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씨들의 하루] “보리순 끓여 배 채운 그 시절 이젠 그리워”
[무명씨들의 하루] “보리순 끓여 배 채운 그 시절 이젠 그리워”
  • 신현지 기자
  • 승인 2019.06.13 13: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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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세 아파트 미화원 오 모씨의 하루
(사진=신현지 기자)

[중앙뉴스=신현지 기자] “뭐가 힘들어, 재밌지, 이 나이에 일을 하는 건 행복한 거잖아, 더구나 우리 나이에 일자리 주는 데가 어디 그리 흔한가.”  

구로구의 한 아파트 현관을 부지런히 닦아 내리고 있는 오명순(78세, 가명)씨. 젊은 사람들이 수시로 들락거리는 사이를 비켜가며 현관바닥을 닦고 있는 노인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말을 건네니 혹여 빗자루라도 뺏길 새라 재빨리 손을 내저어 대답이다. 

그래도 아파트 청소보다는 경로당 출입이 어울릴 연세로 보여 허리는 아프시지 않느냐고 물으니 단번에 아니라며 엘리베이터를 세워 그 안까지 구석구석 물걸레질이다. 그런 중에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는 주민과 꼬박꼬박 인사를 챙기느라 눈웃음을 잊지 않는다.

그 웃음에 지나치려던 걸음을 돌려 연세를 물으니 먹을 만큼 먹었다며 답을 회피하다 78세라고 작은 소리로 말한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80은 넘어 보이는 모습이라 쉽게 걸음이 옮겨지지 않는다.

(사진=신현지 기자)
(사진=신현지 기자)

그러니까 오명순 씨는 이곳 2천 세대가 넘는 H 아파트의 청소원. 아파트 각 동의 층을 오르내리며 현관과 계단, 엘리베이트 내부, 유리창 등을 청소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월. 벌써 4개월째라 이 일도 손에 익숙해져 처음보다는 한결 수월해졌다. 하지만 가탈을 잡는 주민들이 간혹 있어 생각보다 이 일도 쉽지만은 않다.

물론 오 씨 혼자 아파트 청소를 담당하는 건 아니다. 오 씨와 같은 연배의 노인들 13명이 이 이곳 아파트에서 일을 하고 있다. 청소노인들 한 달 월급은 90만원.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오후 3시 퇴근이라 노인들이 일하기는 딱이라고 오 노인은 자랑이다.

“다른 곳은 130이라는데 여기는 솔직히 월급이 너무 적어. 그래도 노는 것보다는 나아. 집에서 놀아봐, 자꾸 아픈 데만 생기고 서글퍼지고 그러잖아, 그래서 우리 애들도 내가 일하는 것 다 찬성이야, 요즘 젊은 사람들 속이 그렇게 옹졸하지 않잖아.

예전에 우리 같으면 부모가 청소원으로 일한다고 하면 자식들 챙피하게 다 늙어 무슨 청승이냐고 난리였는데, 요즘 애들은 안 그래. 오히려  아프지 않고 활기차 보인다며 좋아해. 놀면 수시로 병원에 댕기는 게 일이잖아”

그래도 매일 아침 9시에 출근하는 건 쉽지 않을 거라 말하니 대뜸 고개를 저어 말한다. “아침 9시까지 출근하는데 뭐가 힘들어, 그 시간이면 해가 하늘 한가운데 동동 떠서 시골 같으면 벌써 밭 서너 골은 메고 새참을 먹을 시간인데.”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노인도 부천의 집근처 동네에서 일하는 것이 불편해 전철을 타고나와 서울에서 일자리를 구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 애들은 괜찮은데, 동네사람들이 보면 아무래도 좀 거시기 하게 볼 것 같아서 집에서 떨어진 동네로 나왔어, 지하철도 공짜라 교통비도 들어가지 않고, 또 오며가며 서울 구경도 하고, 그리고 여기서 같이 일하는 할매들이 다 성격들이 무난해. 그래서 여기 안 나오는 빨간글씨날에는 여기 할매들이랑 맛있는 것 먹으러 댕기기도 하고 그래,

지난주는 광명동굴까지 가서 구경하고 밥도 사먹고 차도 사마시고 그랬어. 내가 벌어서 돈쓰니 자식들 눈치 볼 것 없어 더 좋아. 손주들도 한번 씩 오면 가들 용돈도 좋고. 애기들도 돈 주면 다 좋아하잖아. 그러니까 늙어도 돈이 최고야.”

이렇게 말을 하는 오 씨는 오늘 자신이 점심 당번이라 청소를 빨리 끝내야 한다며 서두른다. “아이고 오늘은 내가 좀 바빠. 밥당번이거든. 처음엔 다들 도시락을 싸갖고 댕겼는데 늙은이들이 찬밥덩어리 먹고 일을 하려고 하니 영 아니더라고.

