ②바른정당계(정병국·지상욱·하태경·오신환·유의동·유승민·이혜훈·정운천) 모두 25일 오후 김 원내대표가 사개특위 위원이었던 권은희 의원에 대한 사보임(사임과 보임)을 단행하는 걸 목격하고 이건 아니라는 입장으로 하나가 됐다. ②은 선거제도 개정안 자체를 패스트트랙으로 올리는 걸 반대하는 입장이라 거듭 김 원내대표를 압박했지만 ①까지 권 의원에 대한 사보임을 계기로 가세하자 4인마저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25일에는 한국당의 육탄 방어로 물건너갔다면 26일은 4인의 불참으로 인해 패스트트랙 지정에 실패하고 한 주를 넘겼다.

그러자 김 원내대표는 29일 아침 최고위원회의에서 권 의원이 성안한 공수처법을 발의하고 4당 원내대표가 합의한 공수처법과 함께 패스트트랙에 올리자고 새로운 카드를 던졌다. 당연히 김 원내대표는 주말 내내 4인과 함께 깊이 고민하고 패스트트랙 동참에 대한 확답을 받고 카드를 던졌다. 

①은 당사자 의사와 무관한 사보임에 대한 반대 의사가 사그라들지 않았고 ②은 패스트트랙 스톱을 촉구하고 있어서 김 원내대표의 노림수는 오직 4인을 설득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볼 수 있다. 

일단 민주당의 의사가 중요한데 의총 끝에 권 의원의 공수처법까지 패스트트랙에 올리기로 수용했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29일 안에 모든 패스트트랙 절차를 완료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1년 전부터 선거제도 개혁에 주도적이었던 평화당이 느닷없이 두 공수처법을 패스트트랙에 올리는 방향에 제동을 걸었다. 

하태경 의원이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한 두 공수처법 비교. (자료=하태경 의원실)

권 의원의 공수처법은 크게 △수사 대상을 고위공직자의 ‘부패’ 범죄로 국한 △공수처장에 대한 임명 동의권을 국회에 부여 △공수처장에게 인사권 부여 △공수처가 판사·검사·경찰 경무관급 이상에 대한 기소권을 행사하되 기소심의위원회를 거치도록 하는 것 등이다. 

4당의 공수처법 합의안은 △수사 대상을 고위공직자의 전체 ‘범죄’ △대통령에게 공수처장 하위 직급에 대한 인사권 부여 △공수처가 판사·검사·경찰 경무관급 이상에 대한 기소권 행사 등이다. 

(사진=박효영 기자)
고심 끝에 패스트트랙에 동참하기로 밝힌 장병완 평화당 원내대표. (사진=박효영 기자)

분명 내용상 온도차가 있긴 있다. 장병완 평화당 원내대표는 특위 18명 정원 중 5분의 3 이상(11명)이 찬성해야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어떻게 다른 내용의 두 법안이 올라갈 수 있느냐고 절차적 하자를 제기했다. 무엇보다 특정 정당의 특정 의원이 4당 합의안과 견해가 다르다고 별도 법안을 동시에 올릴 수 있느냐는 것이다. 

박주현 평화당 수석대변인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워낙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우리를 투명인간으로 보니까”라며 존재감 부각 차원의 마지막 액션이라는 점을 암시했다. 

결국 21시50분 즈음 장 원내대표는 의총을 마친 직후 기자들에게 “오늘 패스트트랙 처리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며 “선거제도 개혁없이 민생 개혁 없고 국회 개혁이 없다는 중차대성에 비춰봐서 우리는 그토록 선거제도 개혁에 맨 먼저 앞장섰고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대의명분으로 결정했지 우리 당의 유불리 여부를 논의하고 이 문제에 대해서 임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장제원 의원의 거센 항의에 응대하고 있는 심 위원장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심 위원장은 지정을 완료하고 “죽어가는 정치 증오의 정치를 바꾸는 희망의 방망이를 두드렸다. 그동안 양당의 선거제도 합의는 개혁을 하지 말자는 합의였다. 이번만큼은 의회 민주주의를 살려야 한다는 사명감에서 선거제도 개혁을 추진해왔다. 선거제도 개혁은 미션 임파서블이라고 했다. 가능하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은 정치인의 소명이다. 한국당을 포함해서 5당이 합의로 선거제도 개혁을 이루자는 여야 4당의 의지의 산물이다. 한국당은 앞으로 선거제도 논의에 적극 참여해주길 바란다”고 말하고 산회를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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