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의 구걸노인

(사진=신현지 기자)
(사진=신현지 기자)

 [중앙뉴스=신현지 기자] 오전 11시 경, 출근시간이 지난 인천행 지하철 안에 고령의 한 노인이 절룩이는 걸음으로 칸칸이 돌며 구걸을 하는 모습이었다. 흔들리는 속도감을 간신히 지탱하며 지하철 승객들을 향해 모자를 내밀고 있는 노인은 한눈에도 상당히 노쇠한 모습이었다.

 “한 푼 도와주십시오.”  목소리는 약했지만 그렇다고 주저하는 빛은 아니었다. 이 같은 구걸노인의 출현에 승객들의 반응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무감각이었다.

지하철 내 상행위와 구걸행위가 금지라는 것을 아는 데다 자주 보아온 탓인지 승객들은 허리를 90도로 꺾으며 모자를 디밀어내는 노인의 구걸 행위에 그저 굳은 표정으로 딴청이었다. 평소 하던 그대로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승객이 있는가 하면 지그시 눈을 감거나 혹은 눈살을 찌푸려 노골적으로 불편한 표정을 짓는 등. 

그러나 경로석에 앉은 노인들은 구걸노인이 다가가자 지그시 눈을 감고 모르쇠하고 있던 표정을 넘어 구걸노인이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다음 칸으로 이동하자 그  뒤통수를 향해 노골적인 핀잔이었다.

(사진=신현지 기자)
(사진=신현지 기자)

“쯧쯧 나라에서 구걸하지 말라고 노령연금 주잖아, 그런데 왜 구걸을 하면서 사람 귀찮게 하는 거야, 다 늙어 창피한 줄도 모르고. 저러니 젊은 사람들이 늙은이들을 싫어하지.”
“그러게 말이야, 젊어서 잘 좀 살지. 아니면 자식 농사를 잘 지어 놓던가.”

서로 마주보며 나누는 그들의 대화에 몇몇의 승객의 시선이 그 쪽으로 더해지자 경로석 노인들은 그것이 자신들의 말에 동조라도 되는 듯 아예 톤을 높여 대화를 이어갔다.

“노령연금도 올랐잖아, 또 기초수급자들에게는 이것저것 나오는 혜택도 많고. 정부가 그런 걸 해주니 노숙자들이 더 생겨나는 거지, 수급비 받아 술 마시고 돈 떨어지면 구걸하고, 그러니 아예 그런 걸 싹 없애야 된다고. 지자체마다 복지예산 마련하느라 허리가 휜다고 난리면서 원...”

그러는 사이에 칸을 이동했던 구걸 노인은 다시 되짚어서 돌아왔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위태로운 걸음걸이로 승객들 사이에 모자를 흔들어 내밀면서. 그런데 이번에는 아까와 달리 몇몇의 승객이 노인의 모자에 돈을 집어넣는 모습이었다.

그것에 경로석에 앉은 노인들의 표정이 조금은 당황하는 듯 애써 외면하는 빛이었다. 반면, 구걸노인은 허리가 땅에 닿을 듯 깊숙이 반복해서 허리를 굽혔다.  

그러던 그 구걸 노인이 지하철이 구일역에 도착하자 내리는 승객들 뒤를 따라 내렸다. 집이 구일인 것일까. 문득 호기심이 생긴 기자도 구걸 노인의 뒤를 따라 내렸다. 

“왜 안 가고 날 따라 오는 거야?” 뜻밖에도 구걸 노인은 지하철 안에서 모자에 돈을 집어넣은 것을 기억하는 듯 따라 붙는 기자를 향해 빙그레 웃으며 흔쾌히 말을 받았다. 

“아녀, 집이 여기가 아니고 서울역 앞 쪽방촌이야, 파출소 뒤쪽 쪽방촌 알아? 거기야. 거기서 산지 20년도 넘었어. 할멈은 없고, 그냥저냥 나 혼자 사는 거지. 이제 다시 서울역으로 가려고.”

그러니까 노인의 올해 나이 90세, 사는 곳은 서울역 앞 쪽방촌, 최근에 생긴 듯, 노인의 옷 밖으로 드러난 앙상한 팔에서는 아물지 않은 생채기가 마치 검버섯처럼 붉디붉었다.

“구걸 하다가 걸리면 5만원이야. 몇 번 벌금을 내 보기도 했어. 그런데 이제는 늙었다고 가끔은 봐주기도 해, 돈이 필요하니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지, 누가 이 짓을 하고 싶겠어. 늙은이 사는 것도 다 돈이야, 집세 내고, 약 사먹고, 병원가고. 또 술도 사먹고 허허.”

이렇게 말하는 구걸노인의 본적은 충청도 두메산골.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가난에 고향을 떠밀려 서울로 상경한 때가 언제인지 이제는 기억도 가물거린단다. 젊어서도 달동네를 전전하다보니 이제는 서울역 쪽방촌까지 떠밀려 왔다고.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누가 돈 없이 늙고 싶겠어. 금방이야. 나도 자네처럼 젊었던 적이 엊그제 같아. 한때는 돈을 모은 적도 있었어. 그런데 사기 당한 바람에, 그래도 이제는 그 사람들 다 잊었어. 남 돈 떼어먹고 어디 맘 편하겠어. 내가 똑똑치 못하니 그리 된 것인데. 왜 혼자냐고? 장가를 가긴 했어.

그런데 할멈이 일찍 갔어. 아파서, 자식? 가들도 살기 힘들어 내가 짐 되면 안 되잖아. 내가 가들 해준 것도 없는데, 여기저기 다 병들고 아프기만 한 늙은이 뭐가 좋겠어. 약값이라도 할라고 한번 씩 전철을 타. 그런데 왜 자꾸 물어?”   

젊어서 무슨 일을 했냐는 물음에 구걸노인은 오만가지 일을 해봤다며 씨익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내가 체구는 이렇게 작아도 젊어서는 기운이 좋았어, 이것저것 리어커로 장사도 해보고, 노가다도 하고, 남대문 시장에서 지게꾼도 하고 아마 서울의 웬만한 건물은 내가 다 지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여, 공사판 따라댕긴 햇수만도 상당하니.

그런데 왜 자꾸 물어. 나 같은 늙은이가 뭐가 궁금하다고. 이젠 나도 그만 가봐야겠어. 우리집은 서울역 쪽방촌이야. 오다가다 볼일 있으면 거기로 찾아와. 그나 오늘은 운수대통이여. 봐 바. 여기 누가 만원을 넣어 주었어, 이런 날은 흔치 않은데 말이여.”

이렇게 모자 속 동전에서 만원을 반갑게 들어 보이며 함박 미소를 짓던 노인은 황급히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 그 안으로 모습을 감추어버렸다. 반대편으로 넘어가 지하철을 탈 모양인 듯 서두르는 자세로. 아마도 서울역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도 노인은 칸칸이 승객들 사이를 모자를 들고 오갈 모양이었다. 그러니 부디 운수좋은 날이 되기를...
 
한편, 서울역 10번 출구를 나와 남대문 경찰서 옆 오르막길을 100m 정도 오르면 거대한 빌딩 숲의 사이로 가려진 동네, 즉 동자동 쪽방촌이 있다. 빈곤의 상징으로 대변되는 이곳 쪽방촌은 대부분 건물주들이 따로 있으며 주로 독거노인들과 장애인 등 사회 취약계층들이 세를 주고 살고 있다.

서울시에서는 2009년까지는 쪽방, 비닐하우스를 없애겠다는 로드맵이 있었지만 아직까지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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