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벌적 손해배상을 안 물려고
금융소비자보호법이 필요한 이유
치열하게 금융 상품 개발할 것
약관 어기는 금융사들
채무 탕감 이전에 은행들의 채무 조정 필요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지난 11월25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시민사회의 숙원과도 같은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이 8년 만에 통과됐다. 아직 본회의가 남았지만 사실상 입법 절차를 완료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알맹이가 없다는 비판이 나왔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비롯 여러 내용들이 많이 빠졌기 때문이다. 

최근 대규모 금융 소비자 피해로 인한 사회적 이슈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다른 방식으로 재입법 될 가능성이 있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처장은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식당에서 기자와 만나 “금소법을 도입해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시행해야 한다. 그러면 은행들이 유행 상품에 휘둘리지 않고 고객에 따라 상품 검증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강 처장은 “금융사들은 아무리 경기 예측을 하려고 해도 그때 그때 유행에 따라 경제 상황을 장담할 수가 없다. 한국은 더욱더 대외 경제 요인이 많다. 금융사가 그런 불확실성을 다 반영해서 상품을 만들기가 곤란하겠지만 만약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있다면 최대한 불확실성을 회피해서 상품을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형구 사무처장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물론 금융사들은 극렬하게 저항할 것이다. 

하지만 강 처장은 금소법이 “금융사들에게 올가미를 씌우는 것이 아니”라며 “이를 통해 더 좋은 상품을 공급할 수 있고 더 세밀하게 상품 구성을 파악해서 만들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금융사에게도 득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금은 과도기이기 때문에 문화적으로 불안감이 있을텐데 실질적으로 도입하더라도 크게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강 처장이 이번주에 선정한 내 돈 지킬 수 있는 금융 키워드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불공정한 약관과 관행들 △채무 조정 등 3가지다. 

이날 오전 금융위원회는 4558억원 규모의 원금을 날려버린 해외금리 연계형 DLF 사태(derivative linked fund/파생결합펀드)에 대한 최종 대책 방안을 발표했다. 골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 20%가 넘는 상품에 대해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이란 개념을 도입해 판매 금지 등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강 처장은 “(고객이 금융 피해를 봤더라도) 개별적으로 입증을 하기가 참 어렵다”면서 “소비자가 실질적으로 설명을 들을 때 녹음을 한다든지 이게 불완전 판매라는 것을 지금 단계에서 피해자가 입증해내야 한다. 근데 계약서에 보면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 했기 때문에) 원금 손실 가능성이라고 나와 있는 것에도 다 서명을 해놨다”고 묘사했다.

그러나 피해를 보상받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강 처장은 “피해를 봐서 소송을 하더라도 요즘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고 있는 추세지만 그게 소송으로 가면 기간이 3년넘게 장기간으로 갈 수 있다. 소송에서 질 수도 있다. 그런데 불완전 판매를 입증하더라도 전액 보상을 받기가 어렵고 그러기까지 들인 비용(변호사 수임료 등)도 감안해야 한다”며 “금융위가 오늘 얼마나 좋은 대책을 발표했는지 모르겠는데 그게 소비자 보호를 강화해서 소비자가 받아들일 수준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1금융권 은행들은 다른 금융사들과 달리 원금을 보장해줄 것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DLF 사태는 그런 신뢰를 깨트렸다.
 
물론 강 처장은 “금융상품 개발을 본업으로 하기 때문에 판매 자체에 제한을 가하는 것보다는 금융사들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어떤 상품을 만들 수 있고 어떤 것은 안 된다고 제한하면 영업 방해의 소지가 있다. 그래서 영업은 자유롭게 놔두되 그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 전액 배상하고 보상한다든지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독일 10년물 국채의 금리는 지난 3월부터 최저점을 찍을 것이라고 누구나 예상하고 있었는데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 등은 그걸 알고도 독일 국채 금리에 연계한 DLF를 판매했다. 구체적으로 우리은행 4012억원, 하나은행 3876억원, 국민은행 252억원, 유안타증권 50억원, 미래에셋대우 13억원, NH투자증권 11억원 등 액수가 상당하다.

