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시집 '아난타' 출간한 안민 시인
기도
안민
나는 오늘도 유랑 중이고
끝없이 당신과 조우했습니다
그때마다 살포시 껴안았습니다 당신의 무릎을
그리고 그 무릎 속에 살고 있는 겨울을
이 계절,
무릎이 접히는 것은 결빙을 깊게 앓았기 때문입니다
낙엽 수없이 포개지면 내 무릎을 빌려주고 싶습니다
나는 유랑 중에 혈액형을 잃어버렸지만
당신의 혈액형이 겨울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술보다 독한
저녁의 겨울,
당신 무릎을 껴안았던 내 손은 지금 불면입니다
당신 혈액형이 스며든 손은
참으로 허약하고 쉽게 글썽입니다
이러한 무릎과 손을 쓸쓸한 골목이라 명명하고 싶습니다
골목은 우울증 앓는 그림자보다 저음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내 손의 대사(臺詞)에 대해 기도한 적 없습니다
당신의 대사를 더욱 염원하기에
그러니 염려 없기를
내 손은 당신의 무릎 속에 사는 겨울만이 아니라 무릎에 얹힌 낙엽까지 존중합니다
손이 언제까지 십자가에서 분리되지 않기를 염원해 주십시오
--안민 두 번째 시집 『아난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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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짐승하고 다른 점 중의 하나가 있다면 기도할 수 있는 영혼이 있다는 것이다.
그 기도의 대상이 꼭 절대자(神)라고 생각하는 것은 일반적인 것일 수 있으나 시인에게 있어서 아니 어느 에술가的 의미에서는 다양하게 볼 측면도 있을 수 있다. 위 시는 종교시로도 볼 수도 있지만 어떤 간절한 연애시로도 읽힌다. 그것이 시를 감상할 때의 묘미이기도 하다. 시인이 의도한 의미가 무엇이든 해석의 몫은 독자의 소유이므로 그대로 아름다운 시의 향기만 음미하면 그만 아니겠는가? 위 시인의 기도는 이기적이 아닌 이타적 내용으로 읽히지만 사실은 화자 자신이 그 기도의 대상과의 분리를 두려워하는 구도적 간구로써 위로와 치유의 수단인지도 모른다. 이것이 시가 되어 독자에게로까지 당도하여 비로소 치유는 완성되어질 것이다. 함께 손 모으는 마음, ‘연인이여 행복하라,’ ‘신이시여! 당신 뜻 안에서 살게 하소서. 당신의 무릎에 사는 겨울 같은 고통과 아픈 참회와 그 무릎에 힘없이 얹힌 낙엽 같은 내 모습도 비춰보게 하소서.’
시가 된 기도 한 편이 나를 잠잠히 손 모으게 한다.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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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민 시인 /
본명 안병호. 경남 김해 출생
2010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
201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수혜
제18회 부산작가상 수상
시집 『게헨나』 『아난타』
현재 부산작가회의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