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경제 지표 좋다고 강조
거시경제와 민생은 별개
부동산 문제
균형발전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故 박정희 대통령의 개발독재 시대를 넘어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국내총생산 규모 2012조원)이 된 상황에서는 더 이상 거시경제 지표가 좋다고 일반 국민들의 삶이 나아졌다고 보기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은 14일 오전 10시 청와대 영빈관에서 2020년 신년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기자회견은 1시간 45분간 이어졌고 문 대통령이 직접 질문자를 지목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활짝 웃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내가 경제에 대해 긍정적인 말씀을 드리면 우리 현실 경제의 어려움을 제대로 모르고 너무 안이하게 인식하는 것 아니냐는 그런 비판을 받는다”면서도 “내가 말한 내용은 전부 사실이다. 내가 부정적 지표를 말하지 않았을 수 있지만 적어도 내가 말한 건 모두 사실이다. 우리 경제에서 부정적 지표는 점점 적어지고 긍정적 지표는 점점 늘어나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우리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는 전망도 국내외적으로 일치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틈만 나면 고용 관련 통계를 비롯 거시경제 지표가 나아지고 있다는 발언을 하곤 하는데 그것은 바로 보수 언론과 야당의 공격거리가 된다. 문재인 정부 자체에 악감정이 많은 보수진영에서의 맹공은 견딜 수 있지만 일반 시민들의 체감 경기와 그에 따라 형성된 여론의 흐름이 심상치 않다.

문 대통령도 “거시경제가 좋아진다고 국민 개개인의 체감 경제가 곧바로 좋아진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전체 거시 경제가 좋아지는 계기에 실질적 삶의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사실 문재인 정부의 국정 지지율은 2018년 내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힘입어 80%까지 치솟았었다. 반토막나게 된 계기는 그 해 하반기 최저임금 인상 국면 때부터였다. 600만명에 이르는 자영업자들이 경제민주화 조치없이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인건비 부담을 떠안게 되면서 불경기 이슈가 부각됐다. 노무현 정부 때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가 횡행했듯이 보수진영의 경제파탄론이 그들만의 네거티브로 머물지 않고 국민 대다수가 그것에 호응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재차 “이달 말쯤 되면 경제성장률 추정치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데 2% 정도로 추정한다. 과거에 비하면 성장률이 낮아졌지만 우리와 비슷한 3050 클럽(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에 인구 5000만명 이상 국가) 국가 가운데서는 미국 다음으로 2위를 기록한 결과다. 어려움 속에서 선방했다”라며 “신년에는 그보다는 높아질 것이란 게 한국은행을 포함한 여러 경제연구소의 분석이고 일치한다. 실제로 12월을 기점으로 수출이 좋아지고 이달도 1월1일부터 10일까지 수출은 5.3% 증가했다. 주가도 연초를 기분좋게 출발하고 있다. 주가가 오른다는 것은 기업의 미래 가치를 보는 것이라서 국내외 투자자가 밝게 보는 것”이라고 읊었다. 

분명 문 대통령도 거시경제 지표의 개선만으로 일반 국민의 살림살이가 나아질 것이라고 보지 않고 있지만 자꾸 거시경제 지표를 강조하게 되는 것은 보수진영의 비판이 주로 그것을 근거삼아 이뤄지고 있고 경제파탄 프레임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고 보여진다.

(사진=연합뉴스)
거시경제 지표가 나아지고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어필한 문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경제 문제는 곧 일자리로 상징될 만큼 고용 이슈는 매우 중요하다.

문 대통령은 “가장 힘들었고 아쉬운 점은 역시 뭐니 뭐니 해도 고용지표가 부진했다는 것”이라며 “그런 부분에서 국민들 기대에 미치지 못 했다는 점이 가장 아쉽고 아픈 점이었다. 앞으로 이 부분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하는 것이 새해 우리 정부의 가장 큰 과제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의 정책 기조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 기조는 그대로 유지해가더라도 보완할 점들을 충분히 보완해서 이제는 고용 지표에 있어서도 작년과는 달리 훨씬 더 늘어난 모습이었다. 그래서 고용의 양과 질을 함께 높이는 그런 한 해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사실 경기 불황 시대에는 일종의 ‘불황 사이클’이 작동한다. 

①안정적인 가처분소득이 확보되기 어렵고 →②그래서 소비가 늘지 않고 →③매출이 안 오르니 기업 형편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고 →④당연히 기업의 일자리는 줄고 →⑤다시 가계의 소득이 감소세에 접어든다. 

특히 기업은 여러모로 어려워서 고용을 줄이겠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최첨단 자동화 시스템이 확산되면 구조적으로 고용량 자체가 전폭 감소될 위험성이 있다. 일자리와 노동을 전제한 소득과 그에 따른 경제 정책이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내건 경제정책은 3가지(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이지만 핵심은 소득주도성장이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포용 성장’으로 구호가 전환됐지만 핵심은 아래로부터의 소득 증가를 통한 소비 활성화로 경제 성장을 도모한다는 논리다. 기존의 한국 경제 발전 전략은 수출 대기업 위주의 낙수효과를 노리는 것이었다. 

