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의 선제적 ‘필리버스터’ ·· 모든 비난 감수해서라도 막겠다
한국당의 선제적 ‘필리버스터’ ·· 모든 비난 감수해서라도 막겠다
  • 박효영 기자
  • 승인 2019.11.29 22: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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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제적 필리버스터
패스트트랙 법안 저지위해 민생 법안 모조리 막아
자식 잃은 부모들의 간절함 볼모삼아
필리버스터 뚫을 길 있나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자유한국당 원내 지도부가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해 합법적으로 의사진행 방해)를 신청한 것은 29일 14시였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날 14시 선제적 필리버스터를 결단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날 본회의가 열리면 민식이법(어린이보호구역 내 신호등과 과속단속 카메라 설치 의무화) 등 200여건의 민생 법안이 처리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한국당은 13시40분 비공개 의원총회를 개최한 뒤 최종적으로 모든 법안을 대상으로 필리버스터를 하기로 뜻을 모았다. 목적은 패스트트랙(지정되면 최장 330일 이후 본회의 표결 보장)에 오른 선거법과 검찰개혁법(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검경수사권조정법)을 가로막는 것이다. 황교안 대표의 단식으로도 더불어민주당이 꿈쩍도 않자 필리버스터로 선수를 친 것이다. 선거법은 지난 27일 본회의에 부의됐지만 이날 안건으로 표결 대상이 된 것은 아니었다. 

한국당은 12월10일까지 필리버스터를 지속해서 올해 마지막 정기국회 안에 패스트트랙 법안이 상정되는 것 자체를 선제적으로 막을 심산이다. 그래서 한국당 소속 의원 108명이 법안 1건당 428시간(17일 이상)의 무제한 토론을 진행한다고 치면 199개의 법안에 총 8만5172시간(9년 이상)을 벌 수 있다. 20대 국회 임기 내에 선거법과 검찰개혁법을 절대 통과시키지 못 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한국당의 필리버스터는 모두가 예상하고 있었지만 패스트트랙 법안이 표결될 날에 개시될줄 알았지 일찍 시작될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 했다. 한국당 의원들도 사전에 전혀 알지 못 해서 동요하는 반응이 있었지만 유일한 수단이라는 데에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민주당도 일격을 당해서 당황하는 분위기다.

일단 한국당은 패스트트랙의 본회의 의결을 무산시킬 수만 있다면 여야 모든 정당들과 언론과 여론의 총체적 비난을 다 감수할 태세다.

당장 △어린 자녀를 잃은 부모들이 국회에 찾아와서 간절히 염원하고 있는 각종 어린이 안전법(태호유찬이법/해인이법/하준이법/한음이법/민식이법) △유치원 3법 △2년 넘게 국회 앞에서 노숙 농성하다가 최근 20일 넘게 고공 단식 농성을 했고 끝내 병원에 실려간 형제복지원 피해자 최승우씨가 촉구하는 과거사법 △2020년 예산안(법정시한 12월2일까지) 등 매우 시급한 법안들이 다 묶여도 된다는 의미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본회의장에서 규탄대회를 열고 있는 한국당 의원들. (사진=연합뉴스 제공)

나 원내대표는 15시 국회 본청 2층 원내대표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분명히 “문희상 국회의장에 제안한다. 선거법을 상정하지 않는 조건이라면 저희가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법에 앞서 민식이법 등을 먼저 상정해 통과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분명 민식이법을 협상 카드로 쓴 것인데 워낙 안타까운 스토리를 전국민이 알고 있고 그만큼 비난 여론이 의식됐는지 한국당 원내대표실은 기자들에게 단체 문자를 보내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안건 중에 민식이법은 해당되지 않는다”며 “막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민식이법부터 우선 처리하고 한국당이 요청한 필리버스터가 진행될 수 있도록 요청했다”고 알려왔다.

하지만 아이를 잃은 부모들은 한국당의 방침이 타전된 직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열하면서 “아이들을 협상 카드로 쓰지 말라”고 요구했다.

이어 “왜 우리 민식이가 그들의 협상 조건이 돼야 하는가”라고 따져 물었다. 

