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회장 바이오젠 대표와 전화해
에피스 대표와도 통화
모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위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일환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대한민국 최대 기업 삼성의 1인자가 되기 위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급하게 움직여야 했다. 이 부회장은 1994년 부친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으로부터 61억4000만원을 증여(증여세 16억원 납부)받은 뒤부터 온갖 탈법적인 방법으로 경영권 승계 작업을 준비해오긴 했다. 하지만 2014년 5월 이 회장이 병상에 눕게 되자 무리수를 두게 된다.

삼성 바이오로직스(삼바)의 불법 사기극에 대해 주요 실행자들이 구속되고 삼성그룹 컨트롤타워(구조조정본부→전략기획실→미래전략실→현 사업지원TF) 주요 인사까지 소환되는 와중에 이 부회장이 사안을 직접 챙긴 정황이 드러났다.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검찰의 칼이 목전에 와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그동안 이 부회장 측은 이 사안에 직접 관여한 바가 없다고 항변해왔다. 그러나 23일 KBS와 24일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미국 바이오젠(바이오 기업) 당시 대표(현 CEO는 미첼 보나초스)와 전화를 했고 삼성 바이오에피스(에피스) 지분에 대해 논의했다. 에피스는 삼바의 자회사로 바이오젠은 에피스에 대한 콜옵션(나중에 고정 가격으로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과 지분(15%)을 갖고 있다. 만약 에피스가 신약을 개발하고 잘 나가게 되면 바이오젠은 콜옵션을 행사해서 추가 지분(49.9%)을 확보할 수 있다.

송경호 부장 검사가 이끄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2부에 따르면 작년 5월 금융감독원이 삼바의 분식회계 의혹을 지적했을 때 TF는 에피스의 공용 서버에 있던 자료들을 대거 삭제하도록 아랫 사람을 동원하고 진두지휘했다. 하지만 특수2부는 디지털 포렌식 작업으로 데이터를 복구했다. 그렇게 복구된 여러 폴더 속 파일은 2100여개에 달했고 핵심 폴더에는 녹취파일, 녹취록, 내용 정리 등이 저장돼 있었다. 

여기서 결정적 증거가 나온 것이다. 이를테면 <부회장 통화 결과>라는 폴더가 있었는데 이 부회장이 바이오젠 대표와 전화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에피스에 대한 지분이나 콜옵션 문제로 여러 논의를 한 것인데 삼성 총수가 자회사의 자회사 현안으로 외국 투자자와 직접 전화를 한 것 자체가 의심스럽다. 또한 <부회장 통화 결과> 폴더에는 최근 특수2부의 소환조사를 받았던 고한승 에피스 대표와 이 부회장의 통화 내용이 수록돼 있었다.

이 부회장은 최근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연일 거액의 투자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통화 시점은 2015년이다. 삼바가 에피스의 회계 기준을 자회사에서 관계사로 변경(자회사는 회계 장부로서의 가격만 인정되는데 반해 관계사는 시장가로 인정)해 가치를 뻥튀기하기 이전이다. 콜옵션이 행사될 경우 삼바의 부채로 평가되는데 그동안 삼성 측은 고의 분식회계가 아니라는 주장을 하기 위해 에피스의 부채 규모를 측정할 수 없다고 우겨왔다. 그러나 특수2부는 삼성 측 인사들이 신용·회계 회사들에게 지속적으로 요구해서 ‘부채 규모 평가 불가’라는 가짜 감정서를 얻어냈다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

에피스가 미국 나스닥에 상장되면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는데 이 부회장은 고 대표를 넘어 바이오젠 대표와도 직접 통화해서 이 문제를 챙겼다. 즉 이 부회장이 콜옵션과 지분 문제가 가시화되기 전 직접 나서서 삼바의 분식회계를 총 지휘했다고 볼 정황이 충분해진 것이다. 특수2부는 각종 분식회계 증거들을 인멸한 삼성 임직원들이 결국 이 부회장의 사전 인지 정황을 차단하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더 나아가 특수2부는 이 부회장이 직접 챙긴 것으로 보이는 추가 증거자료들을 확보한 상황이다.

