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놓고 싸우는 최고위
4.3 재보궐 선거 참패 이후
치열한 노선 투쟁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분명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에 대한 당내 반발은 4.3 재보궐 선거 참패 직후부터 수면 위로 올라왔다. 당 지지율이 5%를 맴돌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재보궐에 공천을 강행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불만이다. 실제 이재환 후보가 얻은 득표율은 3%였다. 하지만 본질은 노선 투쟁에 따른 세력 간의 당권 경쟁이다. 

17일 아침 열린 바른미래당 최고위원회의에서 ①반 손학규파(오신환·하태경·이준석·권은희)와 ②손학규파(주승용·문병호·임재훈)가 정면 충돌했다. 면전에서 사퇴를 촉구하고 상호 비난을 주고받았다.

손학규 대표와 손 대표 퇴진을 외치는 하태경 최고위원과 오신환 원내대표. (사진=연합뉴스 제공)
손학규 대표(가운데)와 손 대표 퇴진을 외치는 하태경 최고위원(왼쪽)과 오신환 원내대표.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날 손 대표 퇴진을 주창하면서 지난 한 달 간 최고위회의 보이콧을 해왔던 최고위원 3인(하태경·이준석·권은희)이 복귀했고, 오신환 원내대표도 선출된 이후 처음으로 참석했다. 김수민 전국청년위원장(당연직 최고위원)은 불참했다. 

사실 패스트트랙(지정하고 330일 이후 본회의 표결) 정국 직후 손 대표에 대한 원성이 김관영 전 원내대표로 옮겨갔고 조기 사퇴를 통한 신임 원내대표가 선출되자 작은 싸움은 봉합됐다. 

하지만 손 대표가 16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계파 패권주의에 굴복해 퇴진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며 “국민이 만들어준 중도개혁 정당 바른미래당이 수구보수 세력의 손에 허망하게 넘어가지 않도록 정치적 명운을 걸고 당을 지키겠다”고 발언한 것이 다시 불쏘시개로 작용했다. 큰 싸움이 바로 펼쳐진 것이다.

손 대표는 16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사퇴는 없다고 못박았다. (사진=박효영 기자)

①은 자신들에 대해 손 대표가 “계파 패권주의”나 “수구보수”로 규정한 것에 대해 강력 반발했다. 

오 원내대표는 “패권주의와 수구보수 표현을 이 자리에서 사과하라”고 몰아붙였고 하태경 최고위원은 “손 대표는 부인하지만 이번 원내대표 선출의 총의는 사실상 손 대표 불신임이고 탄핵 의결”이라고 주장했다.

권은희 최고위원은 백드롭 구호(화합·자강·개혁)를 가리키면서 “자강이 무엇이냐”고 격하게 손짓했고 “의원들이 화합과 자강을 결의한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다. 이것을 깨고 찬물을 끼얹는 발언을 (손 대표가) 왜 하느냐. 이는 (탈당한 이언주 의원의) 찌질하다 발언보다 더 큰 해당 행위”라고 비판했다.

하 최고위원은 손 대표 측근으로 알려진 임재훈 의원이 최고위원 자격이 없음에도 착석하고 있자 “자리를 비워주기 바란다”고 요구했고 손 대표의 지명을 받은 주승용 최고위원(국회 부의장)에 대해서도 “세어보니 존경하는 주승용 부의장께서 지금 저희가 동의하지 않은 최고위원이긴 하지만 과거 민주당에 계실 때 석 달 최고위회의에 불참했던 기록을 깨지는 못 했다”며 기싸움을 벌였다. 주 최고위원은 그 말을 듣고 자리를 떠났다. 

이준석 최고위원은 16일 방송된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거론된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의 파격적인 주장에 대해 지적했다. 박 의원은 손 대표가 평화당 의원들에게 바른미래당 입당을 요청하면서 “유승민을 몰아내자”는 말을 했고 그걸 들었다고 주장했다. 이 최고위원은 그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면 박 의원에 대한 법적 대응을 천명해달라고 손 대표에게 요구했다. 

