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최봄샘 기자
사진 / 최봄샘 기자

 

꽃벼랑

손택수

 

 

벼랑을 쥐고 꽃이 피네

실은 벼랑이 품을 내어준 거라네

 

저 위에서 오늘도 누가 밥을 짓고 있나

칭얼대는 어린 것을 업고

옥상 위에 깃발처럼 빨래를 내다 말리고 있나

 

구겨진 옷 주름을 몇 번 더 구기면서,

착지 못한 나머지 발을 올려놓으려

틈을 노리는 출근버스 창밖

 

찡그리면서도 꽃은 피네

실은 찡그림마저도 피어나 꽃이라네

 

 

-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창비, 2014)

--------------------

  세상이 온통 요지경으로 시끄러워도 계절은 어김없이 제자릴 찾아오고 가고 또 온다.

세상의 수레바퀴는 누가 돌리는 것일까? 벼랑에서도 가시덤풀 속에서도 피어나 본분을 다 하는 꽃들이 굴리며 가는 것이다. 시인은 현실이 아무리 찡그릴 일 뿐일지라도 저마다의 사명을 다하는 꽃과 벼랑의 이미지를 통해 보여준다. 어린 것을 업고 옥상에 빨래를 너는 가난한 엄마의 손과 만원 버스에 몸을 싣고 일터로 나가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꽃을 보는 시인의 눈 역시 꽃이다. 섬세하게 관찰하고 숨은 의미를 발견, 사유하는 심로, 그것은 시라는 '꽃'을 피워내는 시인의 기본 자질이며 책무이기도 하다.

오늘도 택배상자를 들고 뛰어다니는 분들, 식판을 들고 나르는 이들과 어느 공사장이나 공장 등에서 일하는 이들, 교 혹은 실에 앉아 공부하는 어린 학생들... 열심히 사는 모든 이들이 진정한 꽃이다. 온실 속의 화려한 꽃들보다 벼랑 끝을 잡고 피어나는 이름 모를 작은 꽃들이 더 아름다운 것은 ‘ 불구하고 극복하는’ 그들의 순수열정이 향기롭기 때문이다. 꽃은 꽃으로서 사람은 사람으로서 저마다의 본분을 다해 삶의 열매를 얻기까지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들이 시대를 이끄는 에너지가 아니겠는가!

잘 다듬어진 정원의 꽃들보다 벼랑을 잡고 비바람 맞으며 피어나는 우리가 더 꽃다운 꽃이다.

아, 사람아! 우리 모두 꽃으로 살자! 그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고달픈 삶일지라도 묵묵히 피워내는 꽃, 사람다운 사람꽃!

 -사람의 향기가 나는 그런 꽃다운 그대가 진정한 승리자입니다.-

[최한나]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