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된 이슈에 단식 결단
리더십 타격 요소 부각돼
그럼에도 한국당 패싱은 계속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갑작스럽게 단식에 돌입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보통 단식이나 삭발은 중대한 사건이 벌어진 직후 그게 명분이 되어 일어난다. 명분 싸움인 것이다. 그러나 황 대표의 단식은 명분이 애매하고 “정치 초보의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조바심”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21일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열리는 최고위원회의에 앞서 음료를 마시고 있다. 2019.11.21
황교안 대표가 21일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열리는 최고위원회의에 앞서 음료를 마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황 대표는 20일 아침 단식에 들어갔다. 무기한 단식이다. 단식을 풀기 위한 요구조건은 패스트트랙(지정되면 330일 이후 본회의 표결 보장)에 올라가 곧 본회의에 부의될 ①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하는 선거법과 ②공수처법(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을 철회시키는 것이고 ③한일 지소미아(GSOMIA/군사정보보호협정)를 연장하는 것이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바로 논평을 내고 “황 대표의 남루한 명분에 동의해줄 국민이 몇 명이나 될지 의문”이라며 “황 대표의 단식은 떼쓰기, 국회 보이콧, 웰빙 단식 등만 경험한 정치 초보의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조바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혹평했다.

민주당이 한국당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매번 있는 일이지만 정치권에서는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조바심”이라는 평에 수긍하는 분위기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도 21일 아침 국회에서 열린 상무위원회를 통해 “제1야당 대표가 국회에서 그 책임을 반분해야 할 일을 대통령에게 요구하며 단식을 하는 상황, 이러한 비정상 정치에 난감할 따름”이라며 “국민들께서 황 대표의 단식을 당내 리더십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뜬금포 단식이라고 말하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이어 “단식을 하려면 작은 정당 대표인 내가 해야지 왜 배부른 제1야당 대표가 청와대에서 국회로 우왕좌왕하며 단식을 하는지 안타까운 마음마저 든다”고 말했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임명된 지난 9월 중순 이언주 무소속 의원의 삭발을 시작으로 한국당 의원들이 릴레이로 삭발을 단행했는데 그때는 여론조사상 국민 과반 이상이 조 전 장관에 반대하고 있었고 그럼에도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을 밀어붙였던 직후라 명분이 선명했다.

그러나 황 대표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①②은 작년 연말부터 시작돼 올해 4월 이미 나와 있는 내용이었다. 곧 본회의에 부의될 시점이긴 하지만 한국당이 국회 선진화법을 어겨서라도 여야 4당(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의 패스트트랙 추진을 저지하려고 했고 전국적인 장외 투쟁과 국회 보이콧도 진행된 바 있다. 

황 대표가 단식을 감행한 배경을 놓고 너무 갑작스럽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황 대표가 단식을 감행한 배경을 놓고 너무 갑작스럽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작년 연말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이정미 전 정의당 대표는 민주당과 한국당이 선거법 개정을 요구하는 3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을 패싱하고 예산안을 처리했다면서 10일간 단식을 한 바 있다. 그때 막 원내사령탑에 오른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12월15일 5당 합의문에 서명했고 그렇게 연말 단식 정국은 풀렸다.

그 합의문 1항과 2항을 보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적극 검토한다”며 의원정수 10% 이내에서 확대 여부를 검토한다고 돼 있다. 

나 원내대표는 분명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검토 진행에 합의해줬고 그래서 단식이 풀린 것이다. 하지만 황 대표는 지금 그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하는 선거법을 막기 위해 단식하고 있다.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지난 5월 이후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선출되면서 패스트트랙 후폭풍은 잠잠해졌고 국회가 정상화됐다. 본회의 부의 시점이 가까워질수록 황 대표는 당 차원에서 ①② 저지 전국 규탄 집회를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현재 별다른 상황 변화없이 오직 본회의 부의 시점만을 명분으로 황 대표는 단식을 단행했다.   

