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동 강간미수’ 말하는 것 ·· 여성의 ‘공포’에 공감부터 해야
‘신림동 강간미수’ 말하는 것 ·· 여성의 ‘공포’에 공감부터 해야
  • 박효영 기자
  • 승인 2019.05.31 13: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찰이 늦게라도 적극적인 이유
강간미수로 구속 가능할까
스토킹 처벌 강화 법제화
여성의 일상적 공포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전국민이 너무 적나라한 영상을 봤다. 30세 남성 조씨가 귀가하는 여성을 노리고 뒤쫓아 갔고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바로 문고리를 잡고 침입을 시도했다. 그동안 여성들이 호소하는 일상적 공포에 대해 남성들은 너무 무감각했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라면서 성급한 일반화를 하지 말라고 항변해왔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도 여성들은 일상적으로 여러 형태의 성범죄에 노출돼왔다. 

조씨는 문고리를 잡고 침입하려고 시도했다. (캡처사진=유튜브 영상)

조씨는 28일 아침 6시25분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의 빌라로 귀가하는 여성을 뒤쫓았다. 피해 여성이 1초만 늦게 들어갔다면 조씨는 집 안으로 침입했을 수도 있었다. 조씨는 아깝다고 생각했는지 꽤 오랫동안(10분 가량) 현장에 머물면서 사후 침입을 시도했다. 사람들은 조씨에 대해 “신림동 강간 미수범”이라고 불렀지만 법조계에서는 똑같이 분노를 하더라도 범죄 실행에 돌입하지 않은 예비 정황만을 가지고 성범죄 의도가 있었다고 단정짓고 그에 준해 처벌하는 것은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형법상 범행에 돌입해서 결과를 일으킨 것이 ‘기수’이고 그렇지 않은 것이 ‘미수’라고 할 때 돌입하기 이전 준비 단계를 밟은 것(음모·예비 등)만으로 처벌하려면 엄격히 규정된 강력 범죄(내란죄/외환죄/방화죄/통화위조죄/교통방해죄/살인죄/존속살해죄/강도죄/위계등에의한촉탁살인죄/국외이송을위한약취유인죄/특수폭행공모)여야 한다.

서울 관악경찰서도 처음에는 주거침입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조씨도 당연히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성폭행 의도는 없었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조씨의 성폭행 의도가 의심되는 정황이 짙어지고 국민 여론이 들끓자 경찰은 강간미수 혐의를 적용해서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검찰은 청구했다. 이에 따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31일 15시 성폭력범죄처벌 특례법 3조 1항 위반(주거침입 강간미수)으로 조씨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한다. 
 
실제 조씨는 △자신의 성기를 만졌고 △스마트폰 라이트를 켜서 두 차례 현관문 번호키를 풀려고 시도했고 △계단에 매복해 있었고 △빌라를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 초인종을 계속 눌러 위계로 속여 출입하려고 했다.

경찰은 ”범행 전후나 현장에서 보인 행동 등으로 보아 피의자의 진술을 인정하기 어렵고 피의자가 출입문을 강제로 열려고 시도하거나 집 안에 있는 피해자에게 한 발언을 종합적으로 볼 때 협박했다고 판단했다”며 “실행의 착수가 인정되고 죄질의 중대성 등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으로 고질적인 문제점이 다시 환기됐다.

①현장 경찰의 대응과 방범 실질화
②성범죄자 관리와 사법 제도 정비
③스토킹을 경범죄로 보지 않고 좀 더 엄하게 법제화 
④여성의 일상적 공포에 깊이 공감

당장 ①이 문제였다. 해당 빌라 건물에는 외부인의 출입을 방지하는 1차 비밀번호 필터링 시스템이 없었다. 무엇보다 경찰은 피해자가 최초 신고를 해서 도착했을 때 주변에서 전화를 걸어 “이른 시간이라 CCTV 확인이 어렵다. 건물주에게 연락해서 확보되면 연락해달라”는 말만 남기고 출동한지 3분 만에 돌아갔다. 

또한 피해 여성에 따르면 자체적으로 건물주에게 문의해 CCTV를 확보하고 다시 신고했을 때 경찰은 적극적이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이번 사건은 피해자의 친구가 SNS를 통해 CCTV 영상을 올리고 나서 국민적 분노가 확산됐기 때문에 경찰이 △체포 작전에 돌입하고 △강간미수를 적용하는 등 이례적인 적극성을 보였다. 경찰이 유사한 사례에서 통상적으로 보이는 대응 양태는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여성계는 경찰이 이와 같은 신고가 접수되면 심각한 기수범이 아닌 이상 피의자를 잡으려고 하기 보다는 순찰을 자주 돌겠다는 차원의 반응을 보인다고 말한다. 경찰이 강간 범죄로 발전할 수 있는 스토킹 수준의 행위에 대해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숙진 여성가족부 차관이 22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관계부처 합동 '스토킹ㆍ데이트 폭력 피해방지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2018.2.22
이숙진 여성가족부 차관과 민갑룡 경찰청장은 작년 2월22일 관계 부처 합동 <스토킹 데이트 폭력 피해방지 종합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즉 ①은 ②③ 문제와 직결된다. 스토킹에 대한 법률이 좀 더 엄격했다면 수사기관도 그에 따라 대응하겠지만 경범죄 처벌 수준이라 미온적일 수밖에 없다. 

