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우중 회장의 평생 교훈...'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

 

한국경제에 한 획을 그으며 한국 경제발전에 한 축을 담당했던 대우그룹의 창립자인 김우중 전 회장이 9일 오후 11시50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3세다.
한국경제에 한 획을 그으며 한국 경제발전에 한 축을 담당했던 대우그룹의 창립자인 김우중 전 회장이 9일 오후 11시50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3세다.

[중앙뉴스=윤장섭 기자]한국경제에 한 획을 그으며 한국 경제발전에 한 축을 담당했던 대우그룹의 창립자인 김우중 전 회장이 9일 오후 11시50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3세다.

사단법인 대우세계경영연구회는 김 전 회장이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김 전 회장은 지난해부터 건강이 나빠져 1년여 간 투병 생활을 했으며 평소 뜻에 따라 연명치료는 받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세계경영 신화'의 몰락 이후 주로 베트남에서 지내던 김 전 회장은 지난해 말 건강 악화로 귀국했으며 대우그룹이 해체된 지 20년 만에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대우그룹의 시작은 열평 남짓 사무실에서 1967년 3월 22일 대우실업이라는 간판을 달면서 시작됐다. "트리코트 원단 수출의 귀재라고 해서 '트리코트 김'이라 불리던 청년 김우중은 서울 충무로에 사무실을 빌려 셔츠 내의류 원단을 동남아시아에 내다" 팔았다. 김 전 회장의 수완과 정부의 수출진흥정책을 양날개로 달고 대우실업은 급성장했다.

김우중 회장의 철학으로 잘 알려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김 전 회장이 평생을 가슴에 품고 살았던 교훈이다. 대우그룹은 故 김우중 전 회장의 철학처럼 빠르게 성장하며 한국 경제를 이끌었다.고인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저서를 남기기도 했다.

故 김 전 회장은 1990년대 해외시장 개척에 주력해 '신흥국 출신 최대의 다국적기업'으로 대우를 성장시켰다. 해체 직전인 1998년 대우의 수출액은 186억 달러로 당시 한국 총 수출액(1천323억 달러)의 14%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우그룹은 1998년 당시 대우차-제너럴모터스(GM) 합작추진이 흔들린 데다 회사채 발행제한 조치까지 내려져 급격한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1936년 대구 출생인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을 자산규모 2위 재벌그룹으로 성장시켜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으로 추앙받다 외환위기 직후 부도덕한 경영인으로 내몰려 30여년 만에 불명예스럽게 그룹이 해체되는 등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았다. 지금은 '대우'라는 이름만 흔적처럼 남았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유족은 부인 정희자 전 힐튼호텔 회장, 장남 김선협 ㈜아도니스 부회장, 차남 김선용 ㈜벤티지홀딩스 대표, 장녀 김선정 (재)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 사위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 등이 있다.

빈소는 아주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고 조문은 10일 오전 10시부터 가능하다. 영결식은 12일 오전 8시 아주대병원 별관 대강당에서 예정됐으며 장지는 충남 태안군 소재 선영이다.

(사진출처=SBS방송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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