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트랙 선거법 본회의 부의
민주당의 길
한국당의 저지 전략
연동형이 중요
지역구 대 비례 의석 조정은 유연해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문희상 국회의장이 27일 패스트트랙(지정되면 본회의 표결 보장)으로 지정된 선거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부의했다. 이제 언제든지 본회의를 열고 표결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故 김대중 대통령이 20여년 전 처음으로 독일식 선거제도를 제안했을 때부터 작년 지방선거 직후 본격화됐던 선거제도 개혁 정국의 결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선거제도 개혁이 좌초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없는 게 아니다. 전망이 녹록치 않다. 당장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청와대 앞에서 패스트트랙 법안(선거법+검찰개혁) 철회를 요구조건으로 내걸고 8일째 단식 농성 중이다. 

하승수 위원장은 국회 정문 앞에서 2주째 농성하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26일 오후 국회 정문 앞 농성장에서 기자와 만나 “어차피 현실이다. 나는 선거제도 개혁은 현실로 이뤄져야 의미가 있어서 지금 막바지 단계에서 냉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며 “(심상정 정의당 대표 쪽에서) 240(지역구)대 60(비례대표)을 마지노선으로 거론하고 있는 것 같은데 하여튼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 245대 55도 생각을 해야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 위원장은 선거법이 본회의에서 통과될 때까지 농성을 하겠다고 선언했고 벌써 2주째다. 하 위원장은 원내 정당들도 선거제도 개혁에 기여해왔음을 인정할 만큼 전도사로 활동해왔다. 정당 득표율로 확보 의석수를 픽스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 정당 득표율의 절반만 확보해주는 준연동형 법안으로 패스트트랙에 올라갔을 때도 하 위원장은 완전 연동형을 요구했었다.

그런 하 위원장도 “막판이니까 어쩔 수 없다”며 “지금 이 마당에 되는 것이 중요하고 이번에 좌초되어 버리면 아무 것도 안 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숫자(의석수)를 좀 늘리는 대신 병립형을 한다거나 이러면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연동형이나 준연동형을 유지한다면 오히려 지역구 비례 비율을 유연하게 할 필요가 있다. 일단 310석이라도 의석을 늘리기 위해서 좀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좀 숨통이 트인다”고 제안했다.

정치 협상으로 옵션을 선택한다면 Ⓐ정당 득표율로 전체 의석수를 결정하게 하는 연동형(완전형과 절반)인지 지역구 당선자 수와 정당 득표율을 분리시켜 전체 의석수를 계산하는 병립형인지의 여부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수 조정 문제 등이 있다고 했을 때. 하 위원장은 Ⓐ의 대원칙만 지켜진다면 Ⓑ는 유연하게 볼 수 있다는 입장인 것이다.

현재 국회의원 선거(총선) 제도는 지역구 253석과 비례대표 47석으로 구성됐는데 오직 47석을 배분하는 것에 국한해서만 정당 득표율이 반영된다. 이게 병립형이다. 하 위원장은 총 의석수를 늘리더라도 병립형이라면 무의미하다고 주장했다.

하 위원장은 “연동형은 계산 방법의 차이라 어떻게든 할 수 있다”며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면 지역구와 비례 비율보다 연동형이냐 준연동형이냐 병립형이냐의 효과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구와 비례 비율이 그렇게 결정적인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당연히 국회의원은 자기 지역구가 사라지는 것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지역 기반이 명확한 민주평화당과 대안신당은 물론이고 더불어민주당도 망설여지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의석수를 늘리는 일도 무지 어렵다. 

하 위원장은 “240대 60도 사실 답이 잘 안 나오고 어렵다. 시뮬레이션을 정확히 해봐야 하는데 240대 60과 250대 50에서 전라남도의 의석이 얼마나 줄어드느냐 그걸 보고 그 정도까지 들어가야 한다. 전남에서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다른 데서 더 줄어든다고 하면 대안신당이 240대 60을 반대하지 않을 수 있다”며 “가령 250대 50에서 245대 55로 할 때 서울 수도권이나 영남에서 더 많이 줄어든다. 그러면 대안신당이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구획정위원회는 225대 75를 기준으로 지역구 축소안을 내놓은 바 있는데 특정 지역이 아닌 전국에서 지역구가 골고루 줄어들었다. 원안대로 가더라도 대안신당 등이 지역구 축소의 피해를 그리 크게 입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하 위원장은 “우리 정치개혁공동행동 쪽에서도 돌려 보니까 지역별 줄어드는 예상치가 다 다르게 나온다. 선관위가 관행적으로 하는 방식”이라고 선을 그었고 현실적으로 245대 55를 기준으로 조정해야 지역구 축소 피해 요인이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키를 쥐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은 ①4개 정치세력(바른미래당 당권파+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과 함께 한국당을 패싱하느냐 ②한국당과 연대해서 다른 당들을 배제할 것인가 ③한국당과 절충점을 마련해 모든 당들이 합의안을 도출하느냐 등 3개의 선택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특히 민주당은 2020년 총선 예비후보 등록일인 오는 12월17일 이전까지 선거법을 확정해야 한다고 천명했다.

