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 우상 탈피해야
유엔 IPCC의 경고와 SDGS 추구
도넛 경제학이란?
탄소 감축을 기준으로
왜 자본만 생산해야 하는가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우리는 끊임없이 거시 경제지표 상승에 목을 매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야말로 경제성장 지상주의 사회다. 언제까지 경제성장을 추구해야 할까. 다른 경제는 상상할 수 없는 걸까.

홍기빈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지난 11월20일 저녁 서울 합정동에 위치한 ‘인권중심 사람’ 강의실에서 열린 <거대한 경제 전환이 필요한 이유> 특강에 연사로 나서서 “70년간 인류는 경제성장이라는 우상을 놓고서 좌파든 우파든 이것 저것 다 해보고 엉망이 돼 버렸다”며 “요즘 그린뉴딜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이 우상을 깰 때가 됐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이제 그만하자. 거대한 전환이라고 할 만하다. 1945년 이후 70년 정도 인류의 의식을 지배했던 경제성장이라고 하는 금송아지 우상을 때려부술 때가 됐다”고 덧붙였다.

도넛 경제학의 개념을 설명하고 있는 홍기빈 소장. (사진=박효영 기자)

그러면 경제성장 말고 어떤 방식으로 경제를 꾸려가야 할까.

홍 소장은 “경제 시스템을 조직하는 목표는 경제성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먼저 나와 우리의 좋은 삶이 중심이 되어야 하고 두 번째는 생태위기를 막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홍 소장은 “내가 미치겠는 것이 지난 몇 달간 한국에서 조국 대전으로 난리가 났는데 보고 있으면 이게 코미디인가 싶다”며 “지금 지구 전체가 박살나게 생겼다. 15년 남았다. 20년 남았다. 그레타 툰베리(2003년생 스웨덴 환경운동가) 같은 어린 친구가 나온 것이 절대로 우연이 아니고 우리나라를 넘어서 다른 나라에 가면 굉장히 숨가쁘게 일이 진행되고 있다. 엊그제 보니까 미국 캘리포니아는 가솔린 차를 구매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전기차만 사야 된다. 이게 얼마나 엄청난 일인가”라고 강조했다.

이를테면 “곳곳에서 탄소를 줄이고 그러고 있고 북극이 없어지는 것은 분명하다. 북극곰 빨리 데리고 와야 된다. 지구에서 모든 생명체가 죽을 위기인데 한국에서는 조국 대전을 보고 있어야 한다. 제발 그만 좀 하고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된다”며 “이것은 일부 또라이 과학자나 극좌파가 하는 극단적인 주장이 절대 아니다. IPCC(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가 작년에 낸 보고서를 보면 종말이 임박했다고 한다”고 환기했다.

IPCC는 2018년 10월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를 발표했는데 이에 따르면 전세계 모든 국가들이 2030년까지 예상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45%를 감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2028~2030년 안에 지구 온도가 1.5도 이상 상승하게 된다. 지구 온도가 1.5도 이상 상승하면 지구의 생체리듬이 파괴되고 인류의 통제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게 된다.

홍 소장은 “탄소의 순 배출량을 제로로 만드는 일을 2050년까지 이뤄내지 않으면 다 죽는다”며 “이건 일부 사람들이 하는 얘기가 아니라 과학계의 거의 일치된 정설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얘기가 자꾸 해외 토픽에 나온다. 아주 황당하다”고 토로했다.

일단 경제성장에 집착하는 태도부터 버려야 한다.

홍 소장은 “우주에 영원히 성장하는 것이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지면서 “나무건 사람이건 별이건 다 무한히 한없이 팽창하고 성장하는 게 있는가. 내가 알기론 우주 하나 밖에 없다. 우주 자체 말고는 무한히 팽창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70년간 인류가 추진해온 경제 모델은 매년 4%씩 성장한다는 것인데 처음에 못 사는 나라가 그렇게 가면 가능하다. 그러나 어마어마한 덩치를 가진 국가 경제가 매년 4%씩 성장하는 게 말이 되는가. 그러면 산림이 다 박살나게 돼 있다. 이게 자연의 섭리다. 어떻게 한없이 성장을 하는가”라고 경각심을 드러냈다.

