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속의 작은 지구촌, 안산 ‘다문화거리’를 가다

안산 원곡동의 '다문화거리' (사진=신현지 기자)
안산 원곡동의 '다문화거리' (사진=신현지 기자)

[중앙뉴스=신현지 기자] 오이도행의 지하철 4호선, 안산역 역사를 나가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여기저기 모여서서 담배 연기를 내뿜는 흡연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낯선 언어와 표정. 분명 느낌이 달랐다. 마치 어느 동남아 도시를 여행하는 것처럼 익숙치 않은 낯설음이었다.   

“나는 이 동네 오래됐어요. 일하던 반월공단에서 가까우니 이 동네로 오게 된 것이래요. 뭐, 가족이 다 여기에 살으니, 이제 여기서 살다 죽겠지요. 나이 먹으니 혼자는 고향에 갈 수 없고. 누가 같이 가면 모를까.” 

안산역 맞은편의 다문화거리에서 만난 김화자( (74세) 노인. 시장 입구에 조성된 만남의 광장 주위를 빙 둘러 앉은 노인들 속에 김화자 노인은 원곡동에 터를 잡은 지 벌써 15년째라며 기자의 말을 받았다. 

중국 떠나온 지 20년, 이제 원곡동이 내 고향 

 중국 길림성을 떠나 온지 20년이 넘었다는 노인도 있었다. 그래서 원곡동이 고향 같지만 그래도 꿈을 꾸면 여전히 어릴 적 뛰놀던 매하구시가 나타난다고. 그런데 이들 노인들은 모두 비슷한 형태의 여름 모자를 눌러쓰고 있어 마치 금방이라도 어디론가 떠날 것 같은 단체여행객들 모습이었다. 노인들은 그렇게 삼삼오오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거나 손바닥 장단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어쨌거나 그곳 광장에서 만난 노인들 모두가 중국 동포인 조선족이었다. 때론 원곡동의 원주민이 이 공원에 오기는 하지만 이들 조선족 노인들과는 잘 섞이지는 않는다고 했다.

'다문화거리' 입구의 만남의 광장은 주로 조선족 노인들이 이용하고 있다 (사진=신현지 기자)
'다문화거리' 입구의 만남의 광장은 주로 조선족 노인들이 이용하고 있다 (사진=신현지 기자)

그들 맞은편으로는 조선족, 나이지리아, 베트남,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스리랑카, 네팔, 우즈베키스탄, 캄보디아, 케냐 등 세계 각국 나라의 사람들이 모여 물건을 판매하는 다문화시장이었다. 그래서 주말이면 전국 각지의 외국인들이 이 시장에 모여들어 고국의 친구와 친지를 만나고 자국의 생필품을 구해가기도 한다고 조선족 노인들은 전했다.

그러니까 안산시 원곡동이 다문화특구로 지정이 된 것은 2009년 5월, 1960년 경제계발 실시로 반월 공단과 시화공단에 외국근로자들이 대거 몰려오면서 현재는 안산 전체 주민 71만6000명 중 8만6780명이 외국인으로 국내 지방자치단체 중 외국인 비율이 가장 높다는 집계가 나와 있다. 

특히 다문화특구로 지정된 원곡동은 약 85%가 넘는 외국인이 자리를 잡고 있어 내국인은 솔직히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본지가 원곡동을 찾은 이날도 원주민을 만날 수 있는 건 다문화거리 끝 지점의 경로당이었다. 경로당 마당에서 한 포대의 쑥을 다듬고 있던 세 명의 노인들도 처음엔 조선족인가 의심했다가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엿 듣고서야 내국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만큼 이곳엔 조선족이 많기도 했지만 내국인과의 구분이 쉽지 않았다.

외국인들과 섞여 사는 것 별 문제없지만 그래도 다르건 달라

(사진=신현지 기자)
(사진=신현지 기자)

그런데 이곳 원주민들은 조선족 동포와 내국인은 단숨에 구분할 수 있다며 외국인들과 섞여 오래 살다 보니 이제 그다지 불편할 것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혼합되지 않는 문화에 어찌 불편사항이 전혀 없을 수야 있을까라고 박모(75세)노인은 말을 가로채기도 했다.

“뭐 우리야 집세를 받아서 좋기는 한데 솔직히 그 사람들이랑 우리랑 안 맞는 점이 많아, 시끄럽고 지저분하고. 욕도 잘 하고 특히 중국 동포들이 그래, 툭하면 욕이야. 또 그 사람들 음식물 쓰레기 분리하는 걸 보지를 못했어.

그냥 막 갔다가 아무데나 버려, 여기 경로당에 와도 신발신은 채 들어오는 건 예사고, 청소라는 건 아예 없어,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지금은 양반이야, 많이 조용해졌어. 보면 인사도 할 줄 알고.”

