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회의 가결 
23년만에 공수처 제도화
한국당 의원직 총사퇴
조국 사태와 공수처
검찰개혁과 공수처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20년간 명칭만 유명했던 공수처법(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 드디어 제도화될 수 있게 됐다. 도입 필요성이 제기된지 23년만이다. 공수처는 말 그대로 고위공직자들의 범죄를 전담 수사하는 기구로서의 의미도 있지만 최근 들어서는 막강한 검찰을 견제하는 검찰 개혁의 의미도 있다. 

30일 19시 국회 본회의에서 공수처법이 통과됐다. 

막판까지 4+1 협의체(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 당권파·대안신당·정의당·민주평화당) 대 자유한국당+새로운보수당 등(바른미래당 비당권파)의 팽팽한 대결 구도 속에서 공수처법은 본회의 의결정족수(148석)가 확실히 보장된다고 할 수 없었다. 특히 새보수당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는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이 제출한 공수처법 수정안(권은희안)이 변수였다.

권은희안은 수사권만 공수처가 보유하고 기소권을 검찰에 두는 모델이었는데 일찍이 권성동 한국당 의원 등이 공언했듯이 한국당도 수용할 수 있는 카드였기 때문이다. 물론 공수처가 수사해서 검찰에 넘겼음에도 검찰이 기소하지 않으면 기소심의위원회를 가동시킬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한국당이 당론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더라도 4+1의 공수처법을 막기 위한 차선책으로 부각된 측면이 있었다.

그래서 표결 싸움에서 누가 이길지 알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권은희안은 부결됐고 4+1의 공수처법은 한국당이 퇴장한 가운데 재석 177명 중 찬성 160명, 반대 14명, 기권 3명으로 가결됐다. 

한국당은 공수처법 반대 투표를 유도하기 위해 무기명 표결 방식을 안건으로 올렸지만 수적 열세로 부결됐다. (사진=연합뉴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통과된 직후 페이스북을 통해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이후 철옹성처럼 유지된 검찰의 기소 독점에 중대한 변화가 생긴 것”이라며 “학자로서 오랜 기간 공수처 설치를 주장했고 민정수석으로 관계 기관과 협의해 입법화를 위해 벽돌 몇 개를 놓았던지라 만감이 교차한다”고 밝혔다.

이어 “되돌릴 수 없는 검찰개혁의 제도화가 차례차례 이루어지고 있기에 눈물이 핑돈다”고 표현했다.

한국당은 본회의 개의 예정 시간인 18시부터 지난 선거법 때처럼 의장석 주변을 점거했지만 문 의장의 질서유지권 발동 및 수적 열세(무기명 투표 방식으로 표결하게 해서 공수처법 반대표를 모아보려는 의도)로 속수무책이었다. 그저 고성과 집단 구호를 외치는 게 전부였다.

한국당이 떠난 본회의장에서는 △무역보험계약 체결 한도에 대한 동의안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 운용 관련 동의안 3건 등이 처리됐지만 △유치원 3법 △데이터 3법 △청년기본법 등 주요한 법안들은 결국 처리되지 못 하고 해를 넘기게 됐다.

한국당은 △2020년도 예산안 △선거법 △공수처법에 이르기까지 4+1에 허를 찔리자 또 다시 의원직 총사퇴 카드를 꺼내들었다. 나경원 전 원내대표 때 여러 번 거론된 카드인데 이번에는 의원총회를 통해 결의하는 수준까지 갔다. 의원들의 사퇴서를 다 받아놓은 뒤 정무적으로 당 지도부 차원에서 시기 조절 등을 검토해본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하는 것이 아닌 국회법에 따라 국회의원이 자진 사퇴를 하려면 △회기 중에는 재적의원 과반 찬성 △회기가 아닐 때는 국회의장 결재가 필요하다. 진짜 제출하고 의장이 결재하면 되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다. 내년 총선을 준비하기 위해 현역 의원 다수의 뒷배가 필수적이라서 전원 사퇴 카드는 매우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사진=연합뉴스)
심재철 원내대표가 의원직 총사퇴도 불사하겠다는 전면 투쟁의 결의를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민주당은 두 번 연속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인 의사진행 방해)를 치른 만큼 또 하나의 검찰개혁법인 검경수사권조정 안건(형사소송법+검찰청법)을 바로 본회의에 상정시켜서 밀어붙이지는 않고 숨고르기를 하는 분위기다. 그나마 한국당이 검경수사권조정 이슈에 대해서는 덜 반대하고 있어서 물밑 대화를 해본다는 입장이지만 상할대로 상한 감정 때문에 다시 4+1을 통한 밀어붙이기가 재현될 것으로 보인다. 예상 본회의 개의 날짜는 1월3일에서 6일 사이다.

사실 공수처법을 둘러싼 정치적 함의는 복잡했다. 

지난 4월말 당시 4당(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이 패스트트랙(지정되면 본회의 표결 보장)에 선거법과 검찰개혁법(공수처법+형사소송법+검찰청법)을 태웠을 때도 한국당은 격렬하게 반대했다. 이후 7월부터 시작된 소위 조국 사태를 거치고 공수처법은 그야말로 사활이 걸린 진영 싸움의 상징이 됐다. 