소득주도성장을 설계한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현 주중대사)은 △가계 소득을 높이고 △가계 생계비를 줄이고 △사회안전망과 복지를 확충하는 것이 소득주도성장의 구체적 내용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①②③을 차례대로 높여주는 것인데 경로의존성이 구조적으로 축적돼온 한국 경제의 틀을 한 번에 바꾸기 어렵고 불황 여파가 지속되자 문재인 정부는 보수진영의 거센 비판에 직면해서 사실상 ③④에 주목하는 쪽으로 경제 정책의 방향을 전환했다고 볼 수 있다. 한 마디로 기업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일자리를 창출해서 가계 소득을 늘려주는 방식으로만 가고 있다. 아래로부터의 성장이 아닌 위로부터의 성장 전략이다.

문 대통령은 타다(콜택시와 같은 랜터카 서비스) 문제를 예로 들어 “규제 혁신을 위해 규제 샌드박스(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가 출시될 때 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면제하거나 유예) 등을 통해 세계 어느 나라보다 규제 혁신에서 속도를 내고 있다. 실제 많은 성과를 거뒀다”면서도 “타다 문제처럼 신구 산업간 사회적 갈등이 생기는 문제는 풀지 못 하고 있다. 그런 문제들을 논의하는 사회적 타협기구들이 건별로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③④을 위해 △은산분리 원칙 무시하고 인터넷전문은행 허용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입법권을 넘어 노동시간 52시간제 시행 유예 등을 밀어붙였다.

(사진=연합뉴스)
물 마시고 있는 문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이밖에도 문 대통령은 ‘부동산’과 ‘균형발전’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문 대통령은 “지난번(12.16 부동산 대책)은 9억원 이상 고가 주택이나 다주택에 초점이 주어졌기 때문에 9억원 이하의 주택이 가격이 오르는 풍선 효과가 생겨난다거나 부동산 매매 수요가 전세 수요로 바뀌면서 전세까지 또 오른다거나 이런 식의 정책이 기도하는 그 외의 다른 효과가 생길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예의주시하면서 언제든지 보완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무슨 대책을 내놓으면 상당 기간은 효과가 먹히다가도 결국에는 다른 우회적 투기 수단을 찾아내고 하는 것이 투기 자본의 생리이기 때문에 정부는 지금의 대책이 뭔가 조금 시효를 다했다고 판단되면 강력한 대책을 끝없이 내놓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일부 서울 특정지역에 일부 고가 주택의 문제라고 해도 지나치게 높은 주택 가격은 많은 국민들에게 상실감을 준다. 그런 문제는 반드시 잡겠다는 것”이라며 “너무 이례적으로 가격이 오른 지역이나 아파트에 대해 가격을 안정화시킨다는 정도에 만족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재인 정부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을 필두로 실거주자 중심의 부동산 정책을 추진하고 있고 연일 투기 수요를 잡기 위해 전쟁을 치르고 있다. 하지만 진보적 시민사회(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에서는 오히려 문재인 정부 집권 이후 서울 집값이 연일 오르고 있다면서 △3기 신도시 지정 폐지 △분양가 상한제 대상 확대 등을 요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언론에서도 그 대책이 효과를 볼 것이다라고 긍정적으로 봐주면 실제로 효과가 먹힌다. 그러나 정부 대책이 발표되자마자 언론에서 안될 것이다라고 하면 그 대책이 제대로 먹힐리가 없는 것”이라며 “정부에서도 부동산 대책을 갖고 서민 주거를 보호하자는 것이니 크게 함께 해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대한민국 땅덩어리(99720㎢)의 10분의 1에 불과한 서울·경기·인천(11835㎢)에 전체 인구의 2분의 1이 살고 있다. 지방 분권이 절실하다. 

문 대통령은 “혁신도시가 발전하고 공공기관을 이전하는 것은 그 자체는 다 완료됐다. 이제는 민간 기업이 혁신도시로 가는 노력을 해야할텐데 그것은 과거 균형발전 사업의 연장선”이라며 지금 시행하고 있는 균형발전 주요 조치들을 나열했다.

이를테면 △지역 사업의 경우 예타(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해주고 25조원 배정 △지방 SOC(사회간접자본) 사업에 10조원 넘게 배정 △지방 소비세율을 부가가치세의 21%로 상향 △국세와 지방세 비중 75대 25로 조정 등이다. 

서울로 인구가 집중되는 문제와 관련 문 대통령은 “지역 출산율이 높지만 말하자면 젊은이들이 희망을 가질 일자리가 부족해 서울로 유출돼 지방 인구가 줄어든다”며 “(인구 절벽 문제로 인해 질문한 기자가) 국가 비상사태를 말했는데 꼭 그렇게 하자는 것 보다는 그런 마음자세로 정책을 세우고 그렇게 노력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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