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롭힘 신고 건수 늘지만 조사는 미온적
갑질 신고에 위계질서 무너뜨리는 꼴통으로 낙인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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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뉴스=신현지 기자] 2019년 7월부터 근로기준법 개정(제 76조  2·3항)에 따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규정이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법 시행 100일 남짓 지난 지금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은 졸속입법이 낳은 부작용이라는 지적과 함께 기업들 역시도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즉, 괴롭힘 방지법 취지가 사내 자율 개선을 목표로 한 탓에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직접 제재를 명시하지 않아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로 괴롭힘에 대한 판정 기준이 모호한데다 회사 대표가 가해자일 경우에도 구제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언어폭력, 성희롱 등은 상황을 명백히 입증할 방법도 쉽지 않다는 것이고. 그 사례로 지난 2월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하던 한 간호사가 태움을 목 견디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경찰은 병원 내 폭행 모욕 등 구체적인 가혹행의 자료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결론으로 종결지었다.

참고로 괴롭힘 방지법은 지위 또는 관계의 우위를 활용, 업무 적정 범위를 넘어서 신체·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괴롭힘으로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직장 내 괴롭힘을 알게 된 누구든지 발생사실을 사용자에게 신고 가능하며, 인고를 받거나 사실을 인지한 사용자는 지체없이 조사할 의무가 있다.

이때 사용자는 괴롭힘 피해자의 의견에 따라 근무장소 변경, 유급휴가 명령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하며, 괴롭힘 행위자에 대해서는 징계 등의 명령을 내려야 한다. 또한 발생사실을 신고하거나 피해를 주장했다는 이유로 괴롭힘 피해자나 신고자에게 해고 등의 불이익한 처우를 금지하고, 만약 이를 위반할 경우 사용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 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최근 중학교 교사인 김씨는 그동안 교장에게 심한 모욕과 폭언을 여러 차례 받아 감사관실에 신고했지만, 피해의 정확한 근거자료가 부족하다는 답변과 함께 교장이 후배를 아끼는 선배 입장에서 관심의 정도를 보였을 뿐, 업무지시 이외 특별한 갑질의 행위는 없는 것으로 김씨를 직장 내 소란이나 일으키는 철부지 꼴통교사로 낙인찍더라고 했다.

더욱이 평소 가깝게 지내던 동료교사들까지도 윗선의 눈치를 살피느라 노골적인 따돌림은 물론 뒷담화로 김씨를 멀리하고 있어 김씨는 학교를 그만둘 생각까지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직장 내에서 괴롭힘은 업무지시 사항인지 괴롭힘인지 구분하는 것이 명확하지가 않아 괴롭힘을 당하는 입장에서는 괴롭힘 방지법이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다.

이에 김 교사는 직장 내의 합당한 업무 지시와 괴롭힘의 경계선이 분명할 수 있도록 디테일한 가이드라인이 제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괴롭힘 방지법이 노조법과 맞서 신고해도 미온적인 결과일 수밖에 없다는 일각의 우려가 시행 초기부터 제시됐는데 이는 사실로 증명되고 있다.  

지난 10일 한국철도공사의 수도권동부본부 한 직원이 파업 참여를 강요당했다는 신고가 접수됐지만 한 달이 넘은 지난 13일까지도 회사 측은 조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부당관리감독, 폭언 등으로 접수된 신고 역시도 경고·견책·전근 조치로 종결됐다.

이와 관련하여 일부 언론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과 충돌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즉, 괴롭힘 신고가 들어오면 사업주는 근로기준법에 따라 가해자 전보·징계 등의 조치를 해야 하는데, 가해자가 노조와 관련돼 있으면 자칫 정당한 노조활동을 방해하는 부당노동행위로 몰릴 것을 우려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는 것이다 라고. 

이에 법조계 관련자는 “노조가 집회나 파업 불참을 이유로 벌금을 내게 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것도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 며 “괴롭힘은 지위가 높은 상급자가 가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지만 개정 근로기준법이 포괄하고 있는 괴롭힘의 범위는 매우 넓다. 사측과 교섭력을 가진 노조 등 집단의 힘을 이용한 따돌림 같은 행위도 해당한다”고 말했다. 

그러니 사업주 역시도 대립적인 노사관계에서 노조에 의한 괴롭힘 신고 사건이 발생할 경우  근로기준법을 따를 것인지 노조측을 따를 것인지 그 대책마련에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하여 임이자 자유한국당 의원은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는 사용자뿐만 아니라 노조에 대한 처벌 근거도 마련돼야 한다”며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노동계 요구만 대폭 반영한 노조법 개정안에 찬성할 수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어쨌거나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취지에 부합하기 위해선 괴롭힘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 제시와 사업주의 책임을 명확히 묻는 방향으로 사회 인식과 법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노조법과 맞서는 부분 역시도 개선이 요구되는 부분이고.

한편 직장 내 괴롭힘은 5인 미만 사업장에는 해당 되지 않는다. 따라서 괴롭힘 피해가 발생해도 해결 방법을 찾기 어렵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직장 내 괴롭힘 신고 건수는 총 1321건이었다. 제도 시행 후 하루 10여 건씩 꾸준히 신고가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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