윤석열 검찰총장 체제의 검찰은 어떤 배경에서인지 조 전 장관 관련 수사를 강력하게 진행했고 정부여당은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신임을 받아 검찰 수장이 된 윤 총장이 살아 있는 권력을 이전과는 차원이 다르게 대하자 일각에서는 ①충정론(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②검찰 기득권 수호론(검찰개혁에 신념이 강한 장관을 날리려고 함) ③정치적 욕망설(윤 총장이 정치적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함) 등 온갖 평론들이 제기됐다. 윤 총장은 공식적으로 국회의 권한을 존중하고 검찰개혁 법안 로비를 안 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②과는 선을 그었지만 검찰들의 국회 로비는 여전했다. 문무일 직전 검찰총장이 검경수사권조정 문제를 놓고 대놓고 반발했듯이 ②은 검찰의 본능인 측면이 있다. 위로는 공수처에 기소 독점권을 뺏기고 아래로는 경찰에 수사 독립권을 내줘야 하기 때문에 검찰개혁 흐름에 저항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다. 

정부여당은 조국 사태 이전까지는 윤 총장을 정치적 동지관계로 여겼다. 무엇보다 2017년~2018년 내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의 수장이었던 윤 총장은 한국당이 집권했을 때의 여러 문제점들을 적폐청산이란 이름으로 강도높게 수사했던 만큼 민주당 입장에서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신임을 받아 임명됐다. (사진=박효영 기자)

검찰이 기소권과 수사권을 모두 보유하고 있는 점, 헌법상 영장청구권을 독점하고 있는 점, 경찰이 독립적으로 수사하지 못 하고 종결할 때 검찰의 수사지휘를 받아야 한다는 점 등 검찰의 비대한 권한들은 그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정부여당의 큰 관심사가 아니었다. 검찰이 피의사실을 언론에 흘려서 인격권을 침해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상대편이 당하고 있을 때는 그런 정보들을 활용하기만했지 결코 경계하지 않았다. 

물론 그때도 법무부와 행정안전부가 검경수사권조정 합의안을 발표(2018년 6월21일)하는 등 검찰개혁을 추진하려고 했고 민주당이 조국 사태 이전에 패스트트랙으로 입법화를 진행하긴 했다. 하지만 보수진영에 불리한 사건들(사법농단 등)과 관련해서 검찰의 피의사실 흘리기나 직접 수사권 행사에 대해서는 문제제기를 하지 않다가 조국 사태 이후 검찰개혁의 전도사가 된 측면이 있다.

정부여당은 조국 사태로 확인했듯이 윤 총장의 검찰이 여권을 얼마든지 들쑤실 수 있는 상황에서 공수처를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는 간절함을 갖고 있을 수밖에 없고 ②③을 근거로 검찰을 맹비판하고 있다. 

반면 한국당은 그렇기 때문에 공수처를 결사 반대했다. 공수처가 문재인 정부의 보위부가 되어 검찰의 여권 수사를 디펜스해주고 야당만 캐려고 할 것이라는 가정법이 재차 반복됐다.

구체적으로 통과된 공수처법 24조 1항과 2항에 따르면 “(검찰이나 경찰이 수사하고 있는 건에 대해 공수처가) 이첩을 요청하는 경우 해당 수사기관은 응하여야 하고 다른 수사기관이 고위공직자 범죄(공수처의 수사 대상) 등을 인지한 경우 그 사실을 즉시 수사처에 통보해야 한다”고 돼 있는데 한국당과 보수 언론은 이 조항을 독소조항이라면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검찰도 이 대목에 매우 비판적이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이 법안 내용을 제발 읽어보고 판단해달라고 눈물로 호소하더라도 검찰과 보수진영에서는 독소조항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다. 검찰이 공수처 수사 대상을 수사하고 있으면 바로 알려야 하고 이첩하라고 하면 이첩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수처장이 어떤 스탠스를 취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검찰의 수사 상황을 사실상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대신 민주당은 야당의 비토권이 규정돼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공수처법에 따라 공수처장이 되려면 후보추천위원회 위원 7명 중 6명의 찬성이 필요하고 국회 인사청문회도 거쳐야 한다. 추천위는 △법무부장관 △법원행정처장 △대한변호사협회장 △여당 추천 인사 2명 △야당 추천 인사 2명 등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야당이 반대하는 인사가 공수처장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3조 3항에 따라 청와대가 “수사처의 사무에 관하여 업무 보고, 자료 제출 요구, 지시, 의견 제시, 협의, 그밖에 직무수행에 관여하는 일체의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도 규정돼 있어서 공수처의 독립성이 어필될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곤란해 하고 있는 수사를 총지휘하고 있는 윤 총장에게 공수처가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주목된다. (사진=박효영 기자)

하지만 민주당이 적극 엄호하고 문 대통령이 기수를 뛰어넘어서까지 임명했던 윤 총장도 여권을 강하게 수사했듯이 공수처장의 임명 과정과 무관하게 공식적으로 처장이 된 뒤 한국당에 타격이 되는 수사를 할지 민주당이 곤란해 할 수사를 할지는 전혀 알 수 없다. 그저 자기 진영에 불리한 수사를 하면 “공수처 개혁”이나 “야당 탄압”이라는 구호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밖에도 공수처는 △처장과 차장을 포함 특별검사 25명 및 특별수사관으로 구성되고 △수사 대상은 대통령, 국회의원, 대법원장 및 대법관, 헌법재판소장 및 헌법재판관, 국무총리와 국무총리 비서실 정무직 공무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무직 공무원, 판사 및 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공무원 등이고 △기소 대상은 검사, 판사, 경찰 등에 국한해서 허용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공수처는 여러 준비 절차를 거쳐 2020년 7월부터 출범할 예정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