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동 강간미수범 구속
법원이 혐의 인정
남성들이 해야 할 일
스토킹법 제정
상상 초월하는 여성의 공포
경찰의 의지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소위 “신림동 강간미수범”으로 불렸던 조씨(30세)가 구속됐다. 당초 법조계의 회의적인 전망과는 달리 법원에서 전향적으로 판단했다.

신종열 영장전담 부장판사(서울중앙지방법원)는 5월31일 15시부터 30분간 조씨에 대한 구속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한 뒤 8시간 동안 고심했다. 적용된 혐의가 성폭력범죄처벌특례법 위반(주거침입강간미수)인데 강간미수를 인정하려면 신체적 접촉에 이르렀거나 옷을 강제 탈의시키는 수준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임지영 변호사(대한변협 수석 대변인)는 영장이 발부되기 전 기자와의 메시지 교환을 통해 “문을 강제로 열려고 하거나 출입을 시도하는 것만으로는 강간죄 실행의 착수라고 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며 “주거침입이라고 해도 도주 우려나 증거인멸 등 구속영장 발부 요건에 해당하는 경우 발부될 수 있다. (경범죄 처벌법상) 스토킹 적용 가능하고 도를 넘는 정도의 행위로 해악의 고지, 폭행이나 협박 수준에 이를 경우 폭행이나 협박죄가 성립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조씨는 구속됐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당초 경찰도 주거침입 혐의로 조씨를 긴급 체포했지만 국민 여론이 들끓고 추가 공개된 CCTV 영상으로 인해 성폭행 실행에 착수했다고 판단해서 영장을 신청했고 검찰이 청구했다. 이로써 경찰, 검찰, 법원이 조씨 범행의 엄중함을 인정한 셈이다.

신 판사는 “행위 위험성이 큰 사안으로 도망 염려 등 구속 사유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조씨는 5월28일 아침 6시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집으로 귀가하는 여성을 뒤쫓았고 성폭행을 시도하려고 한 혐의를 받고 있다. CCTV로 확인된 것만 보면 조씨가 △빌라 건물까지 따라 들어갔고 △피해자가 번호키를 풀고 집에 들어가자 곧바로 따라 들어가려다가 간발로 실패했고 △이후 10분간 주변을 서성였고 △자신의 성기 부위를 만졌고 △스마트폰 라이트를 켜서 두 차례 번호키를 풀려고 시도했고 △계단에 매복해 있었고 △빌라를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 초인종을 계속 눌러 위계로 속여 출입하려고 했다.

관악 경찰서는 사후 수사로 확인된 사실관계로 봤을 때 강간미수의 실행에 착수한 것으로 판단했고 범죄의 중대성을 고려해 영장을 신청했다고 설명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5월30일 페이스북을 통해 “단 1초만 늦었어도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생각만 해도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것 같다”며 “그동안 비슷한 범죄는 수없이 많았고 이렇게 흉흉한 영상이 공개된 것도 처음이 아니다. 피해자들은 겁에 질려 수 차례 신고했지만 경찰의 대응은 늘 소극적이었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그동안 여성들이 일상적 공포감에 시달려왔던 현실을 남성들도 공감할 수 있게 해준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상징적이다. 공개된 영상이 너무 적나라했다. 그렇지만 당장 남성들이 신림동 강간미수 유튜브 영상을 공유하며 주변 여성들에게 조심하라는 말을 해준다고 세상이 나아질리는 없다. 그러면 남성들이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며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한 조언을 얻기 위해 영장심사가 진행 중인 시각 서울 중구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신지예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을 만났다. 신 위원장은 작년 6.13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고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을 슬로건으로 내걸었었다.  

신지예 위원장은 남성들이 잠재적 범죄자로 몰리는 만큼 여성들이 공포감을 느끼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신 위원장은 “방송 출연할 때 관련해서 실시간 댓글을 본 적이 있다. 스토킹법을 제정하는 것은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것이라는 댓글이 달렸다. 사실은 그렇지 않고 법률이 미비하기 때문에 불특정 다수의 일반 남성들에 대해 그런 잠재적 범죄자가 아닐까라고 하는 의심을 여성들이 품을 수밖에 없다”고 운을 뗐다. 

이어 “이성적으로 보면 당연히 모든 남성들이 그런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다만 법적 시스템이 여성들을 제대로 보호해주지 않고 있기 때문에 여성이 자기 스스로를 보호할 수밖에 없게 되니까 모든 남성들을 의심할 수밖에 없고 그런 상황들이 반복되고 있다”며 “많은 남성들이 스토킹법을 만드는 것에 찬성해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경범죄 처벌법 3조 1항 41호에 따르면 “상대방의 명시적 의사에 반하여 지속적으로 접근을 시도하여 면회 또는 교제를 요구하거나 지켜보기, 따라다니기, 잠복하여 기다리기 등의 행위를 반복하는 사람(지속적 괴롭힘)”에 대한 처벌 수위는 △10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과료 △구류(1일 이상 30일 미만의 유치장 생활)에 불과하다. 

이미 국회에는 많은 스토킹 처벌법이 발의돼 있다. 

