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 국내산 AI ‘한돌’에 92수 만에 불계승
바둑 초보자도 아는 ‘축머리 기본수’ 놓친 AI 한돌
이세돌, “이겼지만 조금 허무해...‘한돌’ 준비 좀 더 하길”

이세돌 9단이 국산 인공지능 '한돌'에 불계승을 거둔 뒤 기자회견에 나섰다. (사진=우정호 기자)
이세돌 9단이 국산 인공지능 '한돌'에 불계승을 거둔 뒤 기자회견에 나섰다. (사진=우정호 기자)

[중앙뉴스=우정호 기자] ‘인공지능에 승리한 유일한 인간’ 이세돌 9단이 국산 AI '한돌‘을 상대로 92수 만에 가볍게 불계승을 거뒀다.

이번 대국은 치수고치기 3번기 중 첫 대국으로 비록 이세돌 9단이 AI ’한돌‘에 2점을 깔고 뒀지만 전문가들도 이처럼 허무한 결과는 예상 못했다는 반응이다.

프로기사에서 은퇴한 이세돌 9단은 18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바디프랜드 사옥에서 열린 '바디프랜드 브레인마사지배 이세돌 vs 한돌' 치수고치기 3번기 제1국에서 92수 만에 흑으로 불계승을 거뒀다.

바둑 초보자도 아는 ‘축머리 기본수’ 놓친 AI 한돌

지난 2016년 3월 구글이 야심 차게 준비한 '알파고'와 대결에서 1승 4패를 기록, 인공지능을 상대로 유일하게 승리한 '인간‘ 이세돌은 3년 만에 인공지능과 대결에서 다시 승리했다.

이날 대국은 바둑계 은퇴를 선언한 이세돌 9단을 위한 이벤트 성격으로 상대는 국내 엔에이치엔(NHN)이 개발한 인공지능 프로그램 한돌이었다. 한돌은 올해초 박정환, 신진서 9단 등 국내 톱5 선수들과의 공개대국에서 모두 이긴 최강의 인공지능이다. 이번엔 당시보다 더 업그레이드된 한돌 3.0이었다.

국내 프로기사들이 맞바둑으로는 이길 수 없다는 평가를 받는 ‘한돌’에 맞서 이세돌 9단은 25년간 프로기사 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두 점을 먼저 깔고 덤 7집 반을 주는 방식으로 대국에 임했다.

핸디캡 탓에 불리하게 출발한 AI ‘한돌’은 서서히 판세의 균형을 맞추는 듯 했다. 포석을 마치고 본격적인 중반에 들어가면서 우변에 침투한 흑 대마가 인공지능 한돌의 포위에 갇혀 생사가 불분명한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세돌이 한돌의 외곽 포위망을 뚫기 위해 78번째 수로 백 석점을 씌웠을 때 한돌의 믿기지 않는 수가 나왔다.

바둑 초보자들도 쉽게 알 수 있는 축머리 기본수를 읽지 못하면서 엉뚱하게 착수했고, 바로 백 석점을 제압한 이세돌은 우변 흑대마를 살리면서 사실상 승패를 갈랐다.

이날 불리한 핸디캡으로 시작한 한돌은 대국 초반 승률 10% 안팎에서 출발했으나 우변 흑돌을 공격하면서 30%대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3점이 잡히는 순간 승률이 3∼4%대로 폭락했고 더는 대국을 이어가지 못했다.

치수 고치기 3번기 첫판에서 승리한 이세돌은 19일 열리는 제2국에서는 핸디캡 없이 한돌과 호선으로 대결한다.

이세돌은 제1국 승리로 기본 대국료 1억5천만원과 승리 수당 5천만원 등 2억원의 상금을 챙겼다.

이세돌 9단이 AI '한돌'에 92수 만에 불계승을 거뒀다. (사진=유튜브 'SBS 뉴스'채널 캡쳐)
이세돌 9단이 AI '한돌'에 92수 만에 불계승을 거뒀다. (사진=유튜브 'SBS 뉴스'채널 캡쳐)

이세돌, “이겼지만 조금 허무해...‘한돌’ 준비 좀 더 하길”

인공지능 한돌을 꺾고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이세돌 9단은 가벼운 듯 연신 밝은 표정을 지었다.

이세돌 9단은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이기고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조금 허무하다"면서 "시간이 없지만, 2국(19일)과 3국(21일)에서는 한돌이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저도 이런 것은 원하지 않는다"라고 한돌의 '분발'을 요구하기도 했다.

'AI 한돌' 개발사인 NHN은 대국 후 "이세돌의 78수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라고 말한 반면 이세돌은 "78수는 프로라면 당연히 그렇게 두는 수"라고 밝혔다.

이세돌은 "열흘 동안 2점으로 많이 연습했는데, 사실 집에서는 2점으로 둬도 승률이 5 대 5가 안 됐다. 오늘 대국도 5 대 5의 확률도 안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조금 이해가 안 간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어 "한돌이 훨씬 고사양의 컴퓨터를 사용할 줄 알았는데, 사실 그런 게 아닌 게 아니었나"라고 지적했다.

이세돌은 호선으로 두는 2국에 대해 "솔직히 조금 힘들 것 같다. 승패보다는, 마지막이니 최선을 다하겠다. 최선을 다하면 종종 기적이 일어나지 않나"라며 "최선을 다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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