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유(世有) 천리마(千里馬)라도 유백락(有伯樂)이라야...

 

김정오(수필가, 문학평론가)
김정오(수필가, 문학평론가)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鄭道傳)은 인재를 찾는 눈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삼봉집(三峯集)에 “득인재부약득일상(得人才不若得一相)”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득백기기, 불약득일백락(得百騏驥, 不若得一伯樂), 득백태아, 불약득일구야(得百太阿, 不若得一甌冶).” 백 필의 천리마(千里馬)를 얻는 것이 한 사람의 백락(伯樂 명마(名馬)를 감별하던 주나라 사람)을 얻음만 못하고, 백 자루의 태아(太阿 보검)를 얻음이 한 사람의 구야(甌冶 칼을 잘 만들었던 오(吳)나라 사람)를 얻음만 같지 못하다.

인재를 찾아내야 한다는 말이다. 당 나라 시인 한유(韓愈)도 다스리는 이는 뛰어난 안목(眼目)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루에 천리를 달릴 수 있는 명마(名馬)라도 백락(伯樂)이 없다면 찾지 못한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그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사람이 없다면, 그 재능은 묻혀 버린다는 뜻이다. 백락(伯樂)과 천리마(千里馬)의 이야기가 한유(韓愈)의 잡설(雜說) 백락일고(伯樂一顧)에 나온다.

세유백락(世有伯樂) 연후(然後)에 유천리마(有千里馬) 천리마(千里馬) 상유(常有)나 이백락(而伯樂) 불상유(不常有).  “세상에 백락(伯樂)이 있고, 천리마(千里馬)가 있는 것이다.

그가 말(馬)을 한번 보면 그 가치를 알아본다. 천리마(千里馬)는 언제나 있지만 백락(伯樂)은 언제나 있지 않는다. 어느 날 백락(伯樂)이 하인의 손에 이끌려 소금수레를 끌고 가는 말이 천하의 명마(名馬)를 알아냈다.
  
그 말을 영웅이 타고 천하를 누비는 천리마(千里馬)가 될 수 있게 하였다. 백락일고(伯樂一顧)는 여기서 나온 말이다. 뛰어난 인재는 언제나 있지만 그 인재를 알아보는 눈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있지 않다. 뛰어난 인재라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묻혀 버리고 만다.

세종대왕은 훌륭한 충신들을 곁에 두고, 태평성대를 누리면서 한글을 창제, 영원한 성왕으로 우러름 받고 있다. 삼국지에서 유비도 관우, 장비, 재갈공명을 옆에 두고 천하의 영웅이 되었다. 모두 백락(伯樂)의 눈이 있었기에 그러했다.

왜구의 침략을 예견했던 율곡은 역사적 방향을 보는 백락(伯樂)의 안목(眼目)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안목이 없는 선조는 율곡의 대비에 대한 건의를 받아드리지 않았다. 결국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든 왕으로 기록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은 감조전선출납군병군관(監造戰船出納軍兵軍官)이던 나대용 장군을  조선장(造船將)으로 임명, 거북선을 만들게 하여 나라를 구할 수 있었다. 백락(伯樂)의 눈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9세기 중엽 서구충격(西歐衝擊;western impact)과 일제 침략 때에도 백락(伯樂)의 눈을 가진 영웅이 있었더라면 역사의 길(道程)은 달라졌을 것이다.

 이육사는 그의 시「광야」에서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曠野)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고 읊었다. 지금 눈 비 내리는 이 광야(曠野)에서 겨레를 지켜주기 위해 백락(伯樂)의 눈을 가진 초인(超人)이 백마를 타고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우리 모두의 마음일 것이다.
 
김정오(수필가,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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