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인의 신농가월령가⑤ ] 박효순이라 했던 날의 추억
[이재인의 신농가월령가⑤ ] 박효순이라 했던 날의 추억
  • 이재인
  • 승인 2019.11.25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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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인 전 경기대 교수 / 소설가
이재인 전 경기대 교수 / 소설가

[중앙뉴스=이재인] 우리 연배쯤에 친구들의 해괴한 반어법 놀림이 있다. 이게 바로 '박효순'이다. 거꾸로 풀이하면 '순호박'이다. 깜찍하면서 훤출한 초딩의 여학생을 향하여 우리는 그렇게 놀려댔다.

영문을 모르는 여학생들이 “이 애는 이영자이고 저애는 박정숙, 조애는 월준이야...”하고 박호순이 아니라고 정정해주곤 했다. 

그렇다. 순호박이 얼마나 좋은 이름인가? 호박은 그 생김새가 우락부락하게 생겼지만 그 속은 천사처럼 부드럽고 샛노랗다. 여름 과채류로서 호박은 우리의 식탁을 풍요롭고 감미롭게 하는 요소를 지니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비타민 A가 풍부해 깡마른 사람이 꾸준히 먹으면  살이 찐다. 간에 좋은 효과를 나타내 주고 폐포의 점막을 복구시켜주기도 한다고 과학적으로 밝혀졌다. 또한 비타민 C가 풍부하여 단백질 성질을 에너지로 바꿔주기도 하고 간을 회복시켜주고 당뇨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  붓는 사람한테 붓기를 빼주는 효과가 있다고 한방에서도 밝혀주고 있다.

더욱이 체내 노폐물과 혈액노폐물 배출 등 신장에도 도움을 준다. 이런 과학적 근거를 훤히 꿰고 있기에 지난 초봄에 언 땅이 풀리자 호박 두 포기를 노지에 심었다. 마침 초등학교 동창이 가축분 퇴비를 적잖게 실어다 주었기에 그 호박포기 근처에다 한 리어커 정도를 쌓아놓았다. 그런데 이 호박은 줄기만 백 미터 쯤 뻗어 내렸을 뿐 열매인 호박은 단 두 개가 수확의 전부였다.

거름을 그렇게 거하게 한 리어커를 주었으나 열매가 아주 인색하게 맺곤 그게 끝이라  농업비전문가인 내가 낫을 들고 호박덩굴을 거칠게 쳐내기에 이르렀다. 이때 한 노인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보오 모르면 물어서하지...거기에다 가축분만 넣고 다른 거름은 넣지 않았지?”라고. 거기에 난 반문했다 “아, 가축분을 잔뜩 넣었는데 또 딴거름을 넣는다구요?” 
“허허, 그러니께 달랑 두 개만 열렸지...”

노인의 말인즉 가축분 쇠똥 발효거름만 주면 열매가 안 된다고 했다. 즉, 인산, 가리, 질소 이 3요소가 뿌리에 들어가야만 순호박이든지 박효순이 주렁주렁 마디마디 열린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농사일을 깜보고 그냥 가축분만 뿌려 준 나는 얼굴이 뜨거웠다.

나는 밥상에 반찬이 5첩이나 7첩을 흡수하면서 식물이라고 그냥 무관심하게 가꾼 자신이 부끄러웠다. 내년 봄에는 호박 몇 그루 심어 늙은 호박은 한약에 섞어 내린 다음 한 겨울 두고두고 마시며 보약의 효능을 체험해보리라 생각한다.

호박의 원산지는 미 대륙으로 알려졌다. 고고학적으로 미국 남서부를 비롯해 멕시코가 원고향이라고 문헌에 밝혀져 있다. 또한 콜럼버스가 미 대륙을 발견 전부터 광범위하게 재배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박속과에 속한 이 호박은 세계적으로 25종이나 되면서 주로 열대, 아열대에 적응되어  5종이 재배되고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은 임진왜란 이후에 도입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애호박, 늙은 호박은 밥상에 이용되고 또 잎들은 식용 약용으로 널리 이용된 지 오래이다.

요즘에는 웰빙식품으로써 캔으로 포장되고 또한 제빵용으로 떡용으로 이용되고도 있다. 그런데 나처럼 풋내기 농부의 잘못된 호박가꾸기로 한해 수확이 형편없는 쪽박신세가 되었으니 부끄럽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러니 농부, 그는 아무나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는 것 말고도 결국 관심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 이외에도 농사에도 선생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이에 오늘 나는 내 스스로를 위한 참회록 한 줄을 밝혀둔다. “농부 흙속에 씨앗만 묻었다고 꿈이 되어 열매를 맺는게 아니란 말이다. 기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말이지...” 

호박, 순호박이라 불리던 옛 동무들은 점점 등잔불 기름 마냥 졸아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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