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성환 화백 (사진=연합뉴스 제공)
시사만화가 김성환 화백이 8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중앙뉴스=신현지 기] 한국의 시사만화를 대표하는 김성환 화백이 8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김성환 화백은 1932년 10월 8일 황해도 개성 출생으로 만화 ‘고바우 영감’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시사만화 작가다. 한국현대사의 굵지한 사건마다 서민의 편에서 시대를 풍자하여 어린이부터 청소년까지 다양한 독자층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김성환 화백은 ‘고바우 영감’이라는 캐릭터를 활용한 만화를 여러 매체에 발표하면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고바우 영감’이 한국의 대표적인 만화이자 만화 캐릭터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일간 신문에 연재되면서부터다.

1955년 2월 1일자 동아일보 연재를 시작으로 1963년까지는 외부 기고형태로 작품을 발표했고, 1964년에는 신문사에 입사해 ‘고바우 영감’ 연재를 이어갔다. 1980년 8월 9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한 뒤 1980년 9월 11일부터 1992년 9월까지 조선일보, 1992년 10월부터 2000년 10월까지는 문화일보에 ‘고바우 영감’을 연재했다.

이렇게 연재한 ‘고바우 영감’은 총 1만 4139회를 연재하여 한국 최장수 연재만화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또한 ‘고바우 영감’의 원화는 근대 만화 최초로 문화재청의 문화재에 등록되기도 했다.

이처럼 한국 최장수 연재만화로 기네스북에 오른 ‘고바우 영감’은 굴곡 많은 한국현대사의 사건사건마다 서민의 편에서 시대를 기록하고, 풍자하는 것을 우선했다. 이에 김성환 화백은 만화로 인해 많은 고초를 겪기도 했다.

1957년 야당 의원의 7.27 데모사건을 다룬 잡지만화로 벌금형에 이어 1958년 1월 23일 ‘고바우 영감’의 ‘경무대 똥 치우기 만화’로 서울시경 사찰과에 끌려가 고초를 당하기도 했다. 박정희 정권 에서는 중앙정보부에 2번, 검찰에 2번 끌려갔고 5일 동안 고초를 겪었다.

김성환 화백의 장례는 만화인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빈소는 분당제생병원장례식장 특8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 11일 오전 9시다. 또한, 발인에 앞서 영결식이 11일 오전 8시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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