하준이의 모친 고유미씨는 “세상에 돈과 자식의 안전을 저울질하는 부모는 없다. 어제 오늘 한국 정치의 민낯을 봤다. 우리 아이들 목숨과 거래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지탄했다.

태호의 부친 김장회씨는 “아내가 (국회의원 앞에서) 무릎을 꿇었을 때 그만하고 싶었지만 아이들 법 하나라도 통과되면 아이들을 위한 것이니까 참았다”고 말했고 모친 이소현씨는 “여기 계신 유가족들은 생업을 내려놓고 국회로 출퇴근하고 있다. 여야 간에 협상이 안 되는 부분에 공수처와 선거법에 민식이, 해인이, 태호유찬이, 하준이 엄마 아빠 얘기가 왜 나와야 하는지 알 수 없다”고 호소했다.

이날 아이를 잃은 부모들은 본회의에서 법안 통과를 지켜볼 예정이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한국당은 이런 부모들의 눈치를 보고 별도로 우선 처리하겠다고 했지만 이미 나 원내대표가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가 없다. 간절한 어린이 안전 법안조차도 협상 카드로 쓰려고 했던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오히려 한국당은 황 대표의 단식이 여론의 공감대를 얻지 못 하는 상황에서 △패스트트랙 저지 투쟁 모드와 함께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등의 정치적 경찰 수사 하명 의혹에 대한 공세를 강화해서 기세를 잡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나 원내대표는 “저항의 대장정을 막을 수 있는 것은 불법 패스트트랙의 완전한 철회 선언과 친문 게이트 국정조사 수용”이라고 공언했다.

일단 문 의장은 한국당만 전원 출석한 본회의에 대해 의결정족수 미달을 이유로 개의하지 않았다. 만약 문 의장이 29일 자정까지 본회의를 열지 않으면 한국당이 신청한 필리버스터는 무효가 된다. 

이에 나 원내대표는 “국회의장이 국회법에서 인정한 권한과 책무를 넘어 본회의를 개의하지 않고 있다. 의장이 개의를 거부하는 것은 국회법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여야 정치 세력(민주당/대안신당/바른미래당 당권파/정의당/민주평화당/민중당/여권 성향의 무소속 의원 등)이 완벽하게 합심하면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변혁(변화와혁신을위한 비상행동)을 패싱하고 본회의를 정상적으로 열어 법안을 처리할 방법이 있긴 있다. 

국회법 106조2 1항에 따르면 재적 의원 3분의 1 이상이 동의하면 필리버스터를 개시할 수 있지만 5항과 6항에 따라 또 다른 재적 의원 3분의 1 이상이 동의하면 필리버스터 종결 요청을 할 수 있고 5분의 3이 표결로 찬성하면 바로 종료되고 법안 표결에 들어갈 수 있다. 

구체적으로 재적 의원(296석) 과반 이상(148석)으로 본회의가 열리기만 하면 과반 이상 찬성(74석)으로 패스트트랙 법안들이 의결될 수 있는데 추청해봤을 때 문 의장과 손혜원 무소속 의원을 민주당으로 편입시키고 최소 152석(민주당 130석+정의당 6석+민주평화당 5석+대안신당 10석+민중당 1석)이 확보되는 것으로 계산된다. 필리버스터를 멈추려면 177석이 필요한데 최소 152석 플러스 알파를 확보할 경우에 가능하다. 물론 쉽지 않다. 

변혁 15명의 의원들은 바른정당계 8명과 국민의당계 7명으로 구성됐는데 국민의당계 4명(김삼화·김수민·신용현·이동섭)이 선거법에 반대할 것이라고 보기 어려워 결국 필리버스터를 넘는 길이 없는 게 아니다. 

로텐더홀에서 규탄대회를 연 민주당. (사진=연합뉴스 제공)
로텐더홀에서 규탄대회를 연 민주당. (사진=연합뉴스 제공)

민주당은 한국당의 필리버스터 선언에 대해 바로 본청 로텐더홀에서 규탄대회를 열었다. 

이해찬 대표는 “한국당이 민생 법안을 볼모로 20대 국회 전체를 식물국회로 만들었다. 내가 30년간 정치를 했지만 이런 꼴은 처음 본다”며 “참을 만큼 참았다. 선거법과 검찰개혁법을 반드시 이번 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고 의지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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