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인근의 백화점 내에서 무료함을 달래는 노인들 (사진=신현지 기자)
집 인근의 백화점 내에서 무료함을 달래는 노인들 (사진=신현지 기자)

[중앙뉴스=신현지 기자] 서울 중심의 한 백화점, 1층 로비를 지나 매장 안으로 들어서자 여기저기 의자에 우두커니 앉은 할머니들 모습이다. 앉은 할머니들은 멍한 시선으로 들고나는 고객들을 이모저모 시선으로 따라 붙는다.

그 중에는 꾸벅꾸벅 졸고 있는 할머니도 있다. 그 모습으로 봐 백화점 쇼핑고객은 아닌 게 분명하다.구로구 거주 김순덕(87세)할머니, 김 할머니도 오전부터 백화점에 나와 피곤이 몰려오는 눈빛으로 기자의 물음에 웃는 모습으로 받는다.

김 할머니가 이렇게 백화점 나들이를 시작한 건 지난 해 여름, 폭염을 피하면서부터다. 현재는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 들어앉은 아들 며느리 눈치가 보여 일부러 나온 것이고. 어쨌거나 김 할머니에게 무료한 시간 보내기는 백화점만한 곳이 없다는 답이다.

“아들 며느리 직장 다닐 때는 집도 봐주고 살림을 하고, 또 손주들이 어릴 때는 애기들 봐주고. 그럴 때는 몰랐는데 손주들도 커버리고 아들 며느리도 퇴직해서 집에 있으니 눈치가 보여, 그래서 일부러 나오는 날이 많아, 가들 편하라고 나오는 거지. 나랑 있으면 아무래도 며느리가 불편하잖아. 

사람이 그리워 행상에 나서기도 한다(사진=신현지 기자)
혼자있기 적적해 행상을 나서기도 한다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사진=신현지 기자)

그래서 경로당에 가기도 하는데 거기는 별로 재미가 없어, 할매들이 서로 자식자랑에 돈 자랑에 내 속만 시끄러워, 나랑은 안 맞아. 그네들 자랑 들어주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여기 오면 사람구경도 하고 물건 구경도 하고, 매일 보는 거라 좀 시들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시간 보내기는 여기가 젤 나아, 깨끗하고 춥지도 않고, 또 여름에는 시원하고.”   

백화점 부근에 홀로 사는 최모(86세) 할머니도 대부분 오후시간은 백화점에 나와 사람 구경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여기 나와도 특별히 재미는 없는데 그래도 혼자 집에 있는 것보다는 나아, 젊어서는 안 그랬는데 늙으니 사람 많은 곳이 좋아, 혼자 있으면 외롭고 맘도 자꾸 서글퍼지고. 여기 나오면 말동무도 생기잖아, 그런데 여기 일하는 사람들 눈치가 보여서 좀 그렇긴 해.”  

이렇게 말하는 최모 할머니는 몇 년 전만 해도 친구들과 지하철을 이용해 온천여행을 즐겼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기력이 없어 가까운 경로당이나 백화점 출입이 유일한 나들이란다. 지난겨울에는 난방을 아끼기 위해서 종일 경로당과 백화점을 오가며 겨울을 보냈더니 난방비가 절약되어 좋았다고.

또 사람들 만나는 게 좋아 가끔은 지하철 역사 안에서 야채를 팔기도 한다고, 떨어져 사는 아들 가족이 보고 싶을 때도 이렇게 사람들 구경하고 있으면 그리움도 삭혀진단다.

“요즘 세상은 애들이 오라고 해야 가는 거잖아, 보고 싶다고 불쑥 찾아갔다가는 주책없는 늙은이라 흉이나 보고, 그렇다고 지들이 자주 들여다보는 것도 아니고, 그냥 부모 자식이라도 각자 사는 거지 뭐, 그러니 사람이 그리워서 여기에 자주 나오게 돼.”

이들 할머니와 나란히 앉은 송모(90세) 할머니는 아침에 나올 때 며느리가 점심값을 챙겨주어 오늘은 백화점 내 식당에서 떡만두국 한 그릇을 사 먹었다고 은근히 며느리 자랑이다. 그러면서도 자꾸 하품이다. 그 모습에 옆에 할머니가 어디 사람들이 뜸한 곳을 찾아 눈을 붙이고 오라고 권유한다.  

이렇게 백화점이나 쇼핑매장 등에서 직원들의 눈총을 받으며 무료함을 달래는 할머니들의 모습은 급속한 고령화 사회로 치달으면서도 미처 여기에 대응하지 못한 노인복지정책의 시급함을 설명하고 있다.

특히 활발한 활동을 해왔던 남성 노인들은 종로 일대나 서울 중심에 마련된 노인 문화시설을 이용한 여가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집안에서 갇혀 지냈던 여성 노인들에게는 여전히 행동의 폭이 좁아 지역마다 노인문화공간의 필요성을 한층 더 강조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13일 김현아 국회의원은 증가하는 노인 인구와 다양한 고령자 주거복지 및 문화 공간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경직된 현행 제도를 개선하는 ‘노인복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 했다.

‘노인복지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따르면 60세 이상의 노인에게 주거시설을 임대해 주거의 편의.생활지도·상담 및 안전관리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편의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고령화시대에 단순히 노인 주거 문제 해결을 넘어 의료, 여가, 문화 등 다양한 복지 수요를 함께 충족시킬 수 있는 방안에 노인들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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