임 변호사는 “스토킹 단계를 구성요건별로 세분화하여 처벌 수위를 현재보다 올리고 위험이 명백한 상황에 대해서는 접근 금지 등 예방 조치를 늘려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신 위원장은 “스토킹법이 거론되는 이유가 성폭력 뿐만이 아니라 집을 쫓아간다거나 위협감이 들도록 만드는 여러 행위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스토킹이라고 하면 헤어지는 연인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거나 반복되는 일이라고만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 전혀 모르는 사이라도 집으로 쫓아간다거나 등 뒤를 밟은 행위 자체만으로 처벌이 가능하도록 보완돼야 한다. 스토킹법의 골자가 그런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군대 인권을 증진시키는 일이 여성의 삶과 무관한 게 아니듯이 스토킹법을 제정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신 위원장은 “남성도 스토킹을 당할 수 있다. 얼마 전에 일본 여성이 남자친구를 칼로 찌른 경우가 있었다. 칼로 찔러서 내장을 밖으로 꺼냈다고 한다. 이런 것만 봐도 스토킹의 대상은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도 포함될 수 있다. 스토킹은 성별을 가리지 않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성 대립으로 바라보지 않는 게 정의의 관점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신 위원장이 밝혔듯이 스토킹법은 남성들이 단순히 구애하는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는 것이라고 여길 필요가 있을까.

신 위원장은 “뭐 여성이 골목길을 가는데 자꾸 뒤를 보면서 자기를 범죄자처럼 생각한다는 이런 게 남성들이 갖는 분노라고 하더라. 자기는 범죄를 저지를 생각도 없는데 여성들이 과대망상에 걸려서 노이로제처럼 과민 반응을 한다고 하는데. 돌려서 생각해보면 그런 취급을 많은 남성들이 겪었던 만큼 동시에 그만큼의 수로 그러한 불안감을 갖고 여성들이 살아간다는 걸 남성들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인식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사회에 여성 폭력이 만연하고 그것에 따른 시스템 보완이 필요하다는 걸 이해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걸 자꾸 성대결의 구도로 가져가서 페미들이 나선다고 여기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비효과처럼 많은 남성들이 이대로 가면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고 재차 당부했다.   

여성들이 얼마나 큰 불안감을 갖고 살아가는지와 관련해서 신 위원장은 “여성들이 불안하고 각자도생 할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혼자 사는 여성들에게 팁이 있을 정도다. 전통적으로 남성 구두를 둔다거나 빨래를 널 때도 남자 팬티를 따로 사서 놔둬야 한다거나. 배달 음식 왔을 때 ‘네 문 앞에 놓고 가세요’ 이런 남성 음성이 반복되는 어플을 깔아본 적도 있다”고 풀어냈다.

이어 “여성도 여성 뒤에서 밤에 걸어다닐 때 괜히 미안하다. 소리가 나니까 나도 앞질러 간다”며 “나는 성범죄 피해를 경험한 적도 있고 (누군가 당하는 것을) 본 적도 있다. 누군가 (범행을) 시도하려고 할 때 내가 다가가서 살짝 쳤다. 구해줬다기 보다는 그런 사건이 안 일어나도록. 성추행은 (의외로) 갑작스럽게 일어나지 않는다”고 여성의 공포감이 당연하다는 점을 집약해서 묘사했다.

신 위원장은 조씨에 대해 “굉장한 지능범이라고 생각한다. (성범죄 처벌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고 술에 취했다고 하던데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고 오히려 키패드(번호키)를 들여다 보려고 하는 걸 보면 성범죄 전력은 없는지 따로 확인해보는 게 중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스토킹 처벌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한 신 위원장. (사진=박효영 기자)

스토킹법 제정 외에도 당장 여성의 안전을 위해 필요한 일들이 많다. 

일단 신 위원장은 “여성안심귀가 스카우트라고 서울시와 여성가족부가 운영하는 것이 있다. 나는 이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 자체가 주는 함의는 이걸 해야 할 정도로 여성들이 밤길을 걷는 것을 두려워 한다로 받아들여야 한다. 안심귀가 스카우트를 하는 중년 여성들도 이걸 마치고 귀가할 때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경찰의 의지다. 

신 위원장은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적절히 조치해서 피해받는 시민들이 없도록 예방하는 것도 경찰의 의무”라며 “이런 여성 폭력, 가정 폭력 등 이런 범죄를 개인 간의 갈등으로 취급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경찰의 모습이 너무 고질적으로 지속됐다. 스토킹법이 제정되기 이전에라도 경찰 내부에서 이런 위법들이 벌어졌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가이드라인을 만들거나 관련 교육을 철저히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들어오는 성폭력 사건에 대한 접수를 가볍게 넘기지 말고 이 사건이 지금 가벼워 보여도 강력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철저하게 예방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보면 (경찰이) CCTV를 먼저 확보하라고 하고 피해자에게 들고 오라고 하는 것은 책임 방기라고 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끝으로 신 위원장은 “제일 좋은 것은 국회가 법을 제정하는 것이겠지만 그게 되지 않는 상황에서 경찰이 나몰라라 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조직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모색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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