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의 석패율제 포기로 합의 가능
한국당의 강력 반발
한국당 패싱 충분히 가능
민주당의 탐욕
안 되는 것보다는 되는 것이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뭔가 께름칙하지만 선거법 수정안이 드디어 타결됐다.

4+1 협의체(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 당권파·대안신당·민주평화당·정의당)는 23일 점심 시간 즈음 패스트트랙(지정되면 본회의 표결 보장)으로 지정된 Ⓐ선거법 Ⓑ검찰개혁법(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검찰청법+형사소송법) 등에 대한 최종 수정안에 합의를 봤다고 밝혔다.

먼저 이날 아침 3+1 회동(바른미래당 당권파·대안신당·민주평화당·정의당)이 열렸고 여기서 불협화음의 요소였던 석패율제 포기가 결정됐다. 직후 개최된 4+1 회동에서 민주당이 이를 수용했고 최종 합의안의 얼개가 맞춰졌다. 4+1은 오늘 안에 본회의 의결이 필요한 안건들(선거법/검찰개혁법/예산안 부수법안/각종 민생 법안)을 일괄 상정할 것이라고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이날 아침 3+1 회동에 따라 석패율제가 포기됐다. 왼쪽부터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심상정 정의당 대표, 유성엽 대안신당 창당준비위원장. (사진=연합뉴스)

정춘숙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4+1 회동이 끝나고 기자들과 만나 “선거법에 대해 정리를 했고 공수처 및 검경수사권 조정 부분도 거의 지금 의견이 좁혀지고 있다. 마지막 작업 중”이라며 “법안 대부분이 다 정리가 됐고 검경수사권 조정의 수사 부문 관련해서 정리할 부분이 남았다”고 알려왔다.

이어 “4당 대표들이 어렵게 결정했고 다 같이 가는 것이니 일괄 상정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수정안의 주요 내용을 보면 Ⓐ은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수 현행대로 253대 47 △50% 연동형 비례대표제 적용 △연동형으로 배분하는 비례대표 의석 30석 제한 등이다. 

Ⓑ의 공수처법은 △공수처장 추천위원회 위원 7명 중 6명의 찬성으로 2명을 추천하고 대통령이 1명을 택하면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 △기소권과 수사권 둘 다 보유 △기소 여부 심의하는 기소심의위원회 미설치 등이다. 

자유한국당은 당연히 강력 반발하고 있다. 한국당은 해왔던대로 장내외에서 규탄대회 등을 열고 총력 저지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인 의사진행 방해) 역시 실효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머리를 싸매고 있는 중이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이날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군소 정당들이 총선에서 살아남기 위해 민주당으로부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얻고 민주당은 그 대가로 공수처를 얻는 야합이다. 우리 헌정 사상 가장 추한 야합 막장 드라마”라고 맹비난했다.

지난 4월 말 패스트트랙 지정을 관철시켰던 공조 세력이 최종 본회의 의결을 위한 수정안을 성안한 만큼 강대 강 충돌이 재현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한국당의 실력행사는 객관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4+1은 의결정족수인 재적 의원 295명의 과반(148명)을 훌쩍 넘길 수 있는(166명) 데다 지역구 축소에 따른 개별 의원들의 이탈표 리스크를 최소화했기 때문에 한국당 패싱이 충분히 가능하다. 패스트트랙 지정 때도 그랬지만 10일 밤 4+1은 한국당 없이 2020년도 예산안을 본회의에서 의결한 바 있다. 한국당이 보따리 필리버스터를 걸더라도 소위 쪼개기 임시국회 카드로 돌파할 수 있다. 국회법상 안건에 대한 필리버스터는 한 회기에서만 가능하고 다음 회기에서는 바로 표결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짧은 회기의 임시국회를 여러 차례 소집하면 된다.

문제는 민주당에 대한 비판이 심상치 않다는 점이다. 故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일찍이 나섰고 문재인 대통령까지 공약으로 내걸었던 비례성 강화의 선거법 개정에 대해 완전 누더기나 다름없는 안으로 후퇴시켰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8개월 전 패스트트랙 원안에서도 한참 못 미치는 수정안을 3+1에 강요했다. 