권은희 최고위원이 하 최고위원의 귓속말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권은희 최고위원이 하 최고위원의 귓속말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손 대표의 지명을 받은 문병호 최고위원은 “바른미래당은 국회의원의 당도 아니고 최고위원의 당도 아니다. 당원들의 당이다. 대표는 당원들이 뽑은 것이지 국회의원들이 뽑은 게 아니지 않은가”라며 “우격다짐으로 대표를 망신주거나 대표를 몰아내기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고 손 대표를 감쌌다.

이어 “(①이) 여러 가지 비정상을 말씀하셨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세 최고위원들이 보이콧하는 게 비정상의 시작이다. 보이콧 안 하고 최고위원회의가 정상적으로 열리고 잘 됐으면 왜 이렇게 비정상적인 일이 벌어졌을까. 내로남불 아닌가. 자신의 허물은 얘기하지 않고 남의 잘못만 탓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오 원내대표는 다시 마이크를 잡고 “손 대표는 당연히 당원들의 전당대회 뜻을 모아서 선출된 당대표다. 하지만 그 외에 선출된 최고위원들이 지금의 문제들에 대해서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27% 정도의 당원들에 의해 뽑힌 당대표가 당을 독단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민주적인 정당인가?”라며 “청년위원장으로 선출된 청년 최고위원(김수민)조차도 같은 뜻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절차적 정당성이 훼손된 지명직 최고위원 또한 손 대표의 아바타로 누구나 지명할 수 있다. 손학규의 당인가? 동의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손 대표 혼자만 남아있는 고립된 상황”이라고 환기했다. 

갈등하는 바른미래당 두 지도부.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날 ①은 △손 대표를 비롯 최고위원단 총사퇴 △손 대표에 대한 재신임 전당원 투표 △문병호·주승용 지명직 최고위원 임명 무효 △공석인 정책위의장과 사무총장 등 당직 임명에 대한 전체 최고위원 과반 동의 의무화 등을 안건으로 올리자고 요구했으나 손 대표는 비공개회의에서 모두 불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손 대표는 정책위의장(채이배)·사무총장(임재훈)·수석대변인(최도자)에 대한 내정을 마쳤고 최고위 의결을 하려고 했지만 무산됐다. 오 원내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지도부 거취를 논의하기 위한 의원 워크숍을 제안한 바 있다.

손 대표는 만신창이 최고위회의 직후 기자들에게 “사퇴하지 않는다. 죽음의 길로 들어섰다”며 절대 물러나지 않을 것임을 재차 공언했지만 오 원내대표는 “(손 대표가) 패권주의와 수구보수 발언으로 선전포고를 했다. 옆에 앉아 웃으면서 아무 일 없다는 듯 넘어갈 수 없다”며 전면전을 지속하겠다고 의사를 표했다.

사실 올초부터 창당한지 1주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낮은 지지율로 부진하자 뭔가 노선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었다. 지난 2월8~9일 경기도 양평 쉐르빌 호텔에서 국회의원 연찬회가 열렸는데 그때 노선 투쟁에 대한 백가쟁명이 도드라졌다. 

