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 석재 채취 금지하는 금표(禁標)도 남아.."

 

강북구 수유동 구천계곡 일대 유적 분포 (사진=서울시 제공)
강북구 수유동 구천계곡 일대 유적 분포 (사진=서울시 제공)

[중앙뉴스=신현지기자] 구천계곡 일대에서 조선시대 왕릉 채석장의 흔적을 발견했다. 
서울시는 조선왕릉 가운데 하나인 사릉(思陵, 정순왕후의 릉)의 석재를 채취했던 채석장을 강북구 수유동 구천계곡 일대에서 확인하여 서울시 기념물 제44호로 지정하게 됐다고 22일 밝혔다.

서울시에 따르면 이번에 문화재로 지정되는 ‘사릉 석물 채석장’은 그동안 정확한 장소를 찾을 수 없었던 조선 왕릉 채석장의 소재지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사릉은 단종 비 정순왕후(定順王后) 송씨(1440~1521)의 묘였으나, 숙종 24년(1698년) 단종이 복위되자 묘에서 릉으로 격상되면서 격식에 걸맞는 각종 석물을 갖춘 왕릉으로 조성되었다. 이 때 현재의 북한산 구천계곡 일대에서 석재를 채취하고 그 사실을 계곡 바위에 새겨 남겼다. 

이번에 확인된 구천폭포 인근 바위에는 ‘기묘년(1699년) 정월(1월)’ 사릉을 조성하는데 필요한 석물을 채취하면서 그 업무를 담당했던 관리들과 석수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사진=서울시 제공)
인평대군의 호를 따서 이름 지은 송계별업(松溪別業 )을 새긴 구천계곡 바위 글씨(사진=서울시 제공)

그동안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었던 조선 왕릉의 채석장은 한국산서가 발견하고 이를 학계에 보고하면서 문화재로 인정받게 되었다.한편 발견된 채석장은 북한산 국립공원 안의 구천계곡 일대로 일반 백성의 접근과 석물 채취를 금하는 ‘금표(禁標)’와 ‘부석금표(浮石禁標)’가 바위가 계곡을 사이에 두고 하류 남북측에 있다.

또한 구천계곡 일대는 인조(仁祖)의 셋째 아들 인평대군(麟坪大君, 1622~1658)이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별장을 짓고 자신의 호를 따서 이름지은 ‘송계별업(松溪別業)’이 자리했던 곳이다.

기록에 따르면 송계별업에는 보허각(步虛閣), 영휴당(永休堂), 비홍교(飛虹橋) 등의 건축물이 계곡을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었으며 이외에도 ‘구천은폭(九天銀瀑)’, ‘송계별업(松溪別業)’ 등의 바위글씨가 곳곳에 새겨져 있었다고 전한다.

인평대군은 총 네 차례에 걸쳐 사은사로 청나라에 다녀오는 등 병자호란 이후 왕실의 안정에 크게 기여하여 인조의 신임이 두터운 인물이었다. 그가 청나라에서 돌아온 후인 1646년에 조성했던 송계별업은 현재 건물과 다리 등은 모두 소실되고 ‘九天銀瀑(李伸 書)’, ‘松溪別業(필자 미상)’ 바위글씨와 건물이 들어섰던 것으로 추정되는 터만 남아있다.

인평대군 사후, 그의 후손들이 1680년 역모 사건에 휘말려 축출되어 송계별업의 관리가 소홀해 지고, 구천계곡이 왕릉의 채석장으로 정해지면서 별장과 계곡의 아름다운 풍광이 급속히 파괴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서울시 문화재위원회에서는 “이러한 역사적 의의를 모두 인정하고, ‘사릉 석물 채석장’과 ‘송계별업 터’를 각각 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존하기로 의결했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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