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연대와 노동당의 정당 정치론
민주노총과 출세주의
신년 노동당의 계획
정책위원회
헌법 운동
과로사회와 극단적인 경쟁사회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강령으로 내걸고 있는 노동당 입장에서 기성 정당들처럼 마냥 의회에 진출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그렇다고 200년 전 정통 사회주의자들처럼 현장에서의 노동자 결집과 투쟁만 추구할 수도 없다.

현린 노동당 대표는 지난 12월2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중앙당사에서 기자와 만나 “좌파 단위들이 노동당 중심으로 결집할 때는 현장 투쟁만 고집하던 방식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라며 “정당 정치의 필요성에 공감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어 “원내로 진출한 노동운동 출신 정치인들이 우경화되어 정부와 타협하려고 하는 것이 문제”라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일방적인 집회와 현장 투쟁 방식만으로는 체제를 바꿀 수 없다. 그 대안이 정당 운동이다. 그런 의미에서 선거에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만 우경화는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린 대표는 정당 정치를 추구하면서도 우경화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12월20일 민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대회의실에서 여러 좌파 그룹들(노동당/민주노총/사회변혁노동자당/현장실천사회변혁노동자전선/노동해방투쟁/평등노동자회)이 ‘정세 토론회’를 열었다.  

현 대표는 당시 토론회에 참석한 좌파 그룹들 중에서 의회 진출을 하나의 수단으로 갖고 있는 조직은 노동당이 유일했다면서 현실 정치 진출에 따른 우경화를 경계하고 동시에 기존의 현장 우선주의만으로는 안 된다는 “그런 면에서 합의를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노동당은 2019년 초 선출된 9기 대표단(용혜인·신지혜)의 당명 개정 시도 실패와 집단 탈당 이후 8월15일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재편됐다. 현 대표는 비대위원장을 맡게 됐고 3개월 동안 당을 추스른 뒤 11월에 정식 대표로 당원들의 선택을 받았다.  

현 대표는 “8월15일 이후 달라진 면들이 우리 노동당에게 적극적으로 좌파 사회주의 운동을 재건하자는 제안들이나 연대의 손길들이 오기 시작했다”며 “비대위 기간에도 변혁당이나 전선 쪽과 만났었다. 한국 사회 전체에서는 작은 부분들이긴 하지만 좌파 단위 입장에서는 기존에 없었던 움직임이다. 그동안 많이 분열돼왔던 단위들이 이번 계기로 결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세 토론회에서는 크게 △문재인 정부의 노동 정책 방향 △국회 상황 △좌파들의 역할 △노동당의 4.15 총선 대비 △정의당 기준 더 왼쪽에 있는 좌파들의 연대 △노동당의 중장기 발전계획 등이 거론됐다.

현 대표는 “각 단위별로 어떤 계획들이 있는지 확인했고 다른 조직들은 정당 조직이 아니다 보니 다들 노동당의 총선 계획이 궁금했던 것”이라며 “노동당이 총선에서 어떤 후보를 낸다고 했을 때 지지해줄 수 있느냐 그런 얘기들을 주고 받았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현 대표는 △민주노총 △합법 정당 운동 등을 중심으로 치열하게 토론했다고 전했다.

방점은 정당 운동을 어떻게 해볼 것이냐에 찍히긴 했지만 현 대표는 “세계적으로 좌파와 사회주의를 내걸고 합법 정당이 됐던 경우에 우경화가 되지 않은 사례가 없었다. 영국 노동당이 물론 코빈 당수 이후에 조금 진보적으로 됐다고 하던데 그전에는 오히려 신자유주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프랑스도 마찬가지”라며 좌파들의 우려를 환기했다.

즉 “선거에 당장 성공해서 원내 진입하고 말고의 차원에서 더 나아가 우리가 원내 진입을 하더라도 우경화되지 않고 원래의 우리 기조를 가지고 활동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나눴다”는 것이다.

