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점상 키워드 삭제 작전
바닥 뜯어내고
백 상무와 서 상무
삼바와 에피스 대표까지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공소장을 보니까 예상보다 훨씬 더 철저하게 감추고 인멸하려고 했던 것이 드러났다. 삼성그룹 컨트롤타워(구조조정본부→전략기획실→미래전략실→현 사업지원TF) 차원에서 전광석화 같이 관계된 컴퓨터 파일들이 다 삭제됐고 심지어 삼성 바이오로직스(삼바)와 바이오에피스(에피스) 수장들의 PC도 제거 대상이었다. 

대대적인 증거인멸 작전이 이뤄진 시점도 2018년 5월이었는데 그때 금융감독원이 삼바에 대한 △행정 제재 △검찰 고발 등을 위해 움직이던 시기였다. 삼성은 어떻게든 금감원 선에서 막고 싶어했고 검찰의 강제 수사로 넘어가는 것에 대해 히스테리적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검찰 수사가 현실화되다 보니 증거인멸을 급하게 감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 모든 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문제를 위해서였다.

이재용 부회장을 위해 모든 회계 사기극이 자행됐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3일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무부에서 제출받은 공소 사실에 따르면 삼성전자 백 상무와 서 상무(보안선진화TF)는 인천 연수구 삼바 공장에 들이닥쳐 이 부회장의 흔적이 기록된 키워드를 삭제했다. 서 상무가 현장으로 직접 가서 진두지휘했고 백 상무는 총괄 책임자 역할을 맡았다.

방식은 이런 것이었다. 검열 대상이 된 삼바 직원들이 직접 컴퓨터를 들고 특정 장소에 들어가면 서 상무의 지시를 받은 직원들이 △VIP △JY △부회장 △사업지원TF △미전실 △상장 △나스닥 △합병 △IPO 등 이런 키워드들을 추출해서 삭제했다. 

백 상무는 진행 경과를 보고받고 “적극적으로 키워드를 확대해보자”는 방침을 내린 것으로 밝혀졌다. 마치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은 수사 검사와 다름 없었다.

2018년 7월이 되자 키워드 범위는 △그룹 △보고 △옵트인 △오로라 △중장기 △감리 등으로 확대됐다. 오로라는 미국 바이오 기업 바이오젠이 에피스에 대해 콜옵션(정해진 가격에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을 행사하게 됐을 경우를 대비하기 위한 프로젝트 작전이다. 즉 7월에 이르러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삼바의 회계 사기극에 대해 고의성을 인정하자 증거인멸의 범위가 그에 맞게 확대된 것이다. 

더 나아가 삼바 직원들의 스마트폰을 일괄 제출받아 SNS·이메일·인터넷 검색 기록을 다 뒤져서 제거했다. 심지어 깊게 연루된 직원들의 경우 스마트폰을 초기화시켜 버렸다. 2018년 8월 이후 백 상무는 마음이 급해졌는지 삼바 공장을 직접 찾아가서 증거인멸을 총괄 지휘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 부회장이 지난 1일 경기도 화성사업장에서 열린 글로벌 경영환경 점검 대책 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동훈 삼성디스플레이 사장, 이 부회장,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 부회장, 정은승 삼성전자 DS부문 파운드리 사업부장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공장 바닥도 뜯어졌다. 바닥이 두 번이나 뜯어졌고 거기에 핵심 서버가 은닉됐다. 먼저 △2018년 5월 PC와 노트북 20대가 3공장 1층 회의실 바닥에 은닉됐고 △6월에는 1공장 6층 통신실 바닥 타일 아래에 추가 서버들이 보관됐다.

여기까지는 다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에 새로 드러난 것은 김태한 삼바 대표와 고한승 에피스 대표가 사용한 스마트폰과 PC에 대해서도 그 삭제 작업이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서 상무와 백 상무가 이토록 무리하게 수사기관처럼 증거인멸에 나선 것은 스스로 삼바의 회계 사기극이 중대한 범죄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특히 그 사기극이 삼바의 대주주인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합병시키기 위한 것이고 이는 이 부회장의 삼성 경영권 승계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향후 송경호 부장 검사가 이끄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2부는 두 상무의 공소 유지를 담당할텐데 재판 진행 경과를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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