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돈아 작가,"위축될 건 없어, 내 장점이 더 많아"
"철저하게 준비해라, 일시적인 후원 오래가지 못해, 작품으로 승부"

이돈아 작가 (사진=신현지 기자)
이돈아 작가 (사진=신현지 기자)

[중앙뉴스=신현지 기자] 우리 사회의 오랜 병폐 중의 하나는 학연, 지연, 혈연 등으로 끼리끼리 뭉치는 연고주의다. 무리 안의 정체성을 규정짓고 또 이를 통한 또래 문화로 사회적 갈등의 골을 깊게 형성하는 집단주의.

아니 쉽게 말하자. 한국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결코 연고주의를 무시할 순 없다. 특히나 예체능 바닥은 더욱 더. 그런데 이 말을 무색하게 하는 이가 있어 21세기를 맞이하는 벽두에 희망적인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미술계의 이돈아 작가다.

전통 민화와 길상화의 요소들을 시간과 공간, 존재에 대한 미래적 관점으로 재해석

전통 민화와 길상화의 요소들을 시간과 공간, 그리고 존재에 대한 미래적 관점으로 재해석하고 있는 이돈하 작가. 본지가 그와 마주한 건 한파가 한풀 꺾인 한적한 겨울 오후.

“난 미술계에 동료가 없다. 난 그들과 외롭게 싸워야만 했다. 아니, 난 단순하다. 그래서 따돌리는 걸 잘 모른다. 그러다보니 그저 묵묵히 내 일을 즐겼을 뿐이다. 지금 역시도  난 그 어떤 시선도 두려워하지 않고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다.”  

본지와 마주 앉은 이 작가는 학연을 중시하는 미술계에서 비전공자로서의 외로운 싸움을, 그리고 지금의 확고한 자리매김의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그런 이 작가의 표정은 봄빛에 자태를 드러내는 모란꽃처럼 환했다.

이돈아 작가

마치 그가 그린 민화 속 화사한 모란처럼. 그래서 지금까지의 그의 치열한 싸움이 전혀 감지되지 않았다.

“몇 년 전만 해도 표정이 어둡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 때문이었는지 그 당시 작품들이 대부분 좀 어둡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전혀 위축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 피해의식을 가질 필요도 없고 내 장점이 그들보다 더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미래가 희망적이라는 것도. 그러다 보니 내 작품 세계도 달라졌다.”

회화, 렌티큘러, 영상,기타 다양한 미디어 작업으로도 변환, 작가 만의 독특한 스타일 구축

기하도형과 전통 길상화의 요소들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하며 회화, 렌티큘러, 영상,기타 다양한 미디어 작업으로 독특한 스타일을 구축하고 있는 이 작가. 그가 이처럼 다양한 장르를 섭렵함에도 미술계에 발을 들여놓기까지의 오기와 강단이 필요했던 건 미술계의 여타 작가들과는 드물게 대학의 비전공자라는 이유였다.

그는 이화여대에서 시청각 교육과를 졸업했다. 이후 광고회사에서 촉망받는 인재로 탄탄대로가 눈앞에 펼쳐졌고. 하지만 정작 그의 꿈은 광고계가 아니었기에 30대 중반에야 꿈을 위한 도전에 중앙대 대학원에서 미술교육을 전공했다. 

“난 어릴 적부터 미술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부모님 반대에 미대 대신 시청각 교육과를 졸업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그 차선책이 얼마나 내게 큰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 회 화뿐 아니라 미디어,영상 렌티큘러 등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앞으로의 미술계의 트렌드는 한 가지 장르에만 국한되지 않은 다양성이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난 이 모든 것을 함께 아우르며 부지런히 내 세계를 구축할 생각이다.

작업실에서의 이돈아 작가

물론 지금은 그가 이처럼 편안한 웃음이지만 학연을 중시하는 미술계의 풍토에 2005년도에 미술교육을 전공하고도 그의 위축감은 컸단다. 하지만 그는 당차고 긍정적인 성격의 소유자답게 그들과의 싸움에서 주저앉지 않았단다. 작품으로 승부하겠다는 생각으로 철저하게 작업에만 몰입했단다. 그래서 지금까지 200회가 넘는 전시회를 열었고 또 다수의 개인과 기업들의 후원에 작품 활동의 범위가 광범위해졌다.