강 처장은 “해외 금리 같은 경우에는 예측가능한 수준에서 (은행들이 다) 확정된 금리를 파악하고 있다”면서 “판매할 때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지만 금융투자상품은 미래에 여러 변수들이 많고 지수에 수시로 변화가 생기기 때문에 나중에 만기가 된다든지 조건에 따라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강 처장은 “상품을 만들 때 그런 불확실성 요소들을 촘촘하게 반영해서 될 수 있으면 소비자들에게 손해가 덜 가게끔 조치를 취해놓고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지만 은행들은 그러지 않았다. 

강 처장은 재차 ‘상품 개발 자유 사후 책임 강화’의 원칙을 천명했다.

강 처장은 “상품은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측면에서 다양한 것이 좋다. 신탁이라든지 그런 금융투자상품들은 일반 정기예금 보다 수익률이 높아서 선호하는 고객들이 있다”면서도 “상품을 고를 때 소비자가 정확하게 알고 가입하는 것과 모르고 가입하는 것 사이에 차이가 많이 난다. 알고 가입했다면 본인 책임으로 받아들일 수가 있지만 그걸 모르고 가입했다면 뭐 자기가 설명 들었던 것보다 더 원금 손실이 많이 났다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예컨대 강 처장은 “처음에 상품 가입을 할 때 이 상품은 원금 손실이 100% 발생한다거나 50% 발생한다고 하면 누가 쉽게 가입하려고 하겠는가. 실제 이런 손실 비율에 수익률은 많아야 15%에서 10% 가량 되는 금융상품들이 많다”고 주장했다.

결론적으로 강 처장은 “원금 손실은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온전히 투자자 부담으로 남는다. 금소법이 있었다면 그런 투자자 부담을 줄여주고 이익 변동 구간을 줄여주는 안정적인 상품을 많이 개발할 수 있다. 상품 개발에 더욱 투자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융사와 고객은 정보가 비대칭적이다. 금융사가 압도적으로 정보 강자다.

강 처장은 “금융사들이 약관들을 지키지 않거나 벗어나서 처리를 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이익이 나면 문제가 없지만 자기들이 스스로 지키지 않은 관리 지침이나 내규를 위배해서 손실이 확대되면 이건 전적으로 금융사 책임”이라며 “근데 그런 책임까지 소비자에게 떠넘겨버린다”고 비판했다.

금융사의 약관 의무 위반으로 손해가 발생해도 금융사들은 “관행이라든지, 법원 판례에 따라 벗어난다든지, 단순 오기라든지 그렇게 회피한다”는 것이다. 

특히 강 처장은 “약관 자체에 오기가 없더라도 금융사가 그걸 위배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신용보증 대출이나 주식 투자에서의 최저 담보유지비율의 사례를 봐도 제때 제때 통지해주는 날짜 규정이 있는데 금융사들이 그걸 위배해서 늦게 해서 그로인한 손실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약관 자체가 불공정할 수도 있지만 약관에 대한 숙지 정도가 현격하게 차이나는 점을 금융사가 악용하는 일이 많다. 그렇게 손해가 발생했을 때 금융사에 대한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강 처장의 주장이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빚을 진 사람들에 대한 인식은 당연히 좋지 않다.

강 처장은 “채무를 갚지 못 하는 사람들에 대해 도덕적 비난을 하고 있다”면서 “당연히 빚은 자기가 갚아야 한다. 근데 자영업자가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 은행은 절대 떼이지 않으려고 처음부터 일일이 다 체크를 한다. 그래서 대출을 받아 자기 사업을 할 때 이게 굴러가다가 자기 책임에 의해서 망하면 그나마 나은데 다른 요인들에 의해서 망하는 경우가 많다”고 운을 뗐다.