한국당 패싱은 4월 패스트트랙 정국 당시 이미 확인된 4당의 정치 전략이었고 한국당은 ①②에 대한 조문 등 내용상 수정을 하는 협상을 할 생각이 아니라 전면 폐기를 외치고 있다. 4당은 또 다시 한국당 패싱 카드를 고려할 수밖에 없고 그게 가시화 됐을 때 한국당은 이미 선진화법 위반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라 또 물리적 저지를 시도하기가 굉장히 망설여진다.

그래서 황 대표가 다소 조바심 느껴지는 단식에 돌입한 것으로 보여진다. 

무기한 단식 투쟁에 돌입한 황 대표가 20일 저녁 국회 본청 앞에 설치된 천막에서 단식투쟁을 시작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황 대표는 20일 오후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죽기를 각오하겠다”며 결기를 보였다. 

이날은 해가 지기 시작할 때부터 기온이 영하 5도까지 떨어져 매우 추웠다. 아무리 옷을 껴입어도 텐트없이 24시간 농성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청와대 주변에 텐트를 치는 것은 불법이므로 그럴 수 없고 그 대신 투쟁 장소가 국회로 변경됐다. 황 대표는 20시가 넘어서야 국회로 떠났는데 텐트없이 청와대 앞에서 밤을 지새우겠다고 고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파에 텐트없이 보내는 것은 너무 위험하기에 국회로 발길을 돌렸다. 

황 대표는 “(②은) 문재인 시대 반대자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반대자들은 모조리 사법 정의라는 이름으로 처단하겠다는 법”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①은) 국민의 표를 도둑질해서 문재인 시대, 혹은 문재인 시대보다 더 못 한 시대를 만들어 가려는 사람들의 이합집산법”이라고 주장했고 문 대통령에게 철회를 결단하라고 촉구했다. 

③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안보에 있어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사안이다. 일본과의 경제 갈등을 지소미아 폐기라는 안보 갈등으로 뒤바꾼 문 대통령은 이제 미국까지 가세한 더 큰 안보 전쟁, 더 큰 경제 전쟁의 불구덩이로 대한민국을 밀어 넣었다”고 강조했다.

사실 ③도 지난 7월~8월 일본 정부의 한국 기업 수출 규제와 화이트리스트(수출 우대 국가) 배제로 문재인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를 선언하는 등 3개월이 흘렀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원상복구나 수출 규제 철회 움직임은 전혀 없는 상황이라 오는 22일 예정대로 지소미아는 종료되는 흐름이다.

황 대표는 8월22일 지소미아 종료 선언 이후 3개월 후에 진짜 종료 시점이 다가오자 선언을 철회하지 않고 있다고 단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자유민주당 정권의 군사국가화 극우 전략에 따른 의도적인 수출 규제 도발로 전국민이 분노하고 일제 불매운동을 할 때에 대일본 항의의 의미로 단식을 한 게 아니라 거기에 정부가 대응했다고 단식을 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이런 황 대표의 결정에 김홍걸 민화협(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은 20일 오전 페이스북을 통해 “하필 투쟁하는 목적이 지소미아 연장을 위해서라니 해방 이후 최초로 일본을 위해 단식하다 쓰러지는 친일 열사가 탄생하는 건가”라고 꼬집었다.

결국 최근 황 대표가 △갑질 논란있는 박찬주 전 육군 대장 영입 추진과 무산 △김세연 의원의 불출마 선언과 당 해체 수준의 쇄신 요구 △청년 정책 비전 발표에도 냉담한 반응 등 갈수록 리더십 타격의 요소만 부각되다 보니 급하게 단식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황 대표의 옷을 만져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황 대표의 옷을 만져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문제는 한국당 내에서도 제1야당이 단식으로 배수진을 칠 게 아니라 협상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는 것이다. 2020년도 예산안 심사가 국회에서 진행되고 있고 이와 연계해 한국당이 레버리지(지렛대) 효과를 거둘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황 대표는 단식에 돌입하면서 문 대통령과 단독 면담을 요청했는데 이해찬 민주당 대표와도 단독 회동을 해서라도 협상 전선을 유리하게 끌고가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여론이 있는 것이다.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는 작년 4월13일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 사태로 정국이 뜨거울 때 문 대통령과 단독 비공개 회동을 성사시킨 바 있다. 문 대통령이든 홍 전 대표든 누가 먼저 제안을 했든 홍 전 대표는 국정 최고 책임자와 담판을 벌여 실리를 추구하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다. 

