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성금을 훔치면 3대가 안 좋아
[칼럼]성금을 훔치면 3대가 안 좋아
  • 전대열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1.05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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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열 대기자
전대열 대기자

[중앙뉴스=전대열 대기자]‘얼굴 없는 천사’는 전주의 대명사나 다름없다. 19년 동안 한 해도 빠짐없이 연말만 되면 노송동사무소에 거액을 기부하는 사람의 별명이다. 그가 기부한 액수는 꼭 따질 것은 아니지만 20회에 걸쳐 6억834만660원에 달한다.

일반 사람은 만져보기도 어려운 큰돈이다. 그가 큰 부자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매년 내는 돈이 들쭉날쭉하고 돼지저금통까지 모조리 가지고 나오는 것을 보면 기부하기 위해서 전력을 다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의 정성이 아름다운 것은 19년 동안 한 번도 얼굴을 내밀거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성경에 있는 말씀이라고 하는데 진정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도 모르게” 하는 그의 마음씨는 참으로 갸륵하다. 나는 전주태생으로 노송동에 있는 학교를 다녔다. 모교의 별칭은 노송대(老松台)여서 동문들의 모임은 대부분 ‘노송’을 애용한다.

얼굴 없는 천사가 노송동에 거주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당국에서도 애써 그의 모습을 밝히려 하지 않는 것은 행여 진정성에 훼손이 될까 두렵기 때문이리라. 연말이 되면 동사무소는 전화가 걸려올 것을 예상하고 긴장하며 대기할 것이다. 이번 연말에도 어김없이 따르릉 전화가 왔다.

천사쉼터 나무 밑은 1분도 안 걸린다. 그런데 돈이 안 보인다. 성금을 찾았는지 확인전화가 와서 인근을 샅샅이 뒤졌으나 없다. 다급하게 경찰에 신고할 수밖에 없다.

경찰은 목격자 진술과 주변 폐쇄회로(CCTV) 분석에 들어가 범행 현장에 정차했다가 떠난 스포츠유틸리티(SUV)차량를 추적하여 4시간 만에 대전 유성과 충남 계룡에서 범인 2명을 붙잡았다. 참으로 신속한 체포 작전이다. 그들이 훔쳐간 성금은 6천만 원으로 밝혀졌는데 미처 써보지도 못하고 붙잡힌 것이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도 얼굴 없는 천사는 조사과정에서 자신의 신상이 공개되지 않도록 신신당부를 했다. 전주시는 이 분의 선행을 기리기 위해 2009년도에 노송동사무소 옆에 기념비를 세웠으며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노송동 지역의 홀몸노인, 소년소녀가장, 조손가정 등 어려운 이웃들을 돕고 있다.

기부자의 뜻에 따른 것이며 노송동의 초 중 고교에서 10여 명의 ‘천사장학생’을 선발하여 대학 졸업 시까지 장학금도 지급하고 있다. 철저하게 노송동 지역을 위해서 봉사를 다하는 셈이다.

이 사건은 단순한 절도에 불과하지만 자신을 감추고 20년을 하루같이 선행을 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기에 전 국민이 모두 충격적으로 받아드렸다. 빨리 붙잡히지 않고 훔친 돈을 유흥비로나 탕진했다면 국민들의 분노는 엄청났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북과 충남경찰의 공조태세는 모처럼 큰 성과를 거뒀다. 우리는 홍길동이나 임꺽정 같은 전설적인 의도(義盜)를 사랑하고 좋아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소설로 전해지지만 실존인물이다. 부자를 털어 가난한 이들의 집 마당에 곡식을 던져놓고 표표히 사라진다. 그들 역시 얼굴 없는 천사였다.

지금도 전국 곳곳에 얼굴 없는 천사들이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안다. 익명의 기부자들에게는 적선지가(積善之家) 필유여경(必有餘慶)의 큰 복이 내릴 게 분명하다. 돈이 많다고 해서 모두 자선을 베풀지 않는다. 그러나 경주 최부자는 “백리 이내에 굶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는 신념으로 흉년 기근을 구휼(救恤)하는데 재산을 내놨다.

삼다도 제주에서는 김만복이라는 여성이 끈질긴 사업욕으로 큰돈을 여축했다가 전 재산을 바쳐 가난한 사람을 도왔다. 이 사실을 안 임금이 서울로 불러올려 여성이지만 벼슬을 내리려고 했으나 한사코 마다하고 제주로 돌아갔다.

미국의 록펠러는 50대에 중병으로 죽기 직전이었으나 병원에서 돈이 없어 입원조차 거부당하는 소녀에게 몰래 돈을 줘 완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부의 기쁨을 만끽하게 된다. 자신의 병도 어느새 회복되었다. 그는 90세가 넘도록 장수하며 평생 기부인생을 누리고 떠났다. 빌게이츠 등 세계적인 부호들이 우리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거금을 선뜻 기부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 재산의 사회 환원이 제도화된 것은 아니지만 참으로 부러운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기부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도가 크게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재산을 가진 고위 공직자가 자신의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받게 했다는 보도는 너무도 씁쓸하다.

성적이 좋다면 그나마 이해가 되겠지만 그것도 아니어서 국민의 분노는 더욱 크다. 성적이 좋거나 가난한 학생에게 지급해야 할 장학금이 돈 많은 권력자의 자녀에게 돌아갔다는 것은 노송동 소년소녀 가장에게 갈 돈을 훔친 것과 진배없다.

금수저가 흙 수저를 훔친 것이다. 우리 옛 속담에 “부자가 망해도 3년 간다.”고 했지만 천사의 성금을 훔친 도둑은 아마도 3대가 불행해지지 않을까. 선대의 업보가 그대로 자기 자신의 자손들에게 전해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끔찍하지 않은가. 이 사건을 돈 많은 고위 공직자들에게 타산지석으로 전해주고 싶다.

전대열 대기자. 전북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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