홍 소장에 따르면 경제성장을 계속 하기 위해서는 “노동시간이 엄청 길어지고 다 대학을 나와야 한다. 그것도 좋은 대학을 나와야 하기 때문에 모든 아이들이 미친듯이 경쟁”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구체적으로 홍 소장은 “한국 초등학교 3학년이 밤 10시까지 학원을 전전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아동들의 삶의 질을 측정하면 맨날 꼴지가 나올 수밖에 없다. 계속 고도성장을 하려면 대학에 들어가는 것으로 경쟁해야 하고, 계속 자연 파괴해야 하고, 도로를 계속 지어야 하고, 화력발전을 지속해서 미세먼지를 들이마셔야 된다”고 묘사했다.

더 나아가 홍 소장은 “자본주의의 폐해인데 사회가 비용을 아끼겠다고 노동자들이 일을 하는데 환경이나 안전장치를 엉망으로 해놔가지고 나랑 같이 살아가는 이웃들이 몸이 두 쪽이 나고 그런 뉴스를 사흘에 한 번씩 봐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홍 소장은 “경제성장이 기여보다 파괴가 더 많아지게 되는데 지금 어느 국가나 다 그러고 있다”며 “소비는 기업에 봉사하는 시간이다. 즐기는 시간이 아니다. 잘 생각해보면 기업에서 나중에 사람들이 노동시간이 너무 길어서 소비시간이 확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발견해낸 게 홈쇼핑”이라고 예시를 들었다.

이어 “천재적인 발명품인데 백화점 가는 시간을 없애준 것이다. 그 다음에 홈쇼핑도 부족해서 손가락으로 다 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소비를 어마어마하게 하게 되는데 없어지는 여가시간이 굉장히 많다. 서로 얼굴도 안 보고 집에 들어가면 게임하느라 정신없다”고 덧붙였다.

(사진=박효영 기자)
홍 소장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무엇보다 홍 소장은 “경제를 조직하는 원리로 경제성장을 두지 말자”며 “그린뉴딜을 말하는 사람들은 매년 경제를 평가할 때 지금은 수익성과 경제성장률로 평가하고 기업도 그렇게 하고 있지만 모든 종류의 인간 활동을 탄소배출을 줄이는 데 얼마만큼 기여하느냐 혹은 저해하느냐의 관점으로 전환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가령 자동차 만들어서 대박을 치면 GDP도 올라가고 박수받고 하겠지만 그렇게 해가지고 탄소가 왕창 배출됐다면 돌 맞을 일이 돼야 한다. 이제부터 그렇게 돼야 한다. 15~20년 정도 남았으니까 경제성장이 아니라 탄소 배출이나 감축에 얼마만큼 기여했느냐로 보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한국의 기후위기 현상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지만 아직 남의 나라 불구경하는 수준이다.

홍 소장은 “아열대 기후 현상이 나타나서 갈치가 금치가 됐다. 이게 기후위기와 왜 관련이 없는가. 11월 말인데 영하 5도까지 내려갔다. 작년 여름에 무지무지 더웠을 때 이건 정말 기후위기와 직결되는 것”이라며 “근데 웃긴 일이 기후위기 때문에 너무 더워졌으므로 누구나 에어컨을 이용할 수 있도록 전기값을 깎아주는 것이 정의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그 전기쓰는 것 때문에 더워진 건데 전기를 더 쓰는 것이 해결책인가”라고 비판했다. 

그러니까 “제일 중요한 원인은 지식인들이나 매체들 담론을 만드는 사람들이 해도 너무하다. 조국한테 갖는 관심의 반 정도만 기후위기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이미 좋은 삶은 무엇인지에 대한 표준이 나와 있다.

