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원리에 반한다고?
문무일 총장이 반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
수사지휘권 폐지와 수사종결권 부여
그럼에도 기소와 수사는 분리돼야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문무일 검찰총장이 패스트트랙(지정하고 330일 이후 본회의 표결)에 오른 검경수사권조정안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그러나 선출되지 않은 검찰 권력이 민의를 대변하는 입법부에 의해 권한 조정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반박이 제기됐다. 

문 총장은 1일 오후 대검찰청 대변인실을 통해 입장문을 내고 “(검경수사권조정안에 대해)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리에 반한다”며 “검찰총장으로서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경찰이) 특정한 기관에 통제받지 않는 1차 수사권과 국가 정보권이 결합된 독점적 권능을 부여받았다. 올바른 형사사법 개혁을 바라는 입장에서 이러한 방향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검경수사권조정안에 대해 불만을 드러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4월29일 밤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서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검경수사권조정안(형사소송법·검찰청법)과 공수처법(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2건은 모두 기존 검찰의 무소불위 권력을 덜어내고 견제하는 내용이다. 검찰의 수장인 문 총장이 당연히 불편해할 수밖에 없다고 보여지지만 조직 이기주의의 발현을 민주주의의 원리로 포장한 것이라는 비판이 가해지고 있다.

민주주의 논리로 봤을 때 권력기관 간의 권한 조정 자체를 논하기 전에 주권자인 국민 대다수의 권익이 우선돼야 하기 때문이다.

김홍걸 위원장(더불어민주당 국민통합위원회)은 페이스북을 통해 “민주주의에 반한다? 그럼 검찰이 견제받지 않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는 것이 민주주의인가”라고 의문을 표했고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도 페이스북에 “검찰총장이 자기 조직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국회에서 개혁 입법을 하는데 딴지를 거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 원리에 반한다”고 비판했다. 

하 위원장은 “검찰은 국민이 선출한 조직이 아니기에 국민이 선출한 국회에서 입법을 통해 통제하고 필요하면 권한도 조정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검찰이 그동안 잘 해왔으면 왜 국민들이 검찰 개혁에 박수를 보내겠나. 못 했니까 국민들이 공수처 설치 등 검찰 개혁을 지지하는 것이다. 이런 민심을 받아 국회가 검찰 개혁 입법을 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 원리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공수처 설치에 대한 국민 여론은 80%에 육박한다.

문 총장이 향후 사퇴를 하게 될지 아니면 국회의 논의 결과를 받아들이게 될지 주목된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물론 문 총장이 반발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기존에 검찰은 △수사권 △수사지휘권 △영장청구권 △기소 독점권 등 막강한 권한을 전부 보유하고 있었다. 

만약 법률이 바뀌어 수사권이 조정되면 △검찰의 수사 가능 대상(부정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 범죄 등) 축소 △검사의 경찰 수사 지휘권 삭제 △경찰에 1차 수사 종결권 부여 △경찰이 사건을 수사하고 검찰에 송치하지 않는 것도 가능 △검찰의 피의자 신문 조서(영상녹화 등)에 대한 효력을 경찰 신문 조서 수준으로 격하(피고인 거부시 증거 능력 무용) 등이 현실화된다.

좀 더 구체적으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보면 △검사의 사법 경찰에 대한 보완 수사를 요구할 수 있음 △사법 경찰의 수사권 남용이 의심될 경우를 대비해 검사가 사건기록 등본 송부·시정 조치·사건 송치를 요구할 수 있음 △경찰이 영장을 신청한 것에 대해 검사가 정당한 이유없이 영장을 청구하지 않을 경우 고등검찰청 영장심의위원회(외부위원으로 구성) 심의를 신청할 수 있음 등이 있다.

공수처가 생기면 검찰의 기소독점권이 견제되고 여론의 주목을 받는 고위공직자(검사·판사·경무관급 이상 경찰)에 대한 수사와 기소는 공수처에 넘어가게 된다.

그래서 문 총장은 작년 11월9일 열린 사개특위 전체회의에 출석해서 “경찰에 수사 종결권을 부여하는 것은 법률 판단의 영역인 소추(기소) 여부에 대해 결정권을 부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매년 4만명 내외에서 경찰의 수사 결론이 검찰 단계에서 변경되고 있다는 점도 고려돼야 한다”며 “현대 민주국가 중에서 법률로 검사의 수사를 금지하거나 수사 범위를 제한하는 나라는 없다”고 항변했다. 

문 총장의 반발이 이해되지만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검찰이 직접 수사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기소와 수사의 분리가 대원칙으로 자리잡고 있다. 물론 홍콩의 ‘염정공서’와 싱가포르의 ‘탐오조사국’이 수사권만 갖고 있는 것과 달리 한국형 공수처는 기소권까지 갖고 있어 향후 더 많은 논의를 통해 논리적 정합성과 보완이 요구된다.

문 총장이 민주주의를 내세운 명분에는 검찰이 경찰의 일반 수사권에 대해 지휘를 하지 못 하면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대목이 있다. 법률가의 수사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 총장은 “검찰의 사법 통제가 폐지되면 경찰수사 과정의 인권 침해나 수사상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를 즉시 바로잡는 것이 어렵게 된다”며 “사법 경찰이 국내 정보를 독점하는 상황에서 수사에 대한 사법적 통제까지 해제하게 되면 경찰 권력이 과도하게 비대해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는 수사의 효율성이 강조됐다면 민주주의가 성숙한 오늘날에는 수사의 적법성이 강조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범죄 진압은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하되 수사는 신중하고 적법하게 이뤄져야 한다”며 “독일, 프랑스, 일본, 영국, 미국 등 현대 민주국가 가운데 경찰 수사에 대해서 민주적 통제나 사법 통제를 모두 배제하는 나라는 없다. 검사의 수사지휘 제도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5개국 중 28개국의 법률에 명시된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제도”라고 역설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대한민국의 법치를 이끌어가는 주요 수장들. 4월25일 열린 56회 법의날 기념식에서 참석한 법무 분야 주요 수장들의 모습. 왼쪽부터 문 총장, 박상기 법무부장관,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김명수 대법원장, 이찬희 대한변협 회장. (사진=연합뉴스 제공)

문 총장은 자치경찰제로 중앙집권화된 경찰 권력의 힘을 뺀다면 모를까 현 상태에서 검경수사권조정을 섣불리 하면 안 된다고 우려했다. 

이를테면 “앞으로 실효적인 자치경찰제가 시행되면 자치 경찰의 수사에 대해서는 민주적 주민 통제를 우선하고 검찰의 사법 통제는 필요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중앙집권적이고 민주적 통제가 약한 국가 사법 경찰에 대해서는 검사의 사법 통제를 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여야가 패스트트랙 과정에서 상호 고소고발을 남발했는데 그걸 수사해야 할 주체의 수장이 4당(민주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의 공조 법안에 노골적으로 반대 의사를 드러낸 게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일었다. 패스트트랙 자체에 결사항전 태세인 한국당에게 결과적으로 힘을 실어줬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문 총장이 문재인 대통령과 여권에 반기를 드는 모양새가 됐는데 향후 과거의 사례처럼 사퇴를 하게 될지는 미지수다. 이명박 정권 때인 2011년 7월 김준규 전 검찰총장은 경찰에 독자적인 수사 개시권이 부여되자 항의하는 의미로 사퇴했다.

문 총장은 현재 사법 공조를 다지기 위해 아시아 국가(오만·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스탄)로 출장을 갔는데 9일 돌아오면 법안 논의 과정에서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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