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년만에 한국 찾아 UN기념공원 전우 묘비 앞에서 감회에 젖어

장마가 시작된 6월22일, 부산에는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졌다. 부산 남구에 위치한 UN기념공원 직원들은 이날 뜻 깊은 손님들을 맞이할 준비가 한창이었지만, 비 때문에 행사를 제대로 치룰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오후 1시40분, 드디어 공원 정문을 통해 천천히 걸어 들어오는 손님들. 바로 61년 전 6.25전쟁 때 ‘형제의 나라’ 한국을 돕겠다며 UN군 소속으로 파병된 터키 참전용사 18인이었다.

국가보훈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 중인 터키 참전용사들은 이곳에 안장돼 있는 462명의 전우들을 참배하고, 혹시 전투에서 생사를 같이 했던 동료라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에 마음이 설레는 듯 보였다.

0
6월22일 부산 UN기념공원에서 한국을 방문 중인 터키 참전용사들이 전우들의 묘비 앞에서 묵념을 하고 있다.

이들이 기념식 행사를 위해 터키 참전용사들이 안장돼 있는 묘비들 앞으로 다가서자 엄청나게 쏟아지던 빗줄기가 가늘어졌다. 하늘도 옛 전우들과의 만남을 조금이나마 위로해 주겠다는 듯했다. 터키 용사들은 이곳에 안장된 동료들을 위해 고개 숙여 묵념했다.

특히 이날 행사에는 부산국제중학교 및 동성초등학교 학생들이 터키 참전용사들에게 쓴 편지와 작은 기념품을 준비해 와 전달했다. 해외참전용사 감사편지 쓰기 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부산국제중 이서진 양은 편지를 통해 “61년 전 할아버지들이 어려움에 처한 우리나라를 도와줬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나라가 존재할 수 있었다”며 “한국에 대한 당신들의 희생은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며 편지를 낭독했다.

0
이브라힘 하키 테르케시 씨가 카네이션을 달아준 이수빈 양을 꼭 켜안으며 고마움을 표시하고 있다.

이어 학생들이 직접 만든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주고 터키어로 쓴 편지를 건넸다. 이브라힘 하키 테르케시 씨에게 편지를 건넨 동성초 이수빈 양(6학년)은 “저희 할아버지도 6.25전쟁에 참가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자신의 나라도 아닌데 먼 곳에 와 한국을 지켜주신 터키 용사 할아버지께 고맙다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고 말했다. 타케츠씨는 수빈 양의 이마에 ‘고맙다’는 표시로 입맞춤을 하고 꼭 껴안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전쟁 이후 처음 한국을 방문한 이들은 하나 같이 발전된 모습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내와 함께 온 유서프 메탑 씨는 “전쟁 당시 10미터도 안되는 거리에서 적들과 싸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지금은 그런 기억보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발전한 한국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정찰병이었던 메멧 사리카야 씨는 “참전했을 때 한국 거리에 수많은 고아가 있어 걱정이 많았는데 오늘 다시 한국에 와 밝은 표정의 초등학생들을 만나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며 “놀라운 발전을 이룩한 한국은 대단한 나라”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전쟁 때 잃어버린 장갑을 되돌려준 한국 아이들의 심성을 보면서 앞으로 한국은 대단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짐작했었다”며 전했다.

0
모하메드 코치 씨가 함께 전투를 치른 동료가 혹시 이곳에 묻혀 있는지 찾아보고 있다.
 
0
한 터키 참전용사가 전우의 묘비 앞에 국화꽃을 놓고 생각에 잠겨있다.

행사를 마치고 묘비를 둘러보던 모하메드 코치 씨는 깜짝 놀랐다. 전쟁 당시 바로 옆에서 같이 싸우던 친구의 묘비를 찾은 것. 포병이었던 코치 씨는 “친구와 많은 죽을 고비도 넘기고 했는데, 결국 적의 포탄이 친구를 앗아가 가슴이 매우 아팠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두 명의 동료를 더 찾아봐야 한다며 발길을 재촉했다.

레젭 이스멧 아카르수루 씨는 흑백사진 몇 장을 주머니 속에서 꺼내 보여줬다. 강원도 철원 전투에 참가했던 그는 자신이 한국전에 참전했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했다. 특히 그는 사진 속 함께 있는 한국군인을 가리키며, 한국말도 가르쳐 준 고마운 친구라며 아직 생존해 있다면 다시 만나고 싶다고 전했다.

0
레젭 이스멧 아카르수루 씨가 전쟁 당시 자신(오른쪽 사진 맨 오른쪽)과 함께 지내던 한국군인(가운데)을 다시 만나고 싶다며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을 구하기 위해 참전한 터키군은 유엔군 파병이 결의된 직후 보병 1개 연대와 포병대대를 주축으로 통신·공병·병기·수송 등 전투근무지원대를 추가해 여단으로 편성, 1950년 10월17일 부산항에 입항했다. 당시 출정식에서 터키군 여단장이 “한국은 우리와 피를 나눈 혈맹국이며, 형제인 그들을 우리의 가족과 같이 보살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한 연설은 유명하다.

터키군은 평강·철원·금천지역의 적 유격부대 소탕임무를 수행하다가 50년 11월24일 군우리로 이동하면서 본격적인 전투에 참가했으며, 특히 51년 1월25일부터 27일까지 벌어진 용인 김량장 및 151고지 전투에서 중공군 2개 연대와 육박전을 벌여 격퇴한 공로가 컸다.
터키군의 참전규모는 연인원 1만4936명(터키군 보병 1개 여단은 5455명)으로 미국·영국·캐나다에 이어 네 번째다. 전사상자는 유엔사 공식기록에 의하면 전사 991명, 부상자 2147명, 실종 409명으로 총 3547명이다. UN기념공원에 잠든 터키 참전용사는 영국군 다음으로 많은 462명이다.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