위출될 것 없어, 작가는 작품으로 승부하는 것

“난 철저하게 준비했다. 소외감, 콤플렉스로 시간 낭비할 수 없었다. 예술가는 작품으로 승부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난 열심히 그렸고 또 많은 전시회도 가졌다. 물론 그러기 위해 아르바이트도 많이 했다. 다행인건 내가 생활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그런 면에서 남편이 참으로 고맙다. 어쨌거나 그런 마인드로 열심히 준비하니 여기저기 반응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중 대표적인 게 한 기업과의 20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행사 일환으로 열린 내 무궁화 작품 전시다. 그리고  2016년 아모레퍼시픽 화장품과의 콜라보레이션이 진행되었고 2018년에는 갤러리 현대에 ‘민화, 현대를 만나다: 조선시대 꽃 그림전을 함께 하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이돈아 작가는 2018년 갤러리 현대 ‘민화, 현대를 만나다. 조선시대 꽃 그림 전에 유일한 현존 작가로 화제를 낳기도 했다. 민화를 모티브로 과거, 현재, 미래의 이미지를 재구성하는 작가의 독특한 예술세계에 전문가들의 뜨거운 호평이 더해진 것도 이때였다.

또 흐트러짐 없는 하나의 철학으로 작품세계의 가능성을 확대한 작가로 미술계의 주목을 끌기도 했다. 이때 이 작가는 12첩 병풍에 자유로운 구도와 화려한 채색으로 한국민화의 진수를 보여주어 많은 미술 팬들을 확보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작가는 어떻게 우리의 전통 민화를 재구성하겠다는 생각을 가졌을까?

민화는 가족과의 추억

“내가 우리의 전통 민화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화폭에 재해석할 수 있는 계기는 아마도 친정아버지 때문이지 않나 싶다. 아버지께서 해외 근무를 오랫동안 하셨는데 한국 사랑이 남다르셨다. 특히 우리의 전통예술에 관심이 많으셨고 조예도 깊으셨다.

그 때문에 어릴 적부터 집안에서 민화를 쉽게 접할 수 있었는데 내가 결혼 하던 해에 친정 가족들이 모두 이민을 가셨다. 그러니 난 친정에 대한 그리움이 엄청나게 컸다. 그 그리움과 추억을 난 민화를 보면서 삭혔던 것 같고 또 그것이 내 작품의 소재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내 작품을 보면 환하고 따뜻한 느낌이 강하다. 또 나는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이기 때문에 자연히 내 그림이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민화작가로서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우르며 시간과 공간(Time and Space)을 초월하는 것에 특징을 두고 있는 이 작가, 그녀가 짧은 기간에 아니, 단숨에 미술계와 대중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철저한 노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진정성이 아닐까 싶다. 작품에 대한 진정성, 사람에 대한 진정성, 모든 일에 진정성을 으뜸으로 두고 있는 작가. 그에 개인과 기업들도 그의 진정성에 화답하는 것이고.

“전혀 몰랐던 분들이 내 그림을 알아봐 주시고 찾아주실 때는 깜짝 놀란다. 또 기획전을 열어주시고 기업들은 프로젝트 일환으로 나와 함께 작업하기를 요청해주실 때 감사하고 뿌듯하다. 이 모든 게 평소 내 생활철학인 진정성 때문이지 않나 싶다. 난 매사 진정성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치색이 짙은 후원자의 후원은 사절이라고 한다. 즉, 그는 어떤 이념의 목적으로 자신의 작품이 이용되는 건 절대 싫단다. 진정한 예술가는 오로지 예술만을 사랑하기 때문이란다. 이에 2020년 1월 쯤에는 좋은 전시회도 계획되어 현재 그 준비 중이라고 한다.

 2020년 정조의 책가도를 모티브로 프로젝트 계획

“G스마트글로벌과의 프로젝트다. 정조의 책가도를 모티프로 미디어영상 작품을 선보일 생각이다. 물론 이번 프로젝트의 주제도 ‘시간과 공간’이다. 과거를 상징하는 소재로 정조의 책가도를, 현재의 상징에 육면체의 빌딩, 미래의 상징에는 무드로써 21세기를 맞는 새해 벽두에 밝은 희망적인 메시지를 사회 곳곳에 전달해 볼 생각이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으니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보겠단다. 즉, 건물 내부의 재생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단다.

“한 후원자 분이 이미 공간을 마련해 두셨는데 난 그 공간내부를 아무도 시도해보지 않은 방법으로 꾸며볼 계획이다. 이를 테면 내 작품이 걸리는 벽면과 실내 내부를 나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로 구성할 것이다. 그리고 조금 먼 계획이기는 하지만 미국의 타임스퀘어에 내 작품을 전시하는 것이 꿈이다. 이 기회가 주어진다면 난 내 작품에 국가브랜드를 담아 세계에 한국의 위상을 알릴 생각이다.”

현대미술과 전통미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고 나아가 세계화로 확대 예고를 알리는 이돈아 작가, 머지않아 그의 작품을 미국 타임스퀘어에서 만나기를 기대하며 그와의 아쉬운운 시간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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