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본주의자 혹은 르네상스맨…‘GQ’ 이충걸을 수식하는 방법
인본주의자 혹은 르네상스맨…‘GQ’ 이충걸을 수식하는 방법
  • 우정호 기자
  • 승인 2020.01.21 16: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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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우리의 특별함'
에디터, 편집장 이충걸
인본주의자 혹은 르네상스맨
이충걸 GQ코리아 초대 편집장 (사진=사진가 나승열)
이충걸 GQ코리아 초대 편집장 (사진=사진가 나승열)

[중앙뉴스=우정호 기자] 남성지 ‘GQ(Gentlemen's Quarterly)’의 한국판 GQ는 2001년 창간한 이래 20여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국내 남성들의 스타일을 비추는 거울이자 품격과 매너를 말하는 교보재였다.

실제로 ‘GQ KOREA’ 창간 이후, 늘어나는 독자의 수에 비례해 한국 남성들의 스타일에 관한 인식도 빠르게 바뀌었다. 같은 색, 같은 재질의 블랙 재킷도 핏에 따라 어떻게 다른 외용이 생기는지, 셔츠 스트라이프 두께나 색감은 어떤 다양성을 만드는지, 사회적 담론에 왜 귀 기울여야 하는지, 겉 꾸미는 데만 치중하고 안쪽 채우는 걸 도외시하면 어떤 결핍이 생기는지, 자리에 따라 어떤 매너를 갖추어야 하는지 인식하는 남성들도 늘었다.

이러한 국내 남성들의 ‘스타일’에 관한 인식 변화의 중심에, ‘GQ KOREA’ 창간부터 18년간 편집장을 지낸 이충걸이 있다. 잡지 시작을 알리는 ‘에디터스 레터’ 끝머리에 ‘편집장 이충걸’이라고 적힌 서명은 고등학생이라도 압도감에 머릿속에 이름을 새길 정도였다.

지난 1월 8일 출간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우리의 특별함’은 이충걸이 18년 간 잡지 첫머리를 쓴 글 ‘에디터스 레터’를 엮은 산문집이다. 패션, 건축, 문학, 사회, 미술, 음악, 스포츠에 이르는 전 방위 분야에 대한 시각을 따뜻하면서 냉철하고, 유려하면서 정돈된 이충걸 특유의 언어로 담아냈다. 그리고 며칠 뒤 이충걸을 만났다. 유파가 없는 글쓰기를 ‘발명’한 기묘한 작가를.

이충걸 신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우리의 특별함' (사진=우정호 기자)
이충걸 신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우리의 특별함' (사진=우정호 기자)

신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우리의 특별함'

“아침에 식탁 의자에 앉아 있는데, 의자 네 다리 중 한쪽이 빠지는 바람에 손 쓸 새도 없이 확 쓰러졌어요. 그러면서 머리를 ‘쾅’ 부딪히는 바람에 그 몽롱함이 아직까지 이어지는데 와인까지 한잔해서 너무 좋아요.”

한남동 리움 근처 어느 모던한 불고기 집에서 그는 18년 동안 패션계 최전선에서 편집장 자리에 있던 사람이라고 믿기 힘든 소년 같은 얼굴로 말했다.

먼저 누구도 알아줄 만큼 특별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우리의 특별함’ 표지에 관해 물었다. 이충걸은 “사람들이 표지 그림과 제가 닮았다고 얘기하는데 정말 그래 보이나요?” 라고 되물었고, 나는 “서투른 듯 노련한 얼굴이 닮았다”고 대답했다.

“몇 년 전 뉴욕 출장 갔을 때, 화랑이 밀집한 첼시를 둘러보았어요. 작가와 관계성을 지닌 사람과 사물을 그리는 ‘클로데트 스뢰더르스’의 전시에서 ‘Boy'를 보았어요. 무표정한 얼굴에 넥타이를 멘 얼굴이 어쩐지 저의 어린 버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세우지 않는 무표정의 정서랄까.”
이충걸은 벌써 두 잔째 붉은 포도주를 부딪쳤다.
“서재에 걸린 ‘Boy’는 어떤 감흥도 없이, 무미건조한 자부심에 차서 날 지켜보고 있었죠. 이 그림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우리의 특별함’의 표지로 하고 싶어 그림이 걸린 서재 풍경을 찍어서 작가에게 보냈어요. 그림이 소실점인 것처럼 그림을 향해 서가가 복도처럼 도열한 풍경을.”

