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경제부 기자는 기업의 ‘주머니’ 사정을 걱정해줘야 할까
[기자수첩] 경제부 기자는 기업의 ‘주머니’ 사정을 걱정해줘야 할까
  • 박효영 기자
  • 승인 2019.12.11 08: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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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성과 지상주의를 벗어나자
경제적 성과를 보더라도 다양하게
비물질적 평가도 중요
최태원 회장의 소셜 밸류
박효영 기자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산업부 기자로 일해본 경험이 있지만 금융권을 맡아본 것은 처음이었다. 금융권 기자로 일한지 한 달이 됐다. 그동안 알고 있었지만 좀 더 노골적으로 느끼게 된 것이 있다. 돈의 흐름이 기업을 향할 때는 긍정적으로 묘사해야 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부정적으로 써야 한다는 점이다. 

한 해 4차례 매번 분기마다 산업부 기자들은 맡은 분야 기업들의 재무제표를 살펴보게 된다. 그리고 기업이 과거에 비해 얼마나 돈을 잘 벌고 있는지의 관점에서 그렇지 못 하면 부진하고 있다는 기사를 쓴다. 여러 요인과 맥락들이 전제되지만 기업의 성장은 오직 과거에 비해 돈을 얼마나 많이 벌고 있느냐로 평가된다. 

사실 국가 경제도 마찬가지다. GDP(국내총생산), 경제성장률, 취업률, 고용률, 실업률 등 0.1% 단위로 얼마나 오르고 내렸는지에 대해 정부는 목을 매기 마련이다. 

구성원들이 모여 있는 조직이 오직 경제적 성과로만 평가되는 게 적절할까. 고민이 든다. 구성원들의 행복은? 조직이 공동체에 좋은 영향을 미쳤는지는? 경제적 성과를 냈다는 것이 곧 조직의 질적 성장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기업은 경우에 따라 해당 시장에서 여러 행위자들의 불이익을 전제로 이익을 볼 때도 많다. 예컨대 손해보험 회사가 돈을 많이 벌었다면 보험 가입자가 보험료를 많이 내고 보험금을 충분히 수령하지 못 했다는 얘기가 된다. 신용카드 회사가 수익을 많이 냈다면 가맹점 중소상공인들이 높은 수수료를 지출했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물론 실상은 반대다. 요즘 손보업계는 보험료로 벌어들인 액수 대비 보험금 지출액을 의미하는 손해율이 100%를 넘어갈 만큼 정말 밑지는 장사를 한다고 곡소리를 내고 있다. 자동차 보험으로 인한 손해 규모가 크고, 문재인 정부가 건강보험 보장성을 확대하는 기조의 영향을 받았다. 

카드업계도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이 부각되면서 더 이상 가맹점의 카드 수수료로 많은 수익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증권사들은 카드업계와 손보업계의 어려움을 부각하는 리포트를 쏟아내고 금융권 기자들은 이를 받아서 퍼트린다. 

그런데 꼭 그런 측면으로만 바라봐야 할까? 꼭 그렇게 쓰고 싶지 않지만 결국 그런 관점으로 쓰는 경우가 많아서 고민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경제적 성과를 배제하자는 것이 아니다. 경제적 성과를 기준으로 평가를 할 때도 좀 더 다양한 시각이 필요할 것 같다. 이익이 많이 났을 때 기업 경영진이 구성원들과 충분히 나누고 있는지, 기업이 돈을 벌었을 때 사회 전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 것인지, 같은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 중소기업들이 고통을 받고 있지는 않은지, 미래 투자에 소홀해서 돈을 아꼈고 그래서 실적이 뛰어나 보이는 것은 아닌지 등등. 

더 나아가 경제적 성과 밖에 있는 구성원들의 행복, 기업 이념의 구현, 사회 공헌 정도 등 비물질적인 여러 요소들을 눈여겨 봐야 하지 않을까. 금융도 결국 인간이 먹고 사는 것의 보편적 범위 안에 있는데 맨날 얼마나 배불리 먹었느냐로만 바라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3월23일 발행된 포브스 코리아 2019년 4월호에서 인터뷰를 통해 “회장에 취임한 후 그룹 경영에서 두 가지 철학을 강조했다”면서 사람과 행복을 거론했다.

최 회장은 “그동안 기업은 돈을 벌어라.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했지만 정말 그런가? 그렇지 않다”며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목적은 행복해지는 것인데 이제까지 그저 돈에만 중점을 뒀다. 그렇게 하는 것을 당연시했고 그 동력으로 여기까지 성장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기업은 꼭 돈에만 중심을 둬야 할까? 이 의문에서 시작한 게 바로 소셜 밸류다. 나는 기업 경영의 중심을 돈이 아닌 행복에 맞추려고 한다”고 밝혔다.

이어 “핵심은 우리의 일이라는 게 우리가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는 과정”이라며 “그렇게 모두가 행복한 기업으로 바꾸려고 하는 것이다. 이를 따로 부를 방법이 없어 그냥 행복이라고 하면 지속가능한 행복이 되어야 하는데 단기적인 행복으로는 곤란했다. 그래서 소셜 밸류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최 회장의 소셜 밸류 정책을 지지한다. 매우 특수한 사례지만 최 회장과 같은 결단만 있으면 재벌 대기업도 돈 중심의 획일적인 평가 기준을 탈피할 수 있다. 물론 최 회장이 재벌 2세로서 대한민국 0.000001% 속하는 다이아몬드 수저 출신이라는 점, 죄를 짓고 감옥살이를 했다는 사실을 비롯 각종 어두운 면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가장 큰 기업인 SK를 행복 경영으로 이끌려고 하는 과감한 시도만큼은 인정해주고 싶다. 

재벌 회장도 하는데 금융권 기자가 다른 상상력을 갖지 못 할 이유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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