홍 소장은 “개인과 집단의 좋은 삶은 단순히 돈이 많은 것이 아니”라며 “유엔이 정한 SDGS(지속가능개발목표)라고 해서 그걸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유엔 SDGS는 2015년 9월 모든 가입국이 만장일치로 채택한 인류의 공동 목표로 보편적 사회 문제 17개와 169개 세부사항을 2030년까지 해결하기 위해 탄생했다. 

예컨대 ①모든 형태의 빈곤 종결 ②기아 해소 및 식량안보와 지속가능한 농업발전 ③건강 보장과 모든 연령대 인구의 복지증진 ④양질의 포괄적인 교육 제공과 평생학습기회 제공 ⑤양성평등 달성과 모든 여성과 여아의 역량 강화 ⑥물과 위생의 보장 및 지속가능한 관리 ⑦적정 가격의 지속가능한 에너지 제공 ⑧지속가능한 경제성장 및 양질의 일자리와 고용 보장 ⑨사회기반시설 구축 및 지속가능한 산업화 증진 ⑩국가 안 또는 국가 간의 불평등 해소 ⑪안전하고 복원력 있는 지속가능한 도시와 인간 거주 ⑫지속가능한 소비와 생산패턴 보장 ⑬기후변화에 따른 영향 방지와 긴급 조치 ⑭해양 자원의 지속가능한 보존 노력 ⑮육지 생태계 보존과 삼림보존-사막화 방지-생물다양성 유지 ⑯모두가 접근가능한 사법제도와 포괄적 행정제도 확립 ⑰목표들의 이행수단 강화와 기업 및 의회 국가 간의 글로벌 파트너십 활성화 등이 있다.

홍 소장은 케이트 레이워스 옥스퍼드대 환경변화연구소 연구원이 쓴 ‘도넛 경제학’을 한국에 번역 출간했는데 “개인과 집단의 좋은 삶에 필요한 것을 조달하는 게 경제이고 그렇게 바꾸자는 것”이라며 “이게 그린뉴딜이고 도넛 경제학의 문제의식”이라고 규정했다.

즉 “도넛 그림을 보면 안에 있는 도넛이 기본적인 경제 조건을 상징하고 바깥에 동그라미가 지구적 생태환경을 상징하는 것인데. 산업 활동이 아주 줄어들면 사회는 거지가 될 것이다. 생산도 안 되고 소비도 없고. 그럼 좋은 삶이 되겠는가. 집도 생산 안 되고 학교도 못 짓고 약도 없고 이렇게 되니까. 도넛 안을 넘어가면 안 된다. 이것 보다는 산업 활동이 더 많이 벌어져야 한다. 그것보다는 많아야 하지만 바깥을 넘어서게 되면 기후가 박살나고 해양이 오염되고 땅이 산성화되어 버리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홍 소장은 “인간 세상의 산업 활동과 경제 조직은 여기 두 개의 도넛 안과 바깥 사이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걸 안 하면 우리 다 죽는다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다행히도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그린뉴딜 바람이 불고 있다. 

홍 소장은 “(그린뉴딜은) 지난 70년간 내려놨던 경제 패러다임과의 단절이고 전통 좌파와의 단절”이라며 “영국에서는 제레미 코빈(노동당 당수)이란 사람이 얘기를 많이 하고 있고 미국에서는 오카시오 코르테즈(뉴욕을 지역구로 둔 하원 의원)가 많이 하고 있다. 그 사람들이 나오게 된 것은 그냥 좌파의 부활이 아니라 70년 지속된 경제 패러다임을 바꾸는 근본적인 신호”라고 평가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홍 소장은 꼭 자본에게만 생산을 맡기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그렇다고 물질적 욕망을 다 버리고 인문학적 삶을 살아야 한다고 제안하는 것이 아니다.

홍 소장은 한 청중의 질문을 받고 “사람이 살아가려면 다 밥을 먹어야 하는데 밥만 먹으면 행복한가?”라며 “밥을 먹지 못 할 정도가 되면 당연히 밥을 먹으면 좋은 삶이 되지만 밥만 먹는다고 해서 좋은 삶은 아니”라고 답변했다.