(사진=신현지 기자)
(사진=신현지 기자)

늙은이들은 밥이 힘인데, 또 아침마다 도시락 챙기는 것도 귀찮고. 그래서 이곳 아파트 경비실 주방에서 점심을 해 먹기로 했어. 여자가 10명, 남자가 3명인데 다들 집에서 쌀을 가지고 와, 반찬은 당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만들어 먹고, 오늘은 내가 당번이라 우리 옥상에 심은 상추를 뜯어왔어, 상추쌈하려고.

그런데 안 가고 왜 자꾸 뭘 묻는 거시당가. 거기 엄니도 이일을 해보고 싶다고 하는가? 그런데 이일도 줄이 없으면 힘들어, 자리가 없어, 나는 여기 청소반장을 알고 있어서 쉽게 구했는데 그렇지 않으면 자리가 없어 힘들어, 다들 어떻게 일을 구했냐고 사람들이 물어봐.

혹시 일자리 나오면 자기도 일자리 좀 알아봐달라고. 암튼 거기 엄니도 그런 모양인데 나이가 너무 많으면 안 돼. 80넘으면 아무짝에도 소용없어, 난 다행히 청소반장을 잘 알아서 나이 상관없이 여기를 오게 된 건데 고맙고 조심스럽지. 그래서 일 못한다는 말 들어갈까 봐 많이 조심하고 있어.”  

오 씨는 말을 하는 동안에도 어느새 계단 끝의 신주를 반짝반짝 광이 나게 닦아놓고는 그래도 안심이 안 된다는 듯 마른 걸레로 다시 구석구석 털어 훑어 내린다. “아파트 여자들이 말이 많고 까다롭잖아.

그래서 웬만히 비위 좋지 않은 노인들은 이 일 못해. 새파랗게 젊은 사람들이 얼마나 비위를 상하게 한다고. 실컷 고생해놓고도 트집 잡히면 기분도 나쁘잖아. 또 반장 귀에 들어가면 서로가 입장이 곤란하고. 그러다 보면 이일도 오래 못하고 끝이야.”

이처럼 허심탄회 속을 털어낸 오 씨는 슬쩍 고향을 묻는 기자의 물음에도 감출 것 없다는 듯 시원스운 대답이다. “전라도 목포 알지?  거기가 내 고향이여. 시내에서 두어 시간은 차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시골동네여. 징그럽게 가난했어. 우리 친정도 가난했지만 시집은 더 가난했어.

우리 친정아버지가 신랑이 사람이 좋다고 나를 한 동네 총각한테 시집보냈는데 사람이 좋으면 뭐해. 우선 배가 고픈데. 사람이 좋기만 하니 어디가 쌀 한 됫박 꿔오기를 하나 나무 한 짐을 팔아오기를 하나. 

그러다보니 굶기를 밥 먹듯 했어, 봄 되면 보리순을 비어다 국을 끓여 그것으로 배를 채우곤 했어. 그러니 우리 애들이 여섯이나 되는데 가들도 제대로 된 밥구경 한번 못하고 키웠어. 얼마나 배가 고프게 키웠으면 가들이 중학교 졸업하고 지들 혼다 서울로 왔겠는가. 나중에 막내까지 서울로 올라오면서 나도 애들 따라서 서울로 왔어. 

그러니 어느새 30년도 넘었네. 그때는 우리처럼 동네를 뜬 사람들이 많았어. 시골에서는 먹고살기 힘드니.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참 좋았던 것 같아. 젊었으니 나도 그때는 이쁘단 소리 많이 들었잖은가.”  

이렇게 서울로 올라온 오 씨가 자리 잡은 곳은 경기도 안산. “한 사람 누우면 딱인 그런 방이었어. 그런 방에서 일곱 식구가 살았어. 나는 링거 만드는 공장에 다녔는데 돈을 만져보니까 살맛이 나더라고. 15년 다녔는데 참 재미나게 일했어. 따박따박 월급이 나오니 애들이랑 돈을 모아서 부천에다 집을 산 것이 아직도 거기서 살아. 

이제 애들은 다 결혼하고. 막내는 선생이여. 중학교 선생인데 가가 젤로 효자여. 엊그제도 엄니 건강하라고 비타민제도 사다주고... 그러니 이제는 먹고 사는 것은 걱정이 없는데 나이를 먹으니 자꾸 옛 생각이 많이 나. 가난했던 그 시절이 뭐가 좋다고.

그때는 젊어서 좋았던 모양이여. 지금은 나이를 먹으니 세상일이 다 시들해지잖은가. 오매,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오늘 거기를 처음 봤는데 내가 너무 쓸데없는 소리를 많이 한 것 같아.

그러니 늙으면 말을 줄이라고 하더만, 어디 그게 쉬워, 암튼 노인 일자리는 공공근로도 있으니 거기라도 알아보더라고” 라며 황급히 자리를 뜨는 오 노인. 본지는 오 노인을 통해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는 대한민국 노인의 현 주소를 다시 한 번 점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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