그리고 클로데트 스뢰더르스는 아주 ‘경제적인’ 비용으로 소년을 표지로 허용했다. 작가 주변에 중첩된 또 하나의 관계 속에서 그를 닮은 채 하얀 셔츠를 입은 소년을.

책은 8개의 챕터로 구성돼 있다. 건축, 패션, 스포츠, 문학, 사회로 편리하게 구분돼 있지 않다. 첫 번째 챕터 주제는 ‘과잉’이었다. 이 제목으로 묶인 글들을 ‘스스로의 안쪽을 과잉되게 표현한 글들’로 이해해도 좋으냐고 질문했다.

“과잉의 뉘앙스가 있죠, 분명. 예를 들어 ‘행인들’ 챕터는 타자의 시선으로 비껴선 채 다른 사람들의 삶에 개입하지 않으려는 시각을 드러냈고, ‘반란’ 챕터는 내부에서 끓어오르는 힘. 하지만 너무 거칠거나 직접적이지 않은 메시지가 담겼다고 할 수 있죠.”
그가 쓴 ‘에디터스 레터’는 패션지 편집장에 대한 선입견을 부수듯 패션, 건축, 문학, 사회, 미술, 음악, 스포츠, 인간관계를 망라한 전방위적 분야를 다루었다.
“패션 언어는 복식만 내포하고 있지 않아요. 사실 패션 자체가 문명의 근원이잖아요. 패션은 정치, 시대의 트렌드, 민중의 생각, 그 세대의 사조까지 다 담고 있기 때문에 무엇이 비싸고 안 비싸고, 바지 밑단이 넓고 좁고의 문제가 아니라 세속적인 모든 요소를 포괄하죠. 저는 제가 생각하는 패션의 정의에 합당하도록 글을 썼을 뿐이에요.”

그가 18년 간 쓴 글은 524페이지의 지면도 모자라 보인다. 실제로 그는 글의 상당부분을 덜어냈다. ‘비대한 산문집’을 염려한 출판사 측과 분량에 관해 지속적으로 논의했고, 더 이상 다이어트 할 수 없는 순간, 그는 담당편집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책이 두꺼운 건 18년 세월이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충걸은 성균관대학교 건축공학과 전공을 배경으로 도시 생태학을 지속적인 컨텐츠로 다뤘다. 이와 관련된 내용 중 특히 이명박 전 서울시장,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서울을 덜 세련되게 만들던 시기에 그들을 향했던 세련된 비판이 눈에 띄었다.

“사람들마다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형상이나 가치가 다르죠. 그러나 자꾸 손을 대면 예뻐진다고 생각하는 건 미신이에요. 그냥 놔둬서 아름다운 것들이 존재하잖아요.  빗물에 부식된 창틀조차 가만히 보면 그 자체의 미감과 조형이 있단 말이에요. 그런데 창틀을 바꾸고 페인트 칠을 하는 것이 개선된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하는 미신이 횡행하는 거죠.”

“도시는 한번 손을 대면 옛날로 돌아갈 수 없단 말이에요. 전 그것에 대해 너무 애타는 마음이 있는데 어느 위정자가 그것에 대해 숙고하나요? 토목 정권의 시절에는 토목의 널뛰기가 거의 성황당 같았죠. 왜 자꾸 광화문을 손대는 거죠? 도로 한가운데를 석재로 구획시켜놓으면 그게 광장인가요? 저는 누군가 제가 보내는 메시지를 수신해서 조금이라도 정책에 반영하길 바라는 얕은 마음이 있었어요.”
‘에디터스 레터’는 GQ 독자들에게 하는 얘기였다. 작가는 ‘포용력 있으면서 복잡한 성격이야 말로 쉽지 않은 세월 속에서 내가 독자에게 구했던 것’이라고 책에서 말했다. 독자들이 이 책을 어떻게 봐주길 바라는지 물었다. 적어도 ‘서른이 넘어서도 그 나이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는 사람들’은 아닐 것 같다고 생각하며.