지금 나 원내대표는 교섭단체 3당(민주당·한국당·바른미래당) 원내대표들과 함게 미국에 방문하는 일정을 떠났는데 한국당 투톱의 행보가 엇박자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미국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이나 지소미아 연장 압박에 대한 한국 정치권의 입장을 전달한다는 목적이 있지만 황 대표는 대여 투쟁 수위를 높이기 위해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는데 나 원내대표는 여당 원내대표와 미국 일정에 동행한다고 하니 투트랙 전략이라고 보기에도 뭔가 엉성하다.

홍 전 대표는 20일 오후 페이스북을 통해 “오죽 답답했으면 단식이라도 하겠다는 생각을 했겠는가”라면서도 나 원내대표에 대해 “당대표는 목숨을 걸고 문재인 정권에 맞서 단식하는 첫 날 원내대표는 3당 원내대표와 나란히 손잡고 워싱턴으로 날라가고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야당의 행태”라고 지적했다.

이어 “문재인 정권과 극한 투쟁을 예고하는 단식을 시작한다면 의원직 총사퇴와 정기국회 거부로 당대표의 단식에 힘을 실어줄 생각은 하지 않고 의원총회 한번 안 열고 손에 손잡고 미국 가는 투톱이라는 원내대표의 저의가 뭔지 도저히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황 대표의 출구전략이 주목된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황 대표의 결기에도 4당의 한국당 패싱은 현실에서 펼쳐지고 있다. 당장 21일 오후 문희상 국회의장이 주재하는 ①② 관련 5당 대표 정치협상회의가 예정돼 있고 그전부터 한국당 없는 4당 실무단은 물밑에서 협상하고 있었다. 황 대표가 단식하는 비상 시기임에도 이날 정치협상회의는 정상적으로 개최될텐데 민주당은 이미 ①②에 반대하는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변혁(변화와혁신을위한비상행동)을 뺀 나머지로 본회의 표결이 가능할 수 있다는 숫자 분석에 들어갔다.

현재 재적 의원(296석) 과반 이상(148석)으로 본회의가 열리기만 하면 과반 이상 찬성(74석)으로 패스트트랙 법안들이 의결될 수 있다. ​그러면 추청해봤을 때 문 의장과 손혜원 무소속 의원을 민주당으로 편입시키고 최소 152석(민주당 130석+정의당 6석+민주평화당 5석+대안신당 10석+민중당 1석)이 확보되는 것으로 계산된다. 여기에 변혁 15명의 의원들은 바른정당계 8명과 국민의당계 7명으로 구성됐는데 국민의당계 4명(김삼화·김수민·신용현·이동섭)이 선거법에 반대할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다만 4당은 구체적으로 ①의 지역구 의석수 조정 문제와 ②의 기소권 문제만 조율하고 있다. 

김정현 대안신당 대변인은 20일 논평을 내고 “자기 말 안 들어준다고 드러눕는 것은 생떼”라며 “걸핏하면 장외투쟁으로, 삭발로 국민들 시선을 끌려고 안달하더니 이제는 단식이냐”고 황 대표를 질타했다.

이어 “별 감동도 없고 오히려 다음에는 뭘 들고 나올지 궁금하다. 국회의원이 아니니 의원직 사퇴를 할 수도 없고 차라리 당대표직을 내려놓고 전국을 돌며 지금 국민들이 한국당에 어떤 생각을 하는지 민심 대장정이라도 해보라”고 힐난했다.

끝으로 김 대변인은 “안에서는 당 해체 소리나 듣고 밖에서는 배신자 말을 듣는 난처한 신세인 것은 이해가 가나 삭발한 머리가 채 길지 않았는데 단식이라니 출구전략을 잘못 세웠다”고 밝혔다.

황 대표의 출구전략은 뭘까? 황 대표의 단식이 어떻게 귀결될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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