예컨대 민주노총 사례를 보면 현 대표는 “노동자 정치행동(노동당 산하 의제 그룹)의 이갑용 위원장이 말씀하셨지만 민주노총 자체가 출세주의에 젖어 정치인이 되면 정부와 타협하려고만 한다. 민주노총 간부 출신 중에 의회로 들어간 사람들이 꽤 있는데 그들이 노동 탄압을 앞장선 측면이 있다. 이번에 52시간 노동시간제 시행 유예 역시 노동계 의원들이 주도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약 2000만명 이상의 임금 노동자들이 노동당의 존재를 모르거나 지지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현 대표는 “공장의 노동자들이라고 해서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더불어민주당이나 자유한국당을 지지하는 분들이 많다”며 노동자 계층 역시 다양하다는 측면에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과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입장차가 있는 것이고 우리가 함께 해야 할 현장 노동자들은 누구인가에 대한 얘기를 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당장 우리가 큰 욕심을 내서는 안 된다. 외연 확장을 해야 한다고 하지만 너무 많은 유권자들이 우리를 선택해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하면 우경화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정세 토론회의 결론에 대해 현 대표는 “합해보자. 이제 하나되어 보자는 얘기”라며 그렇게 힘을 합친 뒤 “짧게 봐도 2022년 대선을 놓고 좌파들이 차근차근 밟아가야 할 로드맵이 어떤 것인가. 적어도 10년을 보고 가야 한다. 물론 그때 그때 이슈에 따라 대응해야겠지만 2024년과 2028년 총선을 보고 목표치를 미리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내용이 중요하다.

현 대표는 “단순히 합한다고 해서 내용이 저절로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와 같이 해야 할 현장의 시민들이 우리를 지지하기까지 그분들을 설득할 수 있는 내용들이 있어야 한다”며 “그러려면 조직과 시간이 필요하고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아마 조만간 신년사와 내년 당대회 때 공개를 하겠지만 노동당도 중장기 발전 계획을 짜서 발표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현 대표는 연초 노동당의 주요 이벤트와 관련 △1월 전국위원회(총선 대응 방침 확정) △1월 기자간담회 △2월 임시 당대회 △복당 및 입당 캠페인 등이 있다고 정리했다.

무엇보다 현 대표는 이미 총선에 출마 선언을 한 인물들이 있다면서 “울산 중구에 이향희 중구 당협위원장이자 전 울산시당 위원장이다. 중구에서 20년 가까이 활동했고 계속 선거에서 떨어지기만 해서 의회 경험이 없다. 총선 도전만 이번까지 4번째다. 울산 동구에서는 하창민 울산시당위원장이 출마 선언을 했다. 하창민 후보 본인이 비정규직 노동자다. 당사자 입장에서 총선에 참여하려고 한다”고 알렸다. 

이어 “지역구 후보는 그렇게 되고 비례대표 후보들은 우리도 고민하고 있다. 총선기획단이 꾸려져 있어서 거기서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박효영 기자)
현 대표는 정세 토론회가 열리는 등 좌파 그룹이 자주 연대를 모색하는 것 자체가 과거의 현장 투쟁 중심을 넘어서려는 움직임이라고 말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이밖에도 현 대표는 △정책위원회 △헌법 운동 △과로와 극단적인 경쟁 등에 대해 풀어냈다. 

현 대표는 “우리 당에 정책위원회가 늘 있었지만 지난 3~4년간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정책위라면 각 부문별 정책위원들이 있어야 하고 정기적인 회의가 열려야 하고 연구 성과가 있어야 하고 외부와 공유하는 자리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진행되지 않았었다”며 “이번에 정책위의장이 다시 선출됐다. 인원들을 보충하고 있다. 12월에만 매주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정책위에서도 중장기적인 정책들을 준비하고 있고 하필 시즌이 총선이 코앞이라 총선 관련한 공약도 준비해야 한다. 주요 공약들을 마무리해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 정책위를 통해 “무상 교육, 무상 주택, 무상 의료, 무상 교통 등 기본적으로 인간으로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국가가 책임지는 방향으로 정책들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주택과 의료는 매우 중요하다. 어떻게 접근해볼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헌법 운동에 대해 현 대표는 “방법론적으로 대중들을 변화시키는 것은 정말 어렵다. 그것보다는 대중들이 원하는 게 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데 우리 내부에서는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는 사회주의 체제를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게 뭘까. 그 매개가 뭘까. 그게 헌법”이라며 “자본주의 체제의 현재 헌법과 대안사회의 헌법을 비교해서 제안하고 대안사회의 구체적인 모습은 무엇일까와 관련 헌법 운동을 제안해볼까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 시민들은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봐도 지나치게 일을 많이 하고 있고 경쟁에 시달리고 있다. 

현 대표는 “벌써 5년 전부터 얘기를 하고 있는데 우리는 너무 경쟁을 많이 하고 있고 당장 너무 일을 많이 하고 있다. 이게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며 “삶의 새로운 기준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쉬면서 살고 싶은 것인데 옆에 보면 그렇게 하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다. 다들 똑같이 쉬고 싶은데 누군가 먼저 표준적인 삶을 벗어나는 시도를 하고 그게 큰 흐름이 되어야 하는데 아직도 소수나 주변부의 얘기처럼 되어 있다. 이걸 어떻게 중심부로 다수의 이야기로 만들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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