황교안 대표가 8일째 단식 중이고 현재 기력이 없어서 하루종일 누워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한국당은 패스트트랙 절차의 불법성을 강조하면서 ‘선 패스트트랙 무효화 후 협상’을 고수하고 있고 황 대표의 단식까지 더해 결의를 보이고 있다.

오히려 하 위원장은 “황 대표가 단식을 하는 것이 꼭 나쁜 게 아니”라며 “홍준표 전 대표(한국당)가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내주고 선거법을 막자고 했는데 사실 한국당 내에도 그런 입장들이 있다. 하지만 황 대표가 막무가내로 다 반대라고 하고 있어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전망했다.

이를테면 “홍준표처럼 머리를 썼다면 이미 민주당이 한국당과 야합했을 것이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공수처만 하고 선거법을 안 하면 꽤 좋을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내에 상당수가 그러길 바라고 있는데 홍준표가 그걸 정확히 간파한 것이다. 홍준표 이야기대로 갈 소지가 있는데 황교안의 막무가내가 다행히 그걸 막고 있는 셈이다. 황교안은 검찰 출신이라 그런지 공수처를 세게 반대하고 있는 것 같더라. 야합을 막고 있는 것은 황교안”이라는 주장이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27일 방송된 KBS <김경래의 최강시사>에서 “한국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수용하면 그때부터 매우 유연하게 협상에 임할 수 있고 실제로 타협점을 찾을 수 있다”고 발언했다.

②③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인데 작년 연말 예산안 정국에서 한국당과 민주당은 다른 정당들을 배제하고 ②을 실행한 바 있다. 이후 민주당은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이정미 전 정의당 대표의 단식 정국을 해결하기 위해 ③을 실현해냈다.

이날 민주당은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 공조를 위한 ① 차원의 협의체 회동을 가질 예정인 만큼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보여진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우리가 협상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한 마디로 불법으로 협박의 칼을 들고 있으니까 패스트트랙을 철회하라는 것이 협상의 전제조건”이라고 밝혔다.

한국당처럼 패스트트랙 저지를 목표로 내건 바른미래당 변혁(변화와혁신을위한비상행동)은 법안이 본회의 표결에 부쳐지면 △무제한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 진행 방해)를 하겠다고 입장을 밝혔고 한국당도 마찬가지다. 한국당은 단식까지 하고 있는 마당에 △의원직 총사퇴 △총선 거부 등 모든 극단적인 수단들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 위원장은 현실적으로 관측하면서 선거제도 개혁의 완수를 열망하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하 위원장은 재차 “225대 75는 원래부터 현실성이 없다고 봤다. 가야 할 방향이 분명하면 지금 현재 단계에서 갈 수 있는 방법으로라도 가야 한다고 보고 좌초돼서는 안 된다”며 “한국당이 저러고 있어서 좌초되지 말란 법도 없다. 좌초시키지 않으려면 민주당이 한국당과 손잡지 않게 해야 한다”고 공언했다.

이어 “이해찬 대표는 여차하면 한국당과도 손잡을 수 있다는 그런 얘기를 협상 카드일 수도 있지만 했다고 들었다”며 “근데 뭐 그거는 누가 봐도 민주당이 망하는 길인데 세상의 일이라는 것이 알고도 망하는 경우를 가끔 볼 수 있어서 배제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한편, 한국당의 패스트트랙 법안 저지 과정에서 불거진 불법 관련 수사도 이번 협상 테이블의 옵션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하 위원장은 “검찰의 패트 수사는 거의 마무리를 하면 되는 상황”이라며 “어차피 불체포 특권 때문에 강제 수사는 안 된다. 그러면 지금 확보한 증거들로 기소하면 된다. 검찰이 정말 정치 검찰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으려면 기소를 해야 한다. 패트가 본회의를 통과하기 전에는 어렵겠지만 그 다음에 기소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한국당 입장에서 패스트트랙 협상의 옵션으로 패스트트랙 자체에 대한 불법성을 강조하면서 본인들의 수사와 기소를 무마하는 길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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