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정의 물건너 갔었는데
교섭단체 3당 호프 미팅 배제
제3지대 좋지만 바른미래당 당분간 분당 어려워
유성엽의 고민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지난 4.3 재보궐 선거에서 여영국 정의당 의원이 신승하고 바로 나온 이야기가 평화와정의(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의 공동 교섭단체)의 부활이었다. 하지만 바른미래당 내홍에 따른 제3지대론이 부각되면서 어려워졌다. 더구나 보수적인 경제관을 갖고 있는 유성엽 평화당 원내대표가 선출되면서 사실상 물건너 간 것처럼 여겨졌다.  

유 원내대표는 21일 아침 열린 의원총회에서 “정동영 대표를 비롯해 몇 분 의원들은 투트랙으로 갔으면 좋겠다. 우선 정의당과 공동 교섭단체를 구성하고 나중에 상황이 돼 제3지대 신당도 (그 가능성이 좀 더 높아지는 차원에서) 변화할 수 있다면 그렇게 갈 수 있는 1·2단계로 실현해 봤으면 좋겠다는 말씀도 주셨다”며 “앞으로 여러 의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서 결정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3일 민주평화당 원내 사령탑을 맡게 된 유성엽 원내대표. (사진=박효영 기자)

정 대표도 “유 원내대표가 말한 대로 2단계 교섭단체 구성 전략도 의원들끼리 토론하고 전략을 마련했으면 한다. 결국 평화당이 사는 길은 확실한 개혁 야당의 길을 가는 것”이라고 호응했다.

당초 정 대표와 달리 유 원내대표는 정의당과의 공동 교섭단체 구성을 반대했고 그걸 내걸어서 의원들의 선택을 받았다. 명분은 △바른미래당 내 국민의당계와 함께 제3지대 신당으로 교섭단체 구성 △진보적인 정의당과의 경제관 차이 △더불어민주당 2중대 이미지 탈피를 위한 강한 야당 노선 등이 있다.

하지만 20일 3당 교섭단체 원내대표(이인영·나경원·오신환)의 호프 미팅에서 배제되는 경험을 한 뒤 입장이 좀 바뀌었다. 

유 원내대표는 “지금 그렇게 한가하게 맥주잔이나 기울이고 있을 때가 아니다. 또 맥주잔을 기울인다 하더라도 한 두 잔 더 테이블에 올려놓는다고 해서 크게 문제될 일도 아니다. 어제(20일) 평화당과 정의당을 제외하고 여야 3당 만의 호프 회동을 갖는 것에 대해 심히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진정한 협치와 상생의 정치가 될 수 있도록 한국당과 바른미래당도 노력해야겠지만 여당인 민주당의 전향적 자세 전환을 거듭 촉구한다”고 밝혔다.

정 대표도 “속 좁다는 느낌이 든다. 정치를 넉넉하게 해야 국민들 마음도 넉넉해질텐데 이렇게 평화당과 정의당을 쏙 빼고 셋이 모여서 결국 아무 것도 합의한 게 없고 빈탕 미팅을 하고 말았다”며 “지금의 경색 국면은 선거제도 개혁 패스트트랙(지정하고 330일 이후 본회의 표결)과 여기에 대한 장외투쟁이다. 선거제도 개혁과 관련해서 거대 양당은 지분이 없다. 민주당은 마지못해 따라오고 한국당은 마지못해 날치기를 당했다고 악을 쓰는 국면”이라고 강조했다. 

정동영 대표는 정의당과의 공동 교섭단체 노선을 천명하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정동영 대표는 정의당과의 공동 교섭단체 노선을 천명하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사실상 유 원내대표는 △향후 정국에서 비교섭단체로서 겪을 여러 어려움들(교섭단체 정당은 의사일정 협상권 및 상임위원회 간사 배치권 보유)이 가시화되고 △김관영 전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의 퇴진으로 당분간 바른정당계와 국민의당계가 갈라설 것 같지 않은 상황 △무소속 3인방(강길부·손금주·이용호)의 합류 및 비례대표 3인방(박주현·이상돈·장정숙)에 대한 바른미래당의 당적 정리가 비현실적이라는 계산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한 것으로 판단된다.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는 같은 날 아침 열린 의총에서 “어제 나는 혼자 국회의장 주재 5당 회의에 참여하고 왔다”며 “문희상 의장께서는 어제 회동이 무산된 것을 두고 취소라고 표현한 의장실 관계자를 질책했다. 말씀대로 의장이 취소한 것이 아니라 (3당) 원내대표들이 무산시킨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의장과 5당 원내대표 회동을 무산시킨 교섭단체 3당은 호프 타임을 공개적으로 예고했고 국회 정상화를 이야기하면서 맥주잔을 들고 언론 앞에 포즈를 취했다”고 꼬집었다.

그동안 한국당은 평화당과 정의당을 범여권 정당이라고 봤고 비교섭단체이기도 해서 어떻게든 논의 테이블에서 배제하려고 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문재인 대통령과 5당 원내대표가 정기적으로 회동하는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에 대해서도 3당 교섭단체만 만나자고 요구한 바 있다. 이번 3당의 호프 회동 역시 나 원내대표의 마음을 알고 있는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주선해서 마련됐다. 

만약 평화와정의가 부활하면 두 당이 외면받지 않는 4개 교섭단체 체제로 재편될 수 있다. 특히 평화당은 경제 정책 외에 정의당과 △선거제도 개혁 및 개헌 연대 △한반도 문제 등 공감할 수 있는 의제들이 있다. 실제 평화와정의는 작년 3월29일 8대 공동 과제(미투/한반도 평화/국회의원 특권 폐지/개헌과 선거제도 개혁/노동 존중 및 좋은 일자리/식량주권 확보 및 농수축산업 분야 미래 먹거리 육성/중소상공인 보호/권력기관 개혁)를 발표한 바 있다. 

故 노회찬 의원의 타계로 평화와정의가 딱 석 달(113일)만 지속됐었는데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당초 합의(20대 국회 임기 동안)한대로 지금까지 공동 교섭단체 전선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교섭단체 지위로 얻을 수 있는 게 비교섭단체 정당으로 남는 것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사진=박효영 기자)
유 원내대표가 정 대표의 주장대로 정의당과 1단계로 공동 교섭단체를 구성하는 방안에 동의하게 될지 주목된다. (사진=박효영 기자)

물론 유 원내대표는 아직 제3지대론에 훨씬 기울어 있다. 이날 유 원내대표는 기자들과의 점심 오찬에서 제3지대 낙관론을 설파했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다. 

①바른미래당 내홍으로 인한 정계개편 이후 한국당이 원내 1당 지위 획득 예상 
②2020년 4월 총선 앞두고 민주당과 정의당 사이의 진보 노선에서 제3지대 신당의 중도 노선으로 전환하면 유권자에게 혼란을 줄 가능성 있음
③제3지대 신당 구성시 대국민 어필을 위한 7대 정책 리스트 제시 
④이용호·손금주 의원도 제3지대 구축되면 입당 의사 밝혔음 

그럼에도 유 원내대표는 제3지대론이 당장 어렵다면 정 대표의 주장처럼 <1단계 평화와정의 →2단계 제3지대 신당>으로 갈 수 있다는 방법론에 대해 논의해볼 수 있다면서 수용했다. 

유 원내대표는 오찬에서 “바른미래당이 쉽게 분열하지는 않을 것 같다”며 현실적인 정국 진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분명 평화당이 2018년 3월 정의당에게 먼저 공동 교섭단체를 구성하자고 제안했었는데 다시 손을 내밀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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