“저는 이 책의 어떤 의도 때문에 사회가 달라진다는 생각은 안 해요. 그럴 수 없죠. 저는 이 책이 독자에게 유형이 다른 글쓰기에 대한 하나의 참조 사항이 되면 그걸로 족해요.”

에디터, 편집장 이충걸

18년. 국내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한 매체의 편집장을 지낸 경우는 드물 것이다. 에디터스 레터 중 ‘잡지는 무엇인가’에 따르면 이충걸 GQ코리아 초대 편집장은 ‘잡지는 당장이 아닌 내일에 속한 세계이고 종이는 더 이상 저널리즘을 생산하는 정확한 매체가 아니다’라고 했다. 평소의 유연한 태도를 봤을 때 그가 시력의 절반을 잃지 않았다면 잡지 시장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면모를 꿈꾸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종이 잡지의 황혼에서 마지막 춤사위를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어떤 조류 속에서 언제부턴가 애착이 느슨해지는 시점이 왔죠. 물론 관습적으로는 계속해도 잘했겠죠. 그런데 시각장애자 판정을 받고 나니 전 존재가 허물어졌어요. 계속 다치고 부딪히고. 지금은 옛날만큼은 아니지만 그땐 너무나 고통스러웠어요. 엄마하고 앉아있다가 제가 그랬어요. ‘엄마, 이 가슴살을 뜯고 싶어. 너무 답답해. 그렇다고 엄마가 뭘 어떻게 해주겠어요?”

이충걸의 지난 인터뷰 중 ‘자존심을 잃으면 기자는 용역이 된다’는 부분은 여전히 뇌리에 박혀있다. 자존심 없는 기자들이 그것이 ‘현실’이라며 자위하는 세상에 18년간이나 그는 자존심을 지켰다. 정말이지 궁금했다. 무엇이 그의 자존심을 만든 걸까.
“그건 실력이죠. 실력도 없으면서 자존심만 내세우면 그 사람의 가치는 뭐가 될까요? 내가 책도  못 들고, 에디터들에게 방향성도 주지 못한다면 자존심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이충걸은 GQ 집장 이전에 ‘행복이 가득한 집’,과 ‘보그’ 에디터를 거치는 동안 당대 인사들을 인터뷰하며 ‘국내 최고의 인터뷰어’라는 수식을 달기도 했다. 인터뷰 집이 따로 출간될 정도로. 서정적이고 깊은 자의식에 초점을 맞춘 그의 인터뷰는 팩트 전달이 인터뷰어의 역할이라는 공식을 무너뜨렸다.

“매체 성격에 따라 인터뷰이에게 원하는 건 다르죠. 내가 사회부에 있다면 팩트를 원하겠지만, 패셔너블하면서도 문화적 속성이 있는 매체는 팩트가 아니라 팩트를 둘러싼 서정적 외피, 마음의 풍경이 중요해요. 주저하거나 찡그리는 즉각적 표정만으로도 그 사람을 짐작할 수 있잖아요. 그 반응이 들려주고자 하는 진실이 있겠죠. 저는 말하고 싶었으나 말할 수 없는 진실의 메가폰이 되고 싶었어요, 그것에 대한 소량의 만족도 있었고요. 동시에 잡기  힘든 신들을 포착해 문자로 변환하는 재능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에디터와 편집장은 역할이 다른 만큼 자아를 드러내는 방식도 다를 것이다. 어느 쪽을 더 선호하는지 물었다.

“편집장. 수월하다기보단 기질에 맞았어요. 어렸을 땐 난 편집장 못할 줄 알았어요. 무한책임을 지는 게 싫었죠. 근데 편집장이 되어선 책 전체의 목표, 방향, 색채를 컨트롤 할 수 이었어요. 내 성격을 투사한 GQ를 만들 수 있었죠. 외국에서도 한국 GQ가 갖는 이질적이되 특별한 부분에 대한 존중감이 아주 컸어요. 미국 GQ 발행인은, 보그, GQ, 뉴요커, W, 베니티 페어를 가진 문화의 루퍼트 머독인데, 한국 GQ가 세계 최고라고 했죠. 그럴 때마다 ‘나는 이미 알고있다’고 대답했고요.”

‘GQ’는 2000년대 중반 한국의 평균적인 남성이 스타일을 최초로 갖도록 한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래서 가장 초보적인 질문을 했다. 남성에게 스타일은 왜 중요한가