삼성 측은 개발비 투자 경과 등 여러 사업 내용에 대한 전화 논의였지 콜옵션이나 나스닥 문제를 거론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특수2부는 이미 녹음 파일을 확보해서 분석을 마쳤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김태한 삼바 대표가 24일 오전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았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마침 김태한 삼바 대표는 24일 오전 구속영장실질심사(송경호 서울중앙지방법원 영장전담 부장판사)를 받았다. 에피스의 회계 자료와 내부 보고서를 감추고 조작하는 총괄 지휘자로서의 역할을 했다는 혐의다. 비슷한 혐의로 김모 TF 부사장과 박모 삼성전자 부사장도 영장심사를 받았다. 두 사람은 증거인멸과 증거인멸교사로 구속된 백모 TF 상무와 서모 보안선진화 TF 상무에게 지시를 내렸다. 

삼성가 증거인멸의 히스토리는 뿌리가 깊은데 삼바 때도 △직원들의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수거해 이 부회장을 가리키는 “JY, VIP, 합병, 미전실” 등을 검색해서 문건이 나오면 모두 삭제 △회계자료와 내부 의사결정 과정이 기록된 공용 서버를 직원의 집과 삼바 공장 바닥에 은닉 등 상상을 초월했다.

이런 게 드러날 수 있었던 것은 증거인멸에 가담한 실행자 대부분이 과거 “관리의 삼성”이라는 소문과 달리 검찰에 윗선의 지시가 있었다는 점을 술술 불고 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도 검찰에 TF 차원에서 자행된 일이지 자신은 무관하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총수인 이 부회장마저 2017년 2월17일 구속됐다가 풀려날 정도이니 모두 자기 살길을 모색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 부회장은 닥친 위기를 어떻게 대응해갈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는 지난 10일 방송된 딴지방송국 <다스뵈이다>에서 “이게 진짜 없던 일이다. 삼성은 평생 먹고살게 해줄게라고 했고 그 누구도 배신하지 않았다. 검사나 사법부가 다 삼성 손 안에 있었다. 이게 이제 검찰 단계에서 만만치 않다고 생각을 한 것이 아닌 이상 이렇게 내부적으로 배신할리가 없다”며 “(보통 검찰도) 여기까지만 하자 원래 그렇게 한다. (하지만) 윤석열(서울중앙지검장) 팀은 그게 없다. 다 하자 이렇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미전실(TF) 소속 누군가가 불었다(진술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이 지금은 자기가 다 했다고 하는데 자기한테 시킨 사람을 말하는 순간 그 위로 올라가게 된다”고 말했다.

같이 출연한 주진우 프리랜서 기자도 “(그동안 삼성은 꼬리자르기 차원에서 누군가 감옥에) 갔다오면 빵도 주고 돈도 주고 자리도 줬다. (하지만) 지금까지 삼성이 만나본 검찰과 윤석열 수사팀과는 그게 다른 점이다. 이제 미전실(TF)로 넘어간다. 모든 힘은 여기에 있다. TF 위에 JY 이재용이 있다. 수사는 여기까지 됐다. 압수수색이 워낙 잘 돼서 (증거인멸 혐의자들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기 어렵다”고 호응했다.

아마 김 대표에 대한 영장이 발부된다면 향후 특수2부가 이 부회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정현호 TF 사장을 소환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부회장은 모든 삼성의 불법들의 이익을 독점적으로 향유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다시 원론으로 돌아가서 볼 필요가 있다. 삼바의 실제 가치는 별 볼일 없는데 분식회계를 통해 부풀려졌고 그것은 에피스의 가치를 뻥튀기하는 방식으로 현실화(4조8000억원→2900억원)됐다. 왜 그랬을까? 도식적으로 보면 이런 거다. 