이어 “내가 밥을 어떻게 조달할 것이냐를 갖다가 어떤 삶을 살 것이냐는 총체적 계획 안에서 직업이 결정되는 것이지 밥을 먹기 위해서 그걸 중심에 놓고 인생을 계획하는 것을 좋은 삶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며 “일자리가 없는 사람에게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좋은 삶이 된다”고 밝혔다. 

아울러 “일자리가 없는 이유는 자본이 고용을 안 해서 그렇다. 노동시장에서 자본이 고용 가치가 없다고 무시해버리기 때문”이라며 “자본가의 입장에서 봤을 때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가장 조금만 줘서 많은 걸 뽑아내야 하고 그런 관점이 판단 기준이다. 근데 인간은 자본가의 머릿 속에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로 판단돼야 할 존재인가. 자본가의 가성비에는 일하는 사람의 좋은 삶에 대한 고려는 전혀 안 들어가 있다”고 설명했다.

공공 일자리를 국가적 의무로 삼은 사례가 역사적으로 있긴 있다. 

홍 소장은 “1848년 프랑스에 혁명이 벌어지고 최초의 사회주의자 중에 루이 블랑이 국영 작업장을 만든다. 실업자 누구나 와서 자기가 일한 만큼 생산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 망했다. 노동자들이 일을 안 해서 망했지만 그 아이디어 자체는 지금까지 살아 남아있다. 고용 보장제라고 있다. 1930년대 뉴딜 정책 때 모든 사람들에게 국가가 최종 고용자가 되는 것이다. 실업자가 넘쳐나면 국가가 고용할 의무를 진다”며 “업종과 작업장을 만들어서 제공해주는 최소한의 의무를 국가가 져야 한다는 것이다. 샌더스(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이자 버몬트주를 지역구로 하는 상원의원) 캠프나 코르테즈 쪽에서 이걸 공약으로 내걸려고 하고 있다”고 전했다.

홍 소장은 거듭해서 “물질이 정말 희박하고 없는 사람들에게는 물질을 가져다주는 것이 가장 도움이 된다. 자본 축적이나 경제성장 지상주의를 폐기하고 일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자는 게 좋은 삶의 원칙”이라며 “돈이 없고 일을 해야 하는 사람에게 일자리를 주자는 것이 좋은 삶이지 그런 사람들에게 부처님 믿고 참선이나 하라는 말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기업과 자본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홍 소장은 “맑스는 자본가는 자본가의 역할이 있다고 했다. 자본가의 역할은 돈을 버는 것이지 그들에게 자꾸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고 하는 것은 헛소리”라며 “그냥 세금 잘 내고 노동자들 안 괴롭히면 제일이다. 좋은 삶에 대한 이야기를 기업에 가서 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기업을 때리고 규제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지금 고용 자체가 안 되고 있다. 고용이 안 되고 있는 사람들에게 스스로 고용을 조직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커먼스 경제(일종의 사회적 경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홍 소장은 “생산을 조직할 수 있는 권력을 우리가 왜 자본한테만 부여해야 하는가”라며 “사람들이 커먼스 방식으로 자본에 의존하지 않고 다르게 생산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자고 하고 있는데 그게 플랫폼 경제와 맞물려서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프랜차이즈에 가입하는 것은 사람들이 무슨 기술이 있나, 브랜드 파워가 있나, 재료 사오는 거래처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이 부분에서 한 번에 솔루션을 제공해주기 때문에 그렇다. 프랜차이즈가 뭘 하냐면 생산을 가능하게 해주는 여러 요소들의 플랫폼 역할들을 한다. 플랫폼을 꼭 자본만 조직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홍 소장은 “피자 주인들이 스스로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할 수 있다. 라이더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있는데 기회가 되면 독자적인 라이더 협동조합을 만들자고 논의를 하고 있다”며 “우리가 생산활동과 경제활동을 하더라도 최대한 자본에 기대지 않고 해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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