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권자가 자녀를 징계할 수 있도록 규정한 ‘민법 제915조’ 삭제해야

(신현지 기자)
(신현지 기자)

[중앙뉴스=신현지 기자] 자녀체벌, 사랑의 매인가. 감정을 실은 친권자의 일방적인 체벌인가. 사랑의 매를 가장한 아동학대 범죄가 또 발생했다.지난 10일 경기도 여주에서 아홉살 배기 남자어린이가 속옷만 입은 채 베란다 찬물이 담긴 욕조에 1시간가량 앉아있다 끝내 목숨을 잃었다.

아동을 학대해 숨지게 한 이는 지난해 아이의 친부와 재혼한 계모 A씨. 경찰에 따르면 계모 A씨는 아이가 ‘얌전히 있으라’는 말을 듣지 않고 돌아다녀 벌을 주려 했다고 진술했다.더욱이 A씨는 과거에도 아이를 학대해 아동복지법 위반죄로 처벌받은 전력도 드러났다.

이 같은 사실에 많은 네티즌들이 분개하며 아동 학대를 막을 사회적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고 토로했다. 아동 인권단체들은 아동학대 근절을 위해서는 친권자가 자녀를 징계할 수 있도록 규정한 ‘민법 제915조’를 삭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법 제915조는 징계권은 부모가(친권자가) ‘보호와 교양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징계를 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즉, 친부모가 아동을 체벌하는 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실질적으로 친권자의 아동 징계권을 법적으로 보장해주고 있는 셈이다.

이에 아동 인권단체들은 지난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민법 915조는 때려서라도 가르칠 수 있다는 잘못된 사회적 인식을 뒷받침한다"고 지적하며 민법 제915조 조항을 삭제하는 것이 아동을 동등한 인격체로 보는 출발점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사실 지난해 5월 정부도 ‘포용국가 아동 정책’으로 ‘부모의 자녀 체벌 금지’를 들고 나오면서 민법상 징계권 조항의 개정 의사를 내비친 바 있다. 우리의 시간을 돌려보면 훈육이라는 명분 아래 사회는 아이의 체벌에 관대했고 또 그런 사회적 인식에 노골적인 아동학대조차도 용인되어 왔던 건 사실이었으니.

조선 풍속도 화가 김홍도의 ‘서당’이 훈육=체벌이라는 오랜 사회적 인식을 말해주고 있다는 것도 모두가 아는 사실이고. 더욱이 뛰어난 문장에 ‘삼십절초(三十折楚)’ 또는 ‘오십절초(五十折楚, 회초리가 30개 혹은 50개가 부러져야 그같이 뛰어난 문장을 쓸 수 있다는 뜻)라고 했을정도이니 우리의 훈육방식에 체벌이 관대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에 정부는 아동체벌에 대한 국민인식을 바꾸고자 민법 제915조 조항의 징계라는 용어를 바꾸거나 아예 체벌 금지 조항을 추가하는 방안을 논의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까지 법 개정안은 마련되지 않은 채 의견만 분분히 엇갈리고 있다.

더욱이 일각에서조차 부모가 제 자식교육을 위해 회초리를 든다는데  정부가 나서서 관섭하고 금지조항을 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비판의 여론까지 일고 있어 개정안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특히 '매를 아끼면 자식을 버린다'는 옛말을 무시하고 아동인권만을 강조해 학교에서조차 교사들이 학생을 눈치를 살피느라 인성교육이 땅에 떨어졌다는 지적이 상당해 개정안이 마련되어도 그 실효성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현재 세계 54개국의 나라에서 친권자의 징계권을 법적으로 보장해주고 있는 국가는 우리나라와 일본뿐, 굳이 사랑의 매를 들지 않아도 아이를 양육하는 데는 문제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18년도 기준 아동학대 사망사례는 총 28건으로, 전체 아동학대사례 중 약 0.1%를 차지했다.

특히  아동학대 행위자가 부모인 경우가 매년 70% 이상 나타났다.이 가운데 사망사례 피해아동은 남아 15명(53.6), 여아 13명(46.4)이며 사망사례 피해아동의 연령은 만 1세 미만  10명(35.7%)으로 가장 높았다. 게다가  2018년 아동학대 사례로 판단된 2만4604건 중 1만9748건(80.3%)은 가정 안에서 발생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아동학대가 사회 표면으로 드러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니 이도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즉, 자식은 부모의 소유라는 생각에서 아동학대에 그저 방관하고 쉬쉬했던 것이 지금의 문제를 키우지 않았겠냐는 얘기이다.

처음 아동학대가 사회 이슈로 불거진 것은 1998년 4월에 모 방송의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한 영훈이 남매 사건이었다. 당시 6세였던 영훈이는 6살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영양 상태가 형편없는데다 등에는 다리미로 지진 화상 자국이 남아있었다.

뿐만 아니라 발등은 쇠젓가락으로 인해 퉁퉁 부어있었으며 위에는 위액이 남아있지 않았다. 영훈이의 누나 역시도 부모에게 학대당하다가 굶어 사망해 마당에 암매장되었다. 

또 2013년 울산에서는 초등학생이 계모와 친부에게 맞아 갈비뼈 16개가 부러져 숨졌고, 칠곡에서는 계모에 의해 아동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때서야 정부는 부랴부랴  아동 학대 특례법을 제정하여 처벌과 신고 의무를 강화하도록 했고 2015년에 인천에서 아동학대를 받던 소녀가 죽기 직전에 간신히 탈출하는 사건을 계기로 장기 결석 아동의 실태 조사에 들어갔다.

어쨌거나 아동학대문제가 사회 표면으로 드러나 개정안을 요구할 수 있게 된 만큼 사회 각 층에서는 아동의 복지와 안전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할 때라고 생각한다. 특히 지금까지의 훈육과 관련한 사회적 인식도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고. 

10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 부모들과 교육자들에게 사랑을 받은 시 ‘아이들은 생활 속에서 배운다(Children Learn What They Live)’의 저자 도로시 로 놀테는 자신의 시를 통해 “야단을 맞으며 자라는 아이들은 비난하는 것을 배우고, 두려움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불안과 두려움을 배운다”라고 역설했다.

문득 꽃으로도, 풀잎으로도 때리지 마라는 한 영화인의 말이 새삼스럽게 마음에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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