①이 부회장은 삼성전자에 대한 지분(0.65%)을 매우 적게 갖고 있음
②대신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 지분(23.24%)을 많이 갖고 있음
③제일모직(구 에버랜드)은 삼바 지분(46.3%)을 많이 갖고 있음 
④삼바의 가치를 뻥튀기해서 제일모직의 덩치를 불림
⑤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4.06%) + 삼성생명 지분(19.47%) 등을 많이 갖고 있음 
⑥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7.2%)을 많이 갖고 있음 
⑦제일모직과 삼성물산 인수합병 강행  
⑧이 부회장의 삼성전자에 대한 지분율 급증(총 11.91%) 

결국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에 대한 지분율을 많이 가져가야 순환출자 고리를 이용해 삼성그룹 전체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다. ②은 90년대에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 등으로 완료됐고 ③은 이명박 정부 시기인 2011년에 바이오 산업 붐을 일으키며 이뤄졌다. 

⑦은 박근혜 정부 시기 △삼성물산에 대한 지분(11.61%)을 많이 갖고 있는 국민연금이 제일모직보다 덩치가 더 큰 삼성물산에 불리한 합병 비율로 찬성표를 던지게끔 만들기 위해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에 불법 뇌물성 승마 지원(최지성·장충기·박상진 등 이 부회장의 최고위 참모 주도)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땅값을 급상승시키기 위해 공시지가를 비정상적으로 올린 감정평가사와의 유착 등 위법적인 행위들을 통해 2015년 9월1일 완료됐다.

이 부회장은 당시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을 이끌어내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래서 꼭두각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뒷배에 자리잡고 있는 최씨에 접근해서 핀셋 뇌물을 제공할 수밖에 없었다. 이 부회장 측이 박근혜 정부의 권한 행사를 위해 최씨에게 뇌물을 준 것으로 추정되는 액수는 총 293억1800만원(동계스포츠영재센터 16억2800만원·승마 관련 72억9000만원·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출연금 204억원)에 이른다. 그 돈이 먹힌 것일까.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을 위해 발빠르게 뛰었고 그 결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배임 혐의로 2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2017년 초부터 1년간 구속됐던 이 부회장. (사진=연합뉴스 제공)
2017년 초부터 1년간 구속됐던 이 부회장. (사진=연합뉴스 제공)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2016년 말부터 2017년 초 국정농단 정국 때 이 부회장의 뇌물 퍼즐을 맞춰놨고, SBS가 2018년 3월19일~21일 <8시 뉴스> 탐사 보도를 통해 에버랜드의 땅값 의혹을 추적했다면, 마지막 바통을 이어받은 특수2부는 최근까지 ④에 대해 연일 수사하면서 거의 그림을 완성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셋 다 ⑦을 위한 밑작업으로 자행된 범죄 의혹들이고 결국 이 부회장의 경영권 편법 승계라는 지상 프로젝트로 인해 삼성 전체가 이지경까지 됐다. 모든 불법 행위들로 인한 이익은 이 부회장이 독점적으로 향유하기 때문이다.

한편, 박영수 특검팀은 최근 이 부회장의 뇌물 사건을 심리하고 있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2건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⑦이 총체적으로 이 부회장의 승계 작업이었다는 취지다. 구체적으로 “합병 전후 삼성물산의 가치는 낮추면서 제일모직의 가치는 높이거나 유지하려는 방향의 사건이 연달아 벌어졌다”는 것이고 대표 사례로 △삼바 콜옵션 공시 고의 누락 △에버랜드의 유령사업(동식물 활용한 바이오 신사업)으로 제일모직의 기업 가치 3조원 뻥튀기 등을 제시했다. 그러므로 “각각의 사건은 결국 이 부회장의 승계 작업이라는 단일 현안으로만 설명 가능하다”고 결론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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