경범죄 처벌법 3조 1항 41호에 따르면 “상대방의 명시적 의사에 반하여 지속적으로 접근을 시도하여 면회 또는 교제를 요구하거나 지켜보기, 따라다니기, 잠복하여 기다리기 등의 행위를 반복하는 사람(지속적 괴롭힘)”에 대한 처벌 수위는 △10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과료 △구류(1일 이상 30일 미만의 유치장 생활)에 불과하다.  

물론 이번 사건으로 인해 정치권이 제도를 정비한다면 수사기관이 다른 대응을 할 가능성은 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30일 페이스북을 통해 “단 1초만 늦었어도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생각만 해도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것 같다”며 “그동안 비슷한 범죄는 수없이 많았고 이렇게 흉흉한 영상이 공개된 것도 처음이 아니다. 피해자들은 겁에 질려 수 차례 신고했지만 경찰의 대응은 늘 소극적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세상의 반은 여성인데 이들의 삶은 언제나 위험으로 가득하다. 특히 1인 가구 비율이 28.6%인 오늘날 최근 3년간 주거침입 성범죄가 무려 약 1000건인 현실은 차라리 악몽이면 낫겠다 싶을 정도”라며 “경범죄라고 안이하게 대처하는 경찰과 근본 대책없이 반짝 관심에만 그치는 정치권 모두 각성해야 한다. 국회는 1999년 처음 발의되어 20년째 폐기와 계류를 반복하는 스토킹 범죄 법안들을 하루 빨리 처리해야 한다. 정의당도 작년 3월 스토킹범죄처벌특례법을 발의했지만 여전히 계류 중이다. 국회가 공전하는 사이 국민의 삶은 매일 위협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력 성범죄는 △면식범으로 인한 데이트 폭력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고 △전혀 모르는 범죄자의 표적이 되어 일어날 수도 있다. 어찌됐든 현재 사법적 환경에서 여성은 범죄 피해를 당한 뒤에야 신고할 수 있다. 수사기관이 의지를 갖고 움직이려면 피해가 발생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갈수록 혼자 사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고 그런 만큼 스토킹 수준에서 예방하지 않을 경우 참사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지난 27일 오전 A(36)씨가 범행 전 모자를 쓰고 피해자 아파트에 찾아가는 모습. 전남 순천경찰서는 성폭행을 시도하고 저항하던 피해자를 숨지게 한 혐의(강간치사)로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2019.5.29 [전남지방경찰청 제공]
지난 27일 강간치사범이 범행 전 모자를 쓰고 피해자 아파트에 찾아가는 모습이다. 전남 순천 경찰서는 성폭행을 시도하고 저항하던 피해자를 숨지게 한 혐의로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지난 4월 경남 진주의 아파트에서 방화 살인을 저지른 안인득 사건의 경우에도 위층의 여고생을 지속적으로 스토킹했던 전조가 있었지만 경찰은 미온적이었다. 또한 2012년 10월 이번 사건과 똑같은 일이 인터넷 커뮤니티(보배드림)에서 이슈화 된 적이 있었는데 다시 환기되고 있다. 

해당 글 작성자는 “지하철에서 내렸더니 어떤 남자가 번호를 달라길래 남자친구가 있다고 하고 집에 가고 있었다”면서 “(집에 거의 도착해서) 엘리베이터 층을 누르고 앞을 보는데 문 닫히는 순간에 번호를 달라고 했던 남자가 계단으로 올라가더라”라고 묘사했다.

이어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연 순간 그 남자가 달려왔다”며 “내가 소리를 지르고 문 닫으니까 다시 계단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몸에 힘이 빠져서 문 닫고 주저앉아 울다가 정신 차리고 글을 쓴다. 그 놈이 내 집을 안다는 게 너무 무섭다. 여자 혼자 다니기 힘든 세상이라는 게 느껴졌다. 당장 내일 일 나갈 때 어떡해야 하나”라고 고통을 호소했다. 

작성자는 경찰에 신고해서 CCTV 영상을 보여줬음에도 “직접적으로 터치한 것도 없고 집으로 들어온 것도 아니라서 사건 접수가 안 된다. 앞으로 순찰을 강화하도록 하겠다”는 답변만 받았다고 밝혔다. 

여성 공포 사회는 이미 펼쳐져있지만 향후 어떻게 개선해가는지가 중요하다. (캡처사진=채널A)

결론적으로 ④에 대한 사회적 각성이 일어나야 ①②③이 현실화될 수 있다.

심 의원은 “이미 여성들은 성범죄 알리미 사이트 주소와 각종 방범 용품 정보를 공유하며 불안 속에 자신을 지키려고 애쓰고 있다. 여성을 위한 공권력은 어디에 있는가? 용의자를 강력히 처벌해달라는 청와대 청원도 혼자 자취하는 딸을 둔 불안한 부모가 올린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남성이라고 여기서 자유롭지는 않다. 여성이 잠재적 피해자가 되어 불안할 때 남성은 부당하게 잠재적 가해자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공권력이 제 역할을 못 하니 전체 시민이 피해를 본다”고 주장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