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천 판사 재판 늦게 잡아 
재판 끌어 선고 전 구속 기간 만료 노려
증인 200명 신문 주장
검찰 맹비난
혐의만 47개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 기소(2월11일)된지 석 달이 지나 첫 재판이 열렸다.
 
늦어도 너무 늦다. 이미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보석 신청은 기각(3월5일)됐을 만큼 비판 여론이 매섭게 지켜보고 있지만 법원이 재판을 지연시키는 방식으로 그들의 석방 전략에 부응해줄 수도 있다. 구속 기간은 8월까지인데 양 전 대법원장 측은 200여명의 증인을 일일이 신문하자고 주장했다. 노림수가 너무 뻔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법원이 묵인해줄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하고 있다.    

호송차에 내려 법정으로 향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진=연합뉴스 제공)

29일 오전 박남천 부장판사(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5부)의 심리로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공판이 열렸다. 양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 설치 및 사법부의 이익을 위해 박근혜 정부와 결탁한 사법농단의 최종 지휘자였다면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은 최고위 실무 참모였다. 구속영장이 기각된 두 전직 대법관도 이날 재판에 출석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할 말이 많았다. 20분에 달하는 입장문을 줄줄 읽었다.

한동훈 3차장검사(서울중앙지방검찰청 사법농단 수사팀장)가 완성했던 공소장에 대해 양 전 대법원장은 “한 편의 소설”이라며 △재판 거래는 검찰의 포장 △블랙리스트는 통상적인 인사 문건 △사법농단 수사는 임기 6년을 먼지 털 듯 뒤진 사찰 수준 등이라고 주장을 쏟아냈다. 

물론 박 전 대법관도 “검찰의 공소장에는 알맹이가 없고 재판 거래라는 말잔치만 무성하다”고 부인했고 고 전 대법관도 “직무를 수행한 부분이 모두 직권남용으로 기재돼 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검사는 피고인들의 일방적인 주장을 반박하고 싶다고 발언 기회를 요청했지만 박 판사는 피고인의 모두발언 단계에서부터 반박할 필요는 없다면서 불수용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고영한 전 대법관과 박병대 전 대법관도 이날 재판에 출석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양 전 대법원장의 혐의는 총 47개이고 공소장만 296쪽에 달한다. 적용 죄목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공무상비밀누설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직무유기 △위계공무집행방해 △공전자기록위작 및 행사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등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2011년 9월부터 2017년 퇴임 때까지 재판 거래 등 사법농단의 우두머리로서 최종 컨펌을 내린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재판 거래 의혹 사항들만 해도 16개(콜택 해고/전국교직원노동조합 시국선언/진도군 민간인 희생/키코 사태/통상임금/코레일 자회사 법인설립 등기/철도노조 파업/긴급조치 국가배상 소송/전교조 교사 빨치산 추모제/쌍용차 정리해고/문인 간첩단/이석기 전 의원/KTX 해고 승무원/긴급조치 불법 구금/대구 10월 사건/전교조 법외노조)에 이른다. 

이밖에 부당하게 재판에 개입한 사례들(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소송 고의 지연/통합진보당 국회의원 지위확인소송/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댓글사건 등)도 많다. 끝이 아니다. 비자금 조성, 법관 블랙리스트, 민간인 사찰, 헌법재판소 정보 불법 수집, 법률신문 기사 대필, 하창우 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압박 등 크고 작은 불법 혐의들이 수두룩하다.   

6시간이 걸린 재판은 치열했다. 

검사는 이용훈 전임 대법원장에 비해 시그니처 업적이 없다고 판단한 양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을 도입하기 위해 박근혜 정부와 국회에 로비를 했고 그 수단이 재판 거래였다고 주장했다. 이에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공소장의 범위를 벗어나는 발언이 과하게 들어가 있다고 응수했다.

특히 양 전 대법원장은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 후배 판사들에게 “검찰 조사 과정에서 겁박당한 것 같아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라고 말했고 검사는 “이제라도 인사 불이익을 받은 판사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대응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구속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이 8월 안에 1심 선고가 나오지 않도록 지연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당연히 불구속을 노리는 양 전 대법원장 측은 어떻게든 재판 일정을 지연시키려고 할텐데 검찰은 이런 지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박 판사에게 신속한 재판 진행을 촉구했다. 만약 양 전 대법원장 측이 요구하는대로 200명을 다 신문하면 9월을 넘길 수도 있다. 1심 선고 전에 구속 기간이 만료되는 것이다. 일단 박 판사는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보석 신청을 기각한 바 있다.

주진우 프리랜서 기자는 30일 페이스북을 통해 “양승태는 8월에 석방된다. 재판을 안 열어서 그렇다. 어제 첫 재판을 열었는데 이제 곧 구속 만기다. 일반 국민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특혜 재판, 황제 재판이다. 이명박처럼. (양 전 대법원장에게) 법치주의를 그렇게 훼손했으면 사과를 해야 한다. 검찰 공소장이 소설이라고? 구속영장을 내준 판사(명재권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바보인가? 보석을 기각한 판사는 멍청이인가?”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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