이를테면 ①2015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안한 지역구와 비례대표 200대 100 모델의 100% 연동형 비례대표제 ②2019년 4월말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225대 75 모델의 50%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③4+1에서의 250대 50 모델 ④250대 50에서 비례대표 30석에 한정해서만 캡을 씌워 연동형 적용 등 그동안 끝없이 거대 정당 민주당의 이해관계가 반영되어 ①→②→③→④으로 후퇴돼왔다. 3+1 중 대안신당을 뺀 3당이 13일 ④을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가 18일에 꾸역꾸역 ④까지 수용한 뒤 석패율제 도입을 내걸었는데 민주당은 그마저 의총에서 걷어차버렸다. 결과적으로 민주당은 ⑤원안에 들어간 석패율제 누락 ⑥비례대표 의석 현행대로 47석 유지 등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서 기득권을 수호했다.

정의당 소속 이기중 관악구의회 의원은 4+1 타결 소식이 전해진 직후 페이스북을 통해 “민주당은 한국당 보다 나을 것 하나 없는 기득권 적폐 정당일 뿐이다. 매순간 확인한다”고 규탄했다.

그럼에도 선거제도 개혁을 외쳐왔던 진영 내에서는 현실은 현실이라 아예 안 하는 것보다는 백보 중 한 보라도 가는 것이 더 낫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구미시의원을 지낸 바 있는 김수민 평론가는 페이스북을 통해 “거대 정당이 지지율을 밑도는 의석률을 받거나 그럴 가능성이 목전에 있음을 발견했을 때 지지율 만큼이라도 의석을 찾아 먹어야겠구나 싶어 비로소 고비례성 선거제도로 개혁할 수 있다”며 “저비례성 선거제도는 양당제를 고착화하지만 거대 양당에 드는 정당도 3위로 밀리는 순간부터 걷잡을 수 없이 몰락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과거 영국 자유당이 그랬고 지금 프랑스 사회당이 그렇다. 선거제도가 선거 결과를 좌우할 뿐만 아니라 선거 결과가 선거제도를 결정짓기도 한다. 마침 중소 정당에는 진보, 중도, 보수가 다 있다. 이들이 거대 양당의 표밭을 잠식해서 너희 욕심 부리다 본전도 못 뽑을 것이라는 위협을 가할 때만이 선거제도는 개혁된다”고 주장했다.

실제 민주당이 새정치민주연합 시절 이명박·박근혜 정권 기간 만년 야당 8년차일 때 ①을 당론으로 받아들인 바 있다. 

한국당도 작년 6.13 지방선거에서 완패한 뒤 비박계(박근혜 전 대통령) 지도부인 김성태 전 원내대표 등이 비례성을 강화하는 선거제도 개혁에 우호적인 목소리를 냈었다. 당시 선거 결과를 보면 수도권 광역의회에서 한국당은 20% 넘는 정당 득표율을 얻고도 실제 의석으로는 10석도 확보하지 못 했다(서울시의회 142석 중 4석/경기도의회 110석 중 6석). 그래서 김 전 원내대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한 것이다. 물론 나경원 전 원내대표와 황 대표 체제가 들어선 뒤 연동형 결사 반대로 당론이 바뀌었다.

여론조사 지지율 추세가 민주당과 한국당 거대 양당이 다 낮게 나올 만큼 정치적으로 위기를 꾸준히 맞아야 고비례성 선거법 개정이 가능할 수 있는데 현재는 양당이 정치적 여건을 그렇게 보고 있지 않은 것이다. 진짜 위기가 맞고 거대한 선거 폭망이라는 시련을 코앞에 두고 있을 수도 있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양당의 판단이 어떤지가 중요하다. 양당이 그런 위기감을 안 느끼는 상황에서 선거법 개정이 파투나지 않고 누더기라도 추진될 수 있는 것에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것일까. 

원외 시민사회 공간에서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가장 애를 써왔던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11월26일 국회 정문 앞 농성장에서 기자와 만나 “어차피 현실이다. 나는 선거제도 개혁은 현실로 이뤄져야 의미가 있어서 지금 막바지 단계에서 냉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며 “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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