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제1금융권 은행들이 직원 평가 기준에 변화를 주고 있다.

12일 은행업계에 따르면 하나은행과 신한은행 등 시중 은행들이 지역 점포에 자율성을 부여하고 고객 수익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KPI(Key Performance Indicator / 핵심성과지표)를 개편하고 있다. 

최근 DLF(derivative linked fund / 해외금리 연계형 파생결합펀드)로 인해 대규모 고객 손실이 발생한 적이 있었는데 이로 인해 KPI 내에 고객 수익률 항목을 강화하는 흐름이 형성된 것으로 관측된다. KPI는 은행 직원들을 평가하는 항목과 배점 등으로 구성됐는데 KPI 평가 결과에 따라 연봉 수준과 승진이 결정되기 때문에 직원들에게는 매우 중대한 문제다. 

먼저 하나은행은 점포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차원에서 KPI에 셀프디자인 평가와 자율목표 설정제를 도입한다. 본사가 그어놓은 범위 내에서 점포는 평가 항목을 선택할 수 있게 됐는데 이것이 셀프디자인 방식이고, 평가 항목을 골랐다면 거기서 연간 목표치를 스스로 세우도록 한 것이 자율목표 설정제다. 

이를테면 외환, 가계 대출, 중소기업 대출 등의 항목이 있다고 했을 때 점포에 따라 개인대출을 고를 수도 있고 외환을 고를 수도 있다. 항목을 선택했다면 얼마나 수익을 낼 것인지 목표치를 제시해야 한다. 물론 본사가 모니터링해서 너무 무리한 목표는 아닌지 피드백을 하게 된다. 

하나은행은 얼마 전 PB(Private Banker / 자산가를 상대로 개인적인 투자 컨설팅을 제공하는 서비스 담당자) 대상 평가에서 고객 수익률 배점을 9%로 상향한 바 있다. 더 나아가 2020년부터는 모든 점포의 KPI에 고객 수익률을 반영할 예정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신한은행은 ‘목표 달성률 평가’를 KPI에 포함시킬 것이고 기존의 상대평가를 폐지하고 절대평가를 도입한다. 현장 점포에 좀 더 재량권을 준다는 취지인데 점포마다 특색있는 전략을 짜도록 하고, 외부 경쟁사와의 경쟁이 아닌 내부적인 장기 목표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 절대평가가 인상적이다. 

또한 신한은행은 3억원 이상의 금융 자산가를 전담하는 PWM 센터(Private Wealth Management / 종합금융서비스와 생활 전반에 걸친 라이프 케어 서비스 제공)를 평가하는 KPI 항목에 고객 관련 비중을 60%로 급증시켰다. ‘고객가치성장’ 지표도 신설했다. 금융 상품을 계약한 뒤에도 추후 고객 관리를 얼마나 잘 하는지 수익률 부진이 명백해질 때 포트폴리오를 유연하게 변경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등을 평가한다. 

우리은행은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영업 인력에 대한 KPI에 ‘고객 관리’ 지표를 추가했다. 이를 위해 재무관리와 회계처리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고, 점포 대상 KPI에 디지털 부문을 폐지하고 본사 디지털 부서로 흡수시킨다. 무엇보다 우리은행은 비대면 상품 할당 판매를 강요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은행 지역 점포의 전체 실적에서 비대면 상품 비중은 30% 수준이다.

IBK 기업은행도 KPI에 변화를 주기 위해 고심 중이고, KB 국민은행도 고객 위주의 자산관리에 방점을 찍고 평가 항목을 손보고 있다. 

조연행 회장은 은행사 위주의 직원 평가 기준이 고객 손실로 이어지지 않도록 바뀔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사진=박효영 기자)

이처럼 은행권에서 본사가 탑다운 방식으로 획일적인 평가를 하기 보다는 지역 점포의 특색을 고려하는 흐름이 형성된 것은 고무적으로 보여진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금소연) 회장은 12일 오전 기자와의 통화에서 “평가 기준이 좀 더 구체적으로 나와야 알 수 있다”면서도 “중립적이고 소비자 친화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당연히 그렇게 바뀌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조 회장은 “자기네 상품보다 수익성이 좋은 DLS(Derivative Linked Securities / 파생결합증권), DLF 같은 것 또는 변액보험 등을 KPI로 높게 쳐준다든지 자기네들이 수익률을 얼마나 높이면 평가를 좋게 준다든지 자기 회사의 이익 위주로 KPI를 만들어왔을 것인데. 그러다보니까 DLS 사태 같은 문제가 발생하고. 예를 들면 예금하러 온 사람을 변액보험에 가입시킨다든지 그런 문제가 발생하니까”라고 설명했다.

강형구 금소연 금융국장도 기자와의 통화에서 “어떻게 평가를 하든지 소비자 고객들의 이익 증대와 보호 차원으로 가야 한다”며 “특히나 직원들의 노동 강도나 이런 것을 줄여서 보다 더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관련 교육을 좀 더 시켜야 된다. 일상 업무 서비스도 중요하지만 고객의 니즈를 잘 파악해서 무엇보다 업무와 관련 법률 상담, 세무 상담, 부동산 상담 등 이런 질 좋은 서비스를 잘 제공해줘야 된다”며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들더라도 은행 위주로 평가 지표를 운용하지 말고 소비자 위주로 운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 국장은 재차 “(KPI 개편으로) 실질적으로 보다 더 노동 강도가 강해질 수 있다. 업무시간 안에만 고객 관리를 다 할 수 없으니까 업무 외 시간에 고객 관리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경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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