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소미아 조건부 유지 상태에서 치열한 협상
진보의 비판 여론
7월1일 이전으로 수출 관계 회복돼야
지소미아 유지론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전날(22일) 저녁 정치에 관심있는 시민들의 관심을 초집중시킨 지소미아가 일단 종료되지 않게 됐다. 지난 8월23일 청와대가 일본과 맺은 지소미아(GSOMIA/군사정보보호협정)를 종료하겠다고 선언한지 석 달이 흘렀고 그동안 대일 강경한 태도를 유지했기때문에 모두가 예상치 못 했다.   

육군 중장 출신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은 이날 18시 청와대에서 “우리 정부는 언제든지 지소미아의 효력을 종료시킬 수 있다는 전제 하에 2019년 8월23일 종료 통보의 효력을 정지시키기로 했고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한 이해를 표했다”고 밝혔다.

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은 최종적으로 지소미아 종료 선언을 유예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지소미아를 유지하는 대신 한국 정부가 얻는 것은 무엇일까. 

김 차장은 “한일 양국 정부는 최근 양국 간의 현안 해결을 위해 각각 자국이 취할 조치를 동시에 발표하기로 했다”며 “한일 간 수출 관리 정책 대화가 정상적으로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가 한국 기업에 취한 수출 규제에 대해서는 매우 강경한 상황이었고 그것은 정상국가화 전략에 따라 어떻게든 긁어부스럼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변화되기 어려웠다. 그래서 다시 한일 정부간 수출 문제에 대한 중재의 기회를 얻은 것은 작은 성과다. 

그런데 지소미아로만 그걸 얻어낸 것이 아니었다. 

김 차장은 “일본 측의 3개 품목 수출규제에 대한 (한국 정부가 제기한) WTO(세계무역기구) 제소 절차를 정지시키기로 했다”고 알렸다.

일본 정부는 지난 7월1일 일본 기업이 한국 기업에 △포토레지스트(반도체 회로패턴 그릴 때 사용) △고순도 불화수소(반도체를 원하는 모양으로 깎을 때 사용)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접히는 디스플레이에 사용) 등 3가지 품목을 수출하는 것에 좀 더 복잡한 절차를 거치도록 규제했다.

일본 외무성도 전쟁 범죄로 인한 개인의 배상 청구권을 여러 차례 인정한 바 있으나 아베 신조의 일본 내각은 다짜고짜 한국 대법원의 징용 피해 배상 판결을 문제삼기 시작했다. 아베 내각은 피해 배상 문제 때문에 불편했으면서 한국에 넘어간 반도체 부품소재가 북한 등 타국에 넘어가는 것 아니냐고 안보상 불신을 이유로 들었다. 더 나아가 아베 내각은 8월2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안보적 신뢰 국가들에 대해 포괄적 수출 인허가 혜택 부여)에서 배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9일 MBC에서 방송된 <국민과의 대화>에 참석해 “지소미아 종료 문제는 일본이 그 원인을 제공한 것”이라며 “한국을 안보상으로 믿지 못 한다면서 군사 정보는 공유하자는 것은 모순적인 것 아니겠는가”라고 강조했다. 

또한 “그 의혹(북한으로 반도체 부품소재가 넘어감) 자체가 터무니없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설령 그런 의구심이 있었다면 수출 물자에 대한 통제를 좀 더 강화해달라는 것을 취해달라든지 그 수출 물자들이 어떻게 실제 사용되고 있는지 그 내역들을 알려달라고 하든지 한일 간의 소통을 더 강화하자고 하자든지. 이런 식의 아무런 사정 요구없이 어느날 갑자기 수출 통제 조치를 취한 것”이라며 “우리로서는 당연히 취할 도리를 취했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밝힌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끝까지 지소미아 파기에 이르지 않도록 일본과 노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처럼 지소미아를 종료할 수밖에 없는 명분이 강한 것인데 문재인 정부는 ①지소미아 유지 ②WTO 제소 철회를 넘겨주고 아베 내각으로부터 Ⓐ한일 무역 당국 대화 재개만 받았다.

그러다보니 22일 밤 유상진 정의당 대변인이 페이스북을 통해 “정말 굴욕이다. 먼저 때린 놈이 사과도 확답도 없는데 뭘 믿고 그나마 유리한 카드를 버리는지?”라고 비판한 것처럼 진보진영에서의 이런 비평이 쏟아졌다. 

