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끝내 ‘구속’ ·· 윤중천 모르쇠 전략 뒤집었지만 ‘인과응보’ 
김학의 끝내 ‘구속’ ·· 윤중천 모르쇠 전략 뒤집었지만 ‘인과응보’ 
  • 박효영 기자
  • 승인 2019.05.17 0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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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소나기 피하려다 6년간 고통
윤중천 계속 모른다고 했다가 인정?
심야 출국 시도 역시 영향 미쳐
먼저 뇌물죄로 구속시키고 성범죄 입증 전략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잠시 법무부 차관을 맡았던 고위 검찰 출신 김학의씨가 결국 감옥에 갇혔다. 김씨는 2013년 초부터 정가에 파다하게 퍼진 별장 성폭행 동영상으로 인해 바로 차관직에서 낙마했지만 죗값을 치르지 않았고 다 덮였다. 그러나 김학의 게이트는 정가 최대의 스캔들로 확대됐고 6년 내내 스스로를 옭아맸다.  

김씨는 구속영장실질심사에서 “모든 게 참담하다”며 “그동안 창살없는 감옥에서 지내온 기분”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구속을 피하진 못 했다. 

신종열 영장전담 부장판사(서울중앙지방법원)는 16일 23시 즈음 김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혐의는 특가법상(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뇌물죄다.

신 판사는 “주요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이나 도망 염려 등과 같은 구속사유도 인정된다”고 밝혔다. 

김학의씨는 6년간 법망을 피해왔지만 결국 구속됐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형사소송법 70조에 따르면 여타 구속 요건(주거불안정·증거인멸·도주우려)을 따지기 이전 대전제로 혐의가 상당 부분 소명됐음을 요구하고 있다. 죄없는 사람을 감옥에 가두면 안 되기 때문에 유죄 입증에 준하는 범죄 혐의 소명을 요구하는 것이다. 즉 신 판사는 김씨의 뇌물 수뢰가 상당 부분 드러났다고 판단했다.

그동안 김씨는 건설업자 윤중천씨(전 중천산업개발 회장)를 전혀 모른다거나 기억이 없다는 식으로 부인해왔다. 하지만 구속의 문턱에서 관계를 시인했다. 사실 두 사람은 강원도 원주 별장 성접대를 비롯 각종 뇌물 관계를 형성해왔다. 수많은 증거들이 없을리 없지만 김씨는 윤씨와의 관계를 인정하는 순간 여러 범죄 혐의들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윤씨가 4월3일 방송된 MBC <스트레이트> 인터뷰를 시작으로 검찰 수사단(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 수사 권고)에 출석해서 연일 여러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을 진술했음에도 김씨는 모르쇠 전략을 고수했다. 또한 김씨는 지난 3월 위장 인물을 내세워서 심야 출국을 시도했는데 법원 입장에서 △증거인멸 △도주 우려 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씨는 16일 13시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영장실질심사에 출석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김씨는 16일 13시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영장실질심사에 출석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김씨의 혐의는 크게 ①윤씨로부터 뇌물 수수(총 1억3000만원에 이르는 명절 떡값·고가 그림·각종 현물 등) ②윤씨로부터 서울 강남 오피스텔 등 성접대 ③사업가 A씨로부터 뇌물 수수(총 3000만원에 이르는 차명폰 지급받고 요금 대납·법인카드 제공) ④2007년 말~2008년 윤씨의 소개로 방문한 별장에서 성폭행 등 4가지다. 

김씨의 성행위 고화질 동영상이 존재하더라도 성폭행 혐의를 입증하는 것은 쉽지 않아서 일단 수사단은 ①②③으로 구속시킨 뒤 ④에 대해 추가 증거를 수집해서 김씨를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는 10일 방송된 tbs <뉴스공장>에서 “검찰의 전략은 만약에 성범죄에 대한 수사 의지가 있다면 뇌물 쪽을 입증해서 구속영장을 청구해서 구속시키고 거기서부터 압박을 해나가는 게 전략이 아니겠는가. 만약 검찰이 의지가 있다면 그 의지가 아직은 확인된 바는 없다. (과거) 영상만으로는 입증하기 어렵다(강제성 유무 파악의 측면에서)는 게 검찰이 꼭 변명을 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법적으로 그런 면이 있을 것이라고 보긴 하는데 일단 의지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밝혔다.

김씨는 2013년 대전고등검찰청 검사장 신분으로 검찰총장 하마평에 올랐다가 탈락했고 숱한 자격 시비가 있었지만 박근혜 정부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지원으로 차관직까지 억지로 올라갔다는 게 정설이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권력의 비호로 죗값을 치르지 않았지만 결국 인과응보를 피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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