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축구팬 "분신"이 축구협회 움직였다

이란 여성들이 38년 만에 축구경기장에 입장하는 기쁨을 누렸다.
이란 여성들이 38년 만에 축구경기장에 입장하는 기쁨을 누렸다.

[중앙뉴스=윤장섭 기자]이란 여성들이 38년 만에 축구경기장에 입장하는 기쁨을 누렸다.

이슬람 혁명으로 엄격한 율법이 적용되는 이란은 여성들의 축구장 입장이 허용되지 않았다. 최근 이란 정부는 여성들에게 금지됐던 축구장 입장을 허용했다. 이는 앞서 여성 축구팬이 분신해 사망한 사건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된다.

올해 3월 남장을 한 채 아자디스타디움에 몰래 들어가려다 체포된 여성이 징역형이 두려운 나머지 재판을 앞두고 지난달 초 분신해 결국 숨졌다.이 사건 뒤 국제축구연맹(FIFA)이 이란에 대표단을 보내 여성도 축구경기장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라고 이란 축구협회를 압박했고 이란 국내에서도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결국 축구협회가 허용했다.

38년만에 이란 여성들이 축구장에 입장한다는 사실을 취재하기 위해 테헤란에 주재하는 외신들은 세계 축구 경기 자체보다 여성이 1981년 이후 처음으로 축구경기장에 입장할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 때문에 30여곳이 허가증을 신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외신들은 이란축구협회는 경기 직전까지 기자들이 여성 관중과 직접 만나는 문제를 결정하지 못하다가 결국 불허했다.경기장 안뿐 아니라 출입구를 드나드는 여성 관중에게 기자들이 소감을 묻는 것도 엄격하게 차단했다.

한편 이란과 캄보디아 대표팀의 축구 경기가 열린 테헤란 아자디스타디움은 취재진의 열띤 취재 경쟁 속에서 이란 여성들의 열광적인 응원 모습이 전 세계에 전해졌다. 이란 여성들은 곳곳에서 인증 샷을 찍으며 38년 만의 역사적 순간을 만끽했다.

지난 10일(현지시간) 이란축구협회는 남성 관중과 섞이지 않게 하려고 여성 관객을 경기 4시간 전인 이날 오후 1시부터 입장하도록 했다. 여성들은 오후 아자디스타디움 19번 게이트로 이란 국기를 손에 들거나 어깨에 두르고 줄지어 입장했다.

축구협회는 "혹시라도 여성 관중이 불상사를 당할 수 있어 이를 보호하기 위해 출입구와 주차장도 여성 전용 구역을 마련했고 관람석도 높이 2m 정도의 분리 벽을 쳤다.

한 여성 축구팬은 "그동안 처벌될 각오를 하고 남장을 한 채 몰래 입장했었다며 이제는 떳떳하게 아자디스타디움에 들어올 수 있어 너무너무 기쁘고 벅차다고 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축구 경기장에 들어간 여성들이 '인증샷'을 올리며 경기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이란 축구 대표팀 선수들도 여성 팬들에게 갈채를 보냈다. 경기 시작 몇 시간 전부터 축구장 주변은 몰려든 여성들로 열기가 뜨거웠다.이날 여성 입장권은 인터넷을 통해 1시간도 안 돼 다 팔렸다. 하지만 여성 입장권이 3천5백 장으로 전체의 4%에 그쳤고, 관람석 대부분 텅텅 비었다.

더욱이 시야가 가장 좋지 않은 자리만 여성에게 허용되는 등 차별이 여전했다.경기장 밖에서는 입장권을 구하지 못한 여성 수십명이 모여 "자리는 남는데 표를 안 판다"라고 구호를 외치며 항의하다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이날 이란 축구대표팀은 캄보디아를 14-0이라는 큰 점수 차로 낙승해 여성 팬의 첫 직접 응원에 보답했다.

(사진출처=YTN방송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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