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최봄샘 기자
사진 / 최봄샘 기자

 

백야행

최 한 나

 

 

자작나무들은 꽝꽝 얼어붙은 바람으로 숨 쉰다

 

체온을 한껏 낮추고 누워있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꽝꽝 언 날씨이다

심장이 숨는다 광활한 시베리아 숲의 심장은 몸 곳곳마다 저체온을 뿌려댄다

어느 단단한 고체보다 무거운 통증. 가늘고 날카롭게 기계음을 곡선으로 변주한다

 

눈멀도록 희디 흰 뼈들을 닮은 자작나무들, 몰핀이 투여된 듯 백야는 견딘다

정지된 설원의 스크린을 달리는 생몰의 시간, 사람과 시신 사이에서 망설이는

숨소리는 수선된 몸을 돌아다닌다

 

얼음비늘 같은 자작나무의 호흡을 태운 숨 그네*를 미는 무서운 바람이 분다. 늑대의 잇몸처럼 피 묻은 칼을 핥는 혀처럼 자신의 피를 먹고 견디는 자작나무들은 사람의 미세한 혈관 감각

 

사람의 속은 봄을 부르는 불굴의 백야다

 

마침내 봄이 이쪽으로 돌아선다. 순록들이 찾아온다. 사슴뿔에 매달려 망설이던 숨이 사람 쪽으로 방향을 튼다

 

푸른 이끼색깔의 환승이다

------------------

  그런 기억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철퇴를 맞은 후 남은 트라우마라고 해야 할까? 트라우마가 트라우마를 낳고... 살다보니 지리멸렬했던 나날들이 있었다. 특히 중환자실의 기억은 지금도 한 장의 지옥도 같다. 마치 설원의 자작나무들처럼 하얗게 누워있던 그 환자들 중에 나 역시 절체절명의 그래프를 타며 얼어붙은 그 밤을 지나온 기억,

누가 그랬던가, 삶은 살아지는 거라고... 아니다. 살아내는 것이다. 지옥의 불길을 맛보면서도 삶 쪽에 고개를 향하고 기꺼이 살고자 할 때 살아지는 것이 아닐까? 난 그렇게 믿는다. 고통의 순간들이 지나가면 봄날의 순록들이 찾아오듯 그날 내게도 찾아와준 햇살은 신의 섭리, 운명이었을지 몰라도 나는 살아냈고 살아갈 것이다. 산다는 것이 때론 시베리야의 광활한 백야를 지나는 여정이기도 하다. 체온을 모아 호흡을 아껴가며 봄 기다리는 자작나무 그 희디흰 생존본능이 당신과 나의 혈관을 타고 흐르기에 살아지는 것 아닌가? 순록 같은 그대, 아름다운 이여!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