신창현 민중당 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정부가 지소미아 연장을 결정했다. 일본과 수출 규제 해제를 논의하는 것을 조건부로 연말까지 지소미아를 연장하겠다는 것이다. 즉각적인 지소미아 종료를 원하는 국민의 바람을 짓밟은 결정이다. 발등을 찍힌 국민은 허탈함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김소희 미래당 공동대표는 페이스북에서 “조건부 연장이라니 분단 국가에서 외교적 한계를 또 느낀다. 한일 외교 정상화 측면에서는 긍정적으로 보지만 향후에 G2(미국과 중국) 패권 싸움에서 지소미아 연장이 어떤 작용을 할지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김 차장의 발표 직후 청와대 실무 관계자 A씨는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을 통해 “수출관리 정책 대화를 현안 해결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지속하겠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며 “여기서 말하는 수출관리 정책 대화가 화이트리스트의 복원을 포함한 것”이라고 적극 해명했다.

이어 “이에 대해 한일 간 양해가 됐다”며 “3개 품목 수출 규제에 대해 (일본 정부가) 수출관리 운용을 재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일본 측의 노력을 바탕으로 한일 간 계속 대화를 하고 그 대화의 진정성을 봐가면서 조건부로 지소미아 종료 통보의 효력을 정지하고 WTO 제소 절차도 정지하기로 한 것”이라고 재차 설명했다. 

좀 더 정확하게 A씨는 “우리에 대한 일본의 수출규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의가 진행되는 동안 잠정적으로 지소미아 종료를 정지한다는 것”이라며 “우리 정부는 8월23일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외교 문서로 일본에 통보했다. 그 종료를 통보하는 외교 문서의 효력을 오늘부로 일시 중단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아울러 “우리는 언제라도 이 문서의 효력을 다시 활성화할 권한을 갖고 있다. 권한을 활성화하면 지소미아는 그 날짜로 다시 종료된다. 이것이 한일 양국 간에 양해한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궁극적으로 A씨는 “7월1일 이전 상황으로 복귀해야 한다”며 “화이트리스트에 한국을 다시 포함해야 하고 3개 품목에 대한 일본의 수출 규제가 철회돼야만 지소미아를 연장하고 WTO 제소를 철회할 수 있다. 언제 그런 상황에 도달할 수 있을지 예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상태(수출 파국)가 상당 기간 계속되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다”고 공언했다.

A씨는 문 대통령의 노력에 대해 “11월 초에 태국 방콕 아세안 정상회의를 계기로 아베 총리와 직접 면담도 하고 이후에 미국 고위 인사들을 직접 만나 우리의 입장을 계속 설명했다. 한일 간 협의 과정을 문 대통령에게 상세히 보고했다. 오늘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를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것은 아니지만 이례적으로 임석했다. 산업부 장관(성윤모)이 참석한 가운데 NSC 상임위원들 간의 논의에도 참여했다. 어제 오늘 NSC 회의에서 합의한 우리 입장을 재가했다”고 밝혔다.

실제 문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지소미아 종료라는 사태를 피할 수 있다면 일본과 함께 그런 노력을 해나가겠다”고 발언했는데 결국 그런 취지대로 됐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강경화 장관이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실 지소미아 자체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일본의 정상국가화 전략에 말려들지 말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유지론을 피력한 인물들이 좀 있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일 방송된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지소미아 폐기 군불떼기는) 일본의 의도에 말려들어가는 것”이라며 “일본은 자신들이 군사대국화로 가려면 미국으로부터 오케이 사인을 받아야 한다. 동북아에서 한미일은 필요 없다. 한국은 지금 중국 쪽에 붙으려고 하니 쟤네(한국)는 빼고 너랑 나랑 둘이 놀자. 그러니 이 골목대장은 내가 할게란 논리를 펴는 것이다. (일본은) 우리를 자꾸 중국 쪽에 붙이고 (미국과) 떼어놓으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잘못된 신호를 보내는 격이 돼 우려한다”고 주장했다.

국제통상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도 7월20일 방송된 <유시민의 알릴레오>에 출연해 “한일 관계가 더 악화하기 전에 지소미아를 1년 정도 연장하는게 좋다”고 밝힌 바 있다. 

문 대통령은 분명 “우리로서는 우리 안보에 있어서 한미 동맹이 핵심이지만 한미일 안보 협력도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최대한 일본과도 안보상으로 협력하고자 한다. 만약에 지소미아가 종료되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는 일본과 안보 상의 협력을 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7월1일 이전 상황으로 복귀해서 한일 관계가 경제적 안보적으로 정상화될 수 있을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한편,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23일 오후 일본 나고야관광호텔에서 열린 G20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해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과 만나 후속 논의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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