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갑 장관 동시 비준과 입법 천명
ILO 가입만 하고 핵심 협약 비준은 미뤄
4개 중 3개만 비준 추진
이광택 회장 노조를 통한 교섭력 강화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ILO(국제노동기구) 핵심 협약 비준에 나서겠다고 밝힌 가운데 이광택 한국 ILO 협회 회장이 올해 안에 꼭 비준을 완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광택 회장의 모습. (사진=이광택 회장 제공)

이 회장은 지난 20일 국회에서 열린 <ILO 핵심 협약 비준의 쟁점과 과제> 토론회에 참석해 “한국은 ILO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으로서 국제사회에서의 책임을 다해야 할 때인데 EU(유럽연합)는 지난해 말 한EU FTA 권고 조항 미이행을 내세워 한국 정부를 상대로 무역 분쟁 절차를 개시하여 전문가 패널 소집을 앞두고 있다”며 꾸물거리는 문재인 정부에게 경종을 울렸다.

한국 정부는 선진국에 진입하려는 위상 제고 전략에 따라 1991년 ILO에 가입했다. ILO의 전체 협약은 189개이고 회원국들은 평균 50여개를 비준했고 OECD 국가는 평균 61개를 비준했다. 하지만 한국은 총 29개 협약만 비준했다. 

특히 ILO가 비준을 권고한 핵심 협약은 8개다. 이중 한국은 4개(100호 동등한 보수 지급·111호 차별 금지·138호 최저 노동연령 규정·182호 가혹한 아동노동 금지)만 비준했고 나머지 4개(29호 강제노동 금지·105호 강제노동철폐·87호 결사의자유 및 단결권 보장·98호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에 대한 비준을 압박하는 ILO와 국제사회의 비판을 꾸준히 받아왔다. 현재 ILO 전체 187개 회원국 중 한국, 미국, 일본을 제외한 143개국이 핵심 협약에 대한 비준을 완료한 상태다.

이 회장의 지적처럼 EU는 한국 정부에 핵심 협약 비준을 여러 채널로 압박하고 있다.

이 장관은 2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비준 4개 ILO 핵심 협약 중 3개 협약(105호는 정치적 견해 표명에 대한 자유를 보장한 것으로 분단국가의 특수성을 고려해 이번에는 제외)에 대해 비준을 추진하겠다. 관계 부처와 협의하고 노사의 의견을 수렴해서 비준 동의안과 입법안을 정기국회(9월)에 함께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105호는 정치적 입장 표명으로 징역형 선고가 가능한 국가보안법 체계로 인해 이 장관은 “형벌 체계 개편과 맞물려 지금 상황에서 비준을 추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일단 다른 핵심 협약을 비준하려면 입법 개정 절차가 병행돼야 한다. 그러나 그동안 한국 정부는 기업 경제의 어려움을 근거로 선 입법 후 비준 입장을 천명한 채 차일피일 미뤄왔다. 이 장관은 입법과 비준을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한 것이다.

만약 비준에 따른 입법(노동조합으로 인정될 수 없는 사례를 적시한 노조법 2조 4항 개정)이 완료되면 택배기사·해고자·실직자 등 취약한 노동자들의 노조할 권리가 보장되고 당연히 사용자 측은 적극 반대할 게 뻔하다. 경사노위(경제사회노동위원회) 등 사회적 대화를 시도하더라도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정경 유착 구조에 따라 노동권을 향상시키기 무척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재갑 장관은 ILO 핵심 협약 3개에 대한 비준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 회장은 1988년 한국노동연구원 창립 멤버이자 노동계 원로로서 노조할 권리의 확대를 통해 사측과의 교섭력를 강화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독일의 ‘직장평의회’의 경우처럼 경영진이 노동자 대표의 동의를 얻지 못 하면 회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하지 못 하게 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한국적 노동 현실은 너무 후진적이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2017년 6월26일 보도된 <시사저널e>와의 인터뷰에서 “청년들의 구직 기간이 길어지면서 청년들이 구직 전 알바 노동을 경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러나 알바 노동은 여전히 임금체불과 산업재해 등 노동 인권의 사각지대”라며 “ILO에서 추구하는 일자리는 품위있는 노동(decent work) 즉 양질의 노동이다. 이를 만들어 가는 게 국제적 흐름이지만 한국의 알바 노동은 비정규직의 하나로 고용이 불안정한데다가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시간제나 기간제 보호법 밖에 있고 임금체불이 빈번하다. 실업자는 아니지만 수시로 실업을 넘나드는 지위에 있기 때문에 특별한 보호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은 국회 토론회 등 노동권 향상을 위해 다양한 곳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진=송옥주 의원실)

한국 전체 노동자의 노조 가입률은 12%이고 특수 노동자는 2.9%다. 알바 노동자의 권익 향상은 커녕 보통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조차 취약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의미에서 최근 맥도날드가 알바노조(전국 단위의 노조 단체)와 단체교섭에 들어간 사례는 매우 상징적이다.

이 회장은 “알바 노동자를 개별적으로 보호할 방법이 없다. 알바 노동자는 바깥에 있는 조직력을 통해 대항해야 한다. 노조가 청년, 여성, 비정규직 등 다양한 노동자들을 대변할 수 있도록 여지를 넓혀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과는 달리 독일 등 선진국에선 특수 노동자들이 노조를 하는 데 문제삼지 않는다. 조합원의 자격은 노조가 판단한다. 한국은 노조할 권리가 많이 위축돼 있다. 미국도 이 부분에서 상당히 후진적”이라며 “무엇보다 특수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를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 특수 노동자의 단체교섭권을 인정해서 처우 개선의 가능성을 넓혀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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