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 수사권 조정 놓고 갈등 심화



















경찰이 검찰에 절대적인 복종 의무를 지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습니다.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가 따로 있습니까?"

1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 경찰 출신인
한나라당 이인기 국회 행안위원장이 개최한 '수사현실의 법제화 입법공청회'에 2000여명의 전·현직 경찰들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이 의원의 연설에 일제히 "옳소!", "잘한다!"며 박수를 쳤다. 자리가 앉지 못한 1500여명은 의원회관 로비와 국회 잔디밭까지 메웠다.



사개특위에서 심의 중인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였지만 '검찰 성토대회', '경찰 궐기대회'에 가까웠다. 이인기 의원은 "오늘 오전 국무총리가 '검·경 수사권 조정' 최종안을 던졌다"며 "총리가 제시한 안을 사개특위에서 수용해, 이번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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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실의 조정안은 '경찰은 검사의 지휘를 받아 수사를 해야 한다'는 현행 형사소송법 196조의 문구를 쪼개, 형소법 195조2항에 '사법경찰관은 수사에 관하여 검사의 지휘를 받는다'라는 조항을 두고, 형소법 196조를 '경찰은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인식하는 때에는 범인, 범죄 사실과 증거에 관해 수사를 개시·진행해야 한다'로 개정하는 내용이다.




조정안은 '사법경찰관은 검사의 지휘가 있는 때에는 이에 따라야 한다'는 조항도 뒀다.

그러나 검찰은 이를 거부한다는 입장이다. 일선 검찰청에선 집단반발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는데 검사들의 논리는 "조정안대로 갈 경우 국민의 인권보호를 후퇴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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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이날도 검찰 상층부의 대(對)국회 로비는 계속됐다. 대검의 고위간부가 검찰 출신 한나라당 의원 4명의 방을 찾은 것도 그 때문이다.




현재 국회의원 중 법조인 출신은 전체 296명의 21%인 62명이고 사법개혁특위 소속 한나라당 의원 10명 중 5명이 검사 출신이다.

검찰은 그동안 수사지휘권을 사수하기 위해 이들 상대로 대대적인 로비를 펼쳐왔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법무부대검의 고위 간부들이 약속없이 불쑥 찾아와, 의원이 돌아올 때까지 기약 없이 기다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국회 사개특위는 이날 오후
이주영 위원장과 한나라당 주성영·이한성 의원, 민주당 김동철·박영선 의원이 참석한 '5인 회의'를 열고, 총리실 조정안에 대해 "공식적인 중재안이라 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사개특위 관계자는 "20일 전체회의 전까지 총리실에서 다시 조정안을 보내올 것 같은데 그것도 불발되면 그야말로 정면충돌 양상이 벌어질 것"이라고 했다.

특히 일부 참석자들 사이에서는 경찰 지도부가 전국 각지에 있는 일선 경찰을 동원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실제로 회관 주변에는 이들을 단체로 운송한 대형버스 10여대가 늘어서 있었다.
공청회에서 참석자들은 검찰을 성토하고 수사권 조정을 위한 결의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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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는 축사에서 "검찰에 권한이 집중돼있다"며 "권력 남용과 부패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고, 행안위 소속 한나라당 임동규 의원은 "경찰이 수사를 개시하는 현실을 반영하자는 것인데 검찰이 난리를 친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검찰이 경찰을 지휘하고, 경찰이 검찰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형사소송법을 가진 국가는 대한민국밖에 없다"며 "이는 분명 잘못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경찰 재직 경험을 이야기하며 "책임만 있고 권한은 없는 수사구조는 잘못된 것"이라며 "내 소명은 수사권 조정 법제화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이 발언을 하는 동안 방청석에서는 10여차례에 걸쳐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발제자로 나선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힘의 균형을 위해 수사는 경찰이, 사건종결과 기소는 검찰이 담당해야 한다"며 "검사가 사법경찰보다 낫다고 말하는 논거가 무엇인가"라고 가세했다.

이세민 경찰청 수사심의관 역시 "현 체제 하에서는 검찰이 경찰 사건를 가로챌 수 있다"며 "수사권 조정을 `수사권의 이원화'라고 주장하는 것은 기만이고 논의를 무산시키려는 의도"라고 수위를 높였다.

특히 서경진 변호사가 "현 수사 체계에 변화를 줄 만큼 문제가 있지 않다"고 말하자 방청석에서 "말도 안된다", "그만하라"는 고함이 터져 나왔다.

한편 경찰청 관계자는 경찰 동원 의혹에 대해 "내부 게시판에 행사명과 일시, 장소 등을 공지하고 자발적 참여를 유도한 것은 맞지만 공문을 내려 참석을 지시하지는 않았다"며 "모두 자발적으로 참석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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