그런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원곡동 토박이는 약 15% 정도 밖에 없다고 했다. “거의 다 나갔어, 집이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세를 주고 떠나고, 또 외국인들 건물주도 상당해, 아유, 그 사람들 억척이야, 여기와 돈도 많이 벌었어, 자기네 나라에 물건 들여와 팔고, 음식 만들어 팔고. 들리는 소문에는 자기네 고향에도 집이 있고 여기도 집이 있고. 암튼 이 동네는 외국인들 때문에 유명해졌어. 특히 주말에는 이 동네 들어서지도 못하게 사람들이 몰려와 아주 북새통이야.” 

이렇게 말을 이은 노인은 외국인도 정들이면 내국인과 다를 게 뭐 있겠냐며 정부에서 합법적으로 이주민과 비정규 체류자를 모두 받아들이는 정책을 펴는 것에는 큰 불만은 없다고 애써 말무리를 짓는 모습이었다. 그런 노인들을 뒤로 하고 다시 시장으로 들어서자 시장 전체가 외국에라도 온 듯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사진=신현지 기자)

90%이상 외국간판 오히려 한국어 간판 낯설어

특히 야채와 과일들을 내놓은 매대 위는 동남아여행에서나 보던 망고스틴, 두리안, 망고 등 열대과일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고수 여주, 레몬그라스 같은 채소와 하반채, 오리알 등도 이곳에서는 넘쳐나고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뒷골목까지 즐비한 세계 각국의 식당과 은행, 여행사 등의 간판이 세계 각국의 다양한 언어로 생경스러웠다. 아마도 90% 이상은 외국어 간판인 듯 어디를 봐도 한국어로만 표기된 간판은 쉽게 보이지 않았다. 

더욱이 노점의 야채상인, 신발가게, 생선가게 등 가게의 상인들마다 자국의 방송을 보는 듯 그들이 켜놓은 핸드폰에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거리로 흘러 넘쳤고, 핸드폰 매장 안에서는 엔카가, 그 옆 인력사무소에서는 중국 음악이, 또 그 옆에서는 인도풍의 음악이 흘러나와 한국 속의 지구촌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했다. 그러니 이곳의 외국 근로자들이야 먼 이국땅에서 오죽할까 싶었다. 마침 이를 말하기라도 하듯 다소 격앙된 소리가 나왔다. 

'다문화거리'에서는 중국산 오이, 무, 고수, 여주, 레몬그라스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진=신현지 기자) 

순하게 통하다가도 불리하면 억지부려

다름 아닌 한 부동산중개소에서였다. 마침 기자가 들른 이곳에 한국 거주 10년이 넘은 네팔인이 들어와 며칠 전 계약한 방을 해약하겠다며 중개인과 실랑이 하는 모습이었다.“직접 계약한 당사자도 아니고 해약금도 없이 막무가내로 해약을 해달라고 떼를 쓰면 어찌하느냐.”라고 말하는 중개인이나 “우린 계약만 했지 아직 들어가 살지도 않았고. 짐도 옮기지도 않았는데 해약이 뭐가 문제냐.”라고 유창한 한국어로 씩씩거리는 네팔인이나 기자의 눈으로는 모두 안타까웠다. 

이날 중개인은 “대부분 외국인들이 순하고 소통도 어렵진 않지만 상황이 불리하다 싶으면 무조건 억지를 부리는 경우가 많다.”며 “한국에 오래 거주해도 우리와 문화권이 다르기 때문에 상황을 이해 못해서 감정이 격해지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사진=신현지 기자)
(사진=신현지 기자)

97개국이 모인 ‘지구촌’ 한국어면 다 통해

어쨌거나 그들을 계속 지켜볼 수 없어 서둘러 그곳을 나오자 다문화거리 입구의 ‘다문화안전 경찰센터’였다. 잠시 이곳 센터를 들러보기로 했다. 이날 당직 경관과 캄보디아 출신의 여 경관 라 포마라는 “외부에서는 이곳이 소란스럽고 무질서한 범죄소굴로 알고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라며

“92개국 만 7천여 명의 외국인들이 모여 있어도 체계가 잡혀 큰 문제없이 조용하다.”라고 말했다. 특히 라 포마라(37·2003년 귀화)는 이곳 치안 대처에 “외국어를 좀 할 줄 알아야 상황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기는 하지만 한국어로도 모든 게 다 가능하다.”  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 속에 작은 지구촌을 형성하고 있는 안산은 외국인 주민지원본부가 있어 외국근로자들의 임금 체불, 산업 재해, 가정생활 등의 고민 상담을 처리하고 있다. 중국어·베트남어·네팔어·러시아어·파키스탄어·인도네시아어·필리핀어·스리랑카어 등 11개국 언어로 진행되는 상담에서는 매달 4500건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밖에도  안산은 안산글로벌다문화센터, 세계문화체험관, 고려인문화센터 등에서는 이주 외국인의 한국사회 적응을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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