일단 ①② 모두 ‘중도’를 지향하자는 것에 대해 동의했지만 ①은 개혁 보수 단일 기치를 확실히 내걸자고 주장했고 ②은 개혁 보수만 전면에 내세울 수 없고 합리적 진보도 아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8년 6.13 지방선거 이후 처음으로 당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유승민 의원은 “개혁보수 정체성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면서 제대로 된 보수 재건을 주도하자. 특히 낡고 썩은 한국당을 대신해 문재인 정권을 견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바른미래당 소속으로 노선 설정에 골몰하고 있는 장진영 변호사는 2월9일 페이스북을 통해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의 양 날개로 나는 중도 개혁 정당이 국민의당 강령이었다. 합리적 진보를 추구하자는 것이 아니라 보수 출신과 진보 출신이 만나 중도개혁 정당을 추구하자는 것”이라며 “이분들의 정체성과 출신을 부정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진보를 하자는 것이 아닌데 진보 출신이라 말하는 것을 마다할 무슨 실익이 있는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유 의원의 개혁 보수 단일 노선에 대해 이견을 드러낸 것인데 물론 “바른미래당 구성원들 간에는 생각의 거리가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 거리가 아무리 멀더라도 아직도 박근혜 탄핵을 가지고 싸우고 있고 5.18을 폭동이라고 하는 한국당과의 거리보다 멀 수 있겠는가. 중도와 개혁 보수 간의 차이가 한강이라면 개혁 보수와 수구가짜 보수와의 거리는 태평양 아니겠는가”라며 화합 가능성을 강조했다.

손학규파인 임재훈 의원과 문병호 최고위원. (사진=연합뉴스 제공)
손학규파인 임재훈 의원과 문병호 최고위원. (사진=연합뉴스 제공)

반면 권성주 전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같은 날 페이스북에서 “진보를 아우르겠다는 것은 허구”라며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바른미래당이) 6% 밖에 되지 않는 지지율이지만 이념 성향으로 봤을 때 보수와 중도 지지층이 전체 지지율보다 높거나 비슷하다. 반대로 진보 지지층은 절반 정도에 그친다. 더욱 주목할 것은 극우로 치닫고 있는 한국당 보다도 진보층 지지를 받지 못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진보를 아우르는 정당이라고? 그냥 총선 앞두고 지역주의라도 다시 내세워 호남 정당으로 회귀하겠다는 게 솔직한 것 아닌가. 정의당보다 지지율이 나오지 않는데 의원수가 적어서 세를 키워야 한다느니 그런 부끄러운 농은 그만해야 한다. 합리적 중도와 개혁적 보수의 결합 동서 영호남이 함께하는 정당. 그것이 유승민과 안철수의 바른미래당 합당 정신이었다. 그 합당 정신과 창당 정신에 동의하지 못 한다면 무엇 때문에 이 당에 함께 했는가”라고 비판했다. 

실제 바른미래당 내 ①②은 △판문점 선언 비준 동의안 △특별재판부 설치법 △패스트트랙에 태울 선거제도 개정안과 공수처법(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에 대해 당내 총의를 도저히 모으지 못 할 정도로 소위 “바미하다”(주요 의제에 하나의 당론을 정하지 못 하고 찬반만 부각된채 애매하게 끝나는 경우를 이르는 정치권 은어)만 반복했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와 유승민 전 바른정당 대표는 바른미래당 창당을 주도한 대주주다. (사진=박효영 기자)

이렇게 노선 투쟁이 결론을 맺지 못 하고 지속되는 상태에서 숫자와 규모로 당권을 장악하고 있던 ②에 대해 ①이 집단 반발을 하기 위해 명분을 찾던 중이었다. 4.3 재보궐 결과는 아주 좋은 명분이 됐고 지금의 노골적인 당권 싸움으로 펼쳐졌다. 

시사평론가 유창선씨는 작년 12월18일 폴리뉴스 칼럼을 통해 “애당초 안철수 전 대표가 원칙도 없이 무리하게 통합을 밀어붙인 후과를 두고두고 치르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상식과 신의에 어긋나는 방식으로 군사작전 하듯이 통합을 했다. 서로 간의 정체성에 대한 공감대도 부재한 묻지마 통합이었다”고 지적했다.

유씨의 지적대로 급하게 통합을 밀어붙였던 후과를 치르고 있는데 당장 오는 일요일(19일) 손 대표와 3인 및 오 원내대표가 회동할 예정이다. 최종 담판인 셈인데 어떤 결론을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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