이어 “미수금이 증가한다든지 판매 자체가 외부 경기에 영향을 받아 부진한다든지. 경우에 따라 잘 안 될 수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것들은 사회적으로 책임을 같이 나눠져야 할 필요가 있고 전적으로 개인에게 책임을 묻게 된다면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강 처장은 어차피 채무자가 파산해서 거리에 나앉게 되면 그들을 관리해야 할 국가의 복지 비용이 증가한다는 측면에서 설파했다. 

즉 “복지 정책에 따라 국가가 기초연금이나 노인 수당을 지급해주고 있듯이 채무자들이 주저앉아 경제 활동을 못 하게 되면 그걸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결국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회생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면 사회적 비용이 오히려 줄어든다. 그렇게 대비해서 채무자들이 경제 활동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강 처장은 “채권을 매각하는 것 보다는 금융사들이 채무 조정을 좀 과감하게 해줘서 그 사람이 갚을 수 있게끔 해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강 처장은 채무자들의 채무를 조정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구체적으로 이런 거다.

강 처장은 “신용 대출의 경우 실질적으로 못 갚으면 은행은 거의 헐값에 매각한다. 매각해서 얻은 만큼의 액수를 채무자들에게 갚으라고 하면 거의 다 갚는다”면서 “만약 1000만원 채권이 있다가 그게 100만원으로 헐값에 팔렸다면 세상에 어떤 채무자라도 그걸 갚을 수 있다. 사실상 헐값이 된 채권은 원래 값의 8% 미만으로 매각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가격은 매각 대금인데 그것과 유사한 수준으로 채무자에게 넘기면 된다. 만약 그걸 그냥 매각해버리면 그 채무자는 신용불량자가 될 뿐 아니라 그것에 대한 이자가 계속 발생한다. 원금에 더해 이자까지 더 갚아야 한다. 그게 나중에 가면 정권에 따라 정책적으로 세금을 투입해서 탕감을 해준다든지 매입한다든지 채무를 조정해주고 소각해주거나 그런 식으로 간다”고 덧붙였다.

어차피 그런 사이클을 밟게 될테니 그렇게 되기 전에 은행들이 먼저 채무 조정을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인데 강 처장은 “채무 사례들을 찾아야 한다”면서 악순환의 고리를 풀어냈다.

강 처장은 “신용불량자는 당연히 기업에 채용되기 어렵다. 회사가 보통 신용보증을 세우는데 신불자는 그걸 안 해준다. 그래서 채무자는 일용직 시장에 가는데 금융실명제에 따라 자기 명의의 통장으로 급여를 이체해준다. 그게 들어오자 마자 바로 돈이 빠져나간다. 통장은 바로 채권 압류가 된다. 그러면 이런 사람들은 또 다른 사람의 명의의 통장을 사용하게 된다. 악순환이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빚의 굴레에서 헤어나오기 힘들다”고 말했다.

강 처장은 소셜 펀딩을 통해 만들어진 민간의 비영리 금융단체들이 채권을 매입해서 탕감해주는 방식도 좋지만 은행들의 적극적인 채무 조정이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강 처장은 “물론 채무 조정 대상자를 가려야 하겠지만 애초에 은행들이 아주 구체적으로 다 파악해서 대출해준다. 저 사람들이 왜 그렇게 못 갚는지도 다 파악하고 있다”며 은행들이 처음부터 빚 갚을 의지가 없거나 경제 능력이 아예 안 되는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준 게 아니라는 점을 환기했다.

또한 강 처장은 “주택담보대출 같은 경우도 요즘 워낙 집값이 널뛰니까 청년은 특히 대출을 안 받으면 집을 살 수가 없다. 뭐 또 실직해서 자기가 이자를 못 낼 경우에는 유예를 해줘야 한다. 캐나다는 실직하면 정부에서 이자를 대납해준다. 그건 나라들마다 다 다르지만 그런 게 있다.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예를 들어 실거주자인데 그게 경매에 넘어가면 어디에서 살아야 하는가”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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