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민 시인/수필가
박종민 시인/수필가

[중앙뉴스=박종민] 전국 곳곳에 숨어있다시피 한 맛 집을 찾아다니며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건 식도락일 것이다. 먹는 것에서 오는 색다른 낙이리다. 허지만 누구나 다 할 수 있으리만큼 쉽진 않다.

사회적 여건은 충분히 이뤄져 있다. 정보화시대라서 스마트 폰 속에 언제든지 검색이 이뤄지고 교통통행도 전국각지 갖춰져 있기에 찾아다니기도 쉽다.

이쯤 되니 여러 가지 음식을 맛보며 제대로 찾아먹으려는 식도락가들이 많다. 그들만의 낭만이며 멋이기도 하리라. 얼마나 좋을까? 여유로운 삶을 즐기면서 맛있는 음식에 심취한다는 건 행락(行樂)이기도 할 것이다.

자칭식도락가라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개고기나 삼계탕을 먹으면서 하기 좋은 말로 몸보신을 강조한다. 몸보신이란 그 어원이 언제부처 시작 됐고 어떤 것에  근거를 뒀는지는 모른다. 

몸보신이란 듣기 좋은 말로 과대 포장해 물불을 가지질 않고 이런저런 특정음식을 찾아 권하며 즐겨먹고 있는 것이다.

허나 이들이 대놓고 보신이니 영양이니 내세우는 음식메뉴를 보면 대중적인 음식이라기보다는 보통사람들이 먹기를 기피하거나 꺼리는 식재료가 주류를 이룬다. 대부분이 포획살생금지생물 등이다. 이런 음식문화가 어디서부터 전래되고 전파돼 왔을까?

동남아국가를 여행하다보면 개고기를 비롯한 뱀 개구리 박쥐 귀뚜라미 굼벵이 심지어 독충인 전갈도 몸보신식품으로 등장한다. 무엇이 진정한 사람의 먹을거리인지 분간하기조차 어렵다. 항간에 익히 알려진 최고급몸보신식품이라고 하는 캐비어(상어알)나 곰 발바닥 같은 건 눈에 띄지 않게 은밀히 거래되고 있었고 쥐나 불개미 벌과 각종애벌레가 몸보신식품으로 등장한다.

저런 것들도 식품인가? 하며 인간이야말로 지저분한 잡식동물이라는 생각이 들며 마음이 찔끔했다. 거기에 비하면 명분이 식용개고기 보신탕은 대중화된 식품인 듯도 하다. 그러나 개고기의 경우 사람과 가장 가깝게 정감과 정서를 교감하며 우호 애완하는 친화적인동물로서 서구선진문화권에서는 식육으로 먹거나 판매유통이 금기 금지된 동물의 육질이아니던가.

동서의 문명과 문화권에서 비롯된 인식의 차이이긴 하리다. 쇠고기를 즐겨 먹는 민족이 있는가 하면 이를 금기하며 양고기를 즐겨먹는 민족문화가 있는 정황으로 볼 때 똑 부러지게 이건 되고 이건 안 된다 하기도 어렵겠단 느낌이 든다. 그러기에 동양의 아시아권 몇몇 국가에선 단고기니 영양탕이니 하면서 개고기가 대 놓고 흥행하고 있지 않은가 싶다.

그러나 몸보신식품이라고 단정하기엔 명확하고 뚜렷한 근거가 미약하기만 하다. 인식의 전환이필요하다. 시대가 바뀌었다. 세대가 달라졌다.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다라야 함이다. 전 세계가 작은 지구촌으로 가깝게 다가온 글로벌시대가 아닌가. 먹을거리에도 글로벌스탠다드를 따라야 할 때다.

근래 들어 식용용개를 사육하는 농장이 없어 졌다. 좋은 현상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불법인줄 알면서도 버젓이 현장에서 개를 도살해서 도처의 산재한 식당에 식육으로 판매했었다. 그런 영향에 아직도 보신탕(개고기)을 먹으며 몸보신이라 믿는 것 같다. 개장국 또는 멍멍 탕 영양탕이라고도 부르며 즐겨먹는다. 단백질이 귀하던 과거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젠 아니다. 보신이란 명분을 내건 건 비단 개고기뿐만이 아니다.

동물보호단체나 환경단체의 감시감독체제가 확립돼 있기 전엔 산과들에 자생하는 뱀이나 개구리 오소리 등등 가릴 것 없이 마구 먹어대면서도 몸보신이라 했다. 이젠 좋은 먹을거리가 넘쳐난다. 먹는 것에 대한 인식을 바로 해야 할 즈음이다. 특정음식을 따지고 가리기 보단 골고루 즐겨 먹는 게 몸보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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