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보수 외길
하태경의 활약
한국당과 개혁보수 불가능해
그런데 왜 한국당?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보수통합론이 강하게 일고 있다. 자유한국당과 새로운보수당 중심으로 흩어진 보수 정당 및 세력들이 뭉쳐야 한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에 맞서서 총선에서 의석을 충분히 확보하지 않으면 다 죽는다는 위기감이 있다. 

그런데 70년 동안 한국 정치를 지배해온 보수 세력이 통합을 하지 못 해서 위기를 맞았을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사람들은 유승민 의원만 생각하지만 사실 유 의원은 그렇게 자주 미디어에 노출되지 않았고 사실상 하태경 새보수당 책임대표가 3년 동안 개혁보수란 무엇인지 그 방향성에 대해 여러 메시지를 내놨다. 

박효영 기자

하 대표는 2016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국정농단 정국 때 청문회에서 맹활약하고 공공연히 탄핵 찬성표를 던지겠다고 선언했을 만큼 개혁보수의 기치를 내걸고 지금까지 버텨왔다. 바른정당을 만들고, 집단 탈당 사태가 이어지고, 국민의당과 합당해서 바른미래당을 창당하고, 손학규 대표와 갈등을 맺다가 변혁(변화와혁신을위한 비상행동)을 결성하고, 바른미래당을 나와 새보수당을 창당했다. 일련의 과정은 이른바 개혁보수 실험의 기간이었고 나름 3년을 버텨냈다.

하 대표는 현재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 ‘북한 짝사랑’이라고 비판하고 있지만 2017년과 2018년에는 그렇지 않았다. 미국과 북한이 서로 말폭탄을 주고 받던 2017년 9월6일 문재인 대통령이 러시아에 방문해 푸틴 대통령에게 대북 원유관 폐쇄, 북한 노동자 수입 금지를 말하는 등 강경 노선을 걸었고 비슷한 시기 송영무 전 국방부장관이 전술핵 재배치까지 검토하겠다고 하자 하 대표는 문재인 정부가 대북 강경책도 구사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면서 “보수의 입장을 수용했다”고 인정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로 인해 온국민이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던 2018년 하 대표는 바른미래당 내 바른정당계 의원들과 달리 일명 ‘평화보수론’을 제창하면서 △히틀러에 속은 네빌 체임벌린 전 영국 총리를 거론하는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 반박 △대신 믿어주되 검증하라는 레이건 모델 부각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한 및 국회 연설 주장 △보수의 관점 변화 촉구 등 새로운 안보론을 내세웠다. 

하 대표는 무엇보다 한국당이 없어져야 한국 보수가 살 수 있다면서 매섭게 비판해왔는데 구체적으로 △반공 색깔론(빨갱이 장사) △꼰대적 태도 △무조건적인 반대 등에 대해 선을 그어왔다. 

특히 발목 야당을 탈피하겠다면서 문재인 정부가 잘 하는 것은 도와줘야 한다는 자세를 견지했다. 예컨대 작년 7월11일 일본 정부가 한국에 수출한 반도체 부품소재가 북한에 넘어가 전략 무기 제조에 악용된다고 주장하자 하 대표는 오히려 일본 정부가 불화수소, 불화나트륨 등 북한 핵개발이나 생화학무기에 사용될 수 있는 전략 물자를 밀수출해왔다는 점을 폭로했다. 문재인 정부에 큰 도움이 됐다.

6일 뒤 하 대표는 진보 언론 한겨레에 기고문을 싣고 “야당 국회의원이기 전에 대한민국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선택이 필요했다”며 “문재인 정부의 외교 실책과 무능을 비판하는 게 능사가 아니었다. 국난 시기에 취해야 할 행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 안보에 투철하고 위기 앞에서 누구보다 앞장서 헌신하는 진짜 보수가 필요했다”고 밝혔다. 

안티 페미, 기무사 계엄령 획책을 폭로한 군인권센터 공격, 정의당 맹비난, 선거제도 개혁 반대 등 진보진영으로부터 미움받기 좋은 하 대표지만 적어도 그가 진영논리에 묶여있기 보다는 자기 이념과 소신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런 하 대표는 지금 한국당과 통합해서 보수 신당을 만들고 싶어서 초심을 완전히 잃었다. 유 의원이 표방한 보수 재건 3대 원칙(탄핵 수용/개혁보수 천명/한국당 해체 및 보수신당 건설)에 대해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공개적으로 수용해달라고 요구했으면서도 오직 대리인 수용 방침만을 믿고 보수통합 작업에 돌입했다. 새보수당으로 이어지기까지 인고의 시간을 함께 보낸 7명의 현역 의원들(유승민·이혜훈·정운천·오신환·지상욱·유의동·정병국)은 하 대표를 통해 보수통합에 힘을 싣고 있는 모양새다.

보수통합을 위한 혁신통합추진위원회(혁통추)가 국회 밖에서 만들어졌고 박형준 전 동아대 교수(이명박 정부 청와대 정무수석)가 위원장을 맡았다. 혁통추는 새보수당을 끌어들이기 위해 3대 원칙을 포함해서 6대 원칙(자유와 공정 추구/청년 가치 강조/문재인 정권에 반대하는 모든 중도보수 세력 규합)을 보수통합의 방향으로 설정했다.  

물론 잡음이 들리고 있다. 

새보수당은 혁통추와는 별개로 한국당과 당대 당 통합을 위해 ‘양당 협의체’를 구성해서 논의하고 있고, 혁통추는 이를 비판적으로 보는 눈치라 혁통추와 새보수당 사이에 갈등 조짐이 일고 있다. 새보수당은 겉으로는 3대 원칙만 수용된다면 공천 지분도 포기하겠다고 공언했지만 한국당과 1대 1로 통합 담판을 해야 최대한 지분을 많이 챙길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한국당 내부에 친박계 의원들의 반발 조짐 및 반 유승민 정서로 인해 황 대표가 양당 협의체를 부담스러워 하고 있고 혁통추를 통한 보수 빅텐트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종류의 잡음은 충분히 예상됐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사실 황 대표가 공개 기자회견을 열어서 3대 원칙을 수용한다고 밝힌 것도 아니고, 최고위원회의에서 의결된 것도 아니고, 의원총회에서 당론으로 결정된 것도 아닌데 한국당이 개혁보수를 할 것이라고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오직 대리인(혁통추에 참여한 이양수 한국당 의원)의 수용 방침만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결국 하 대표가 개혁보수의 길이 너무 고단해서 한국당이 3대 원칙을 수용하든 안 하든 최대한 보고싶은 것만 보고있는 것은 아닐까. 정당에게 ‘세력’과 ‘가치’가 있다고 했을 때 총선을 앞두고 후자를 팽개치고 전자의 측면에서 욕심이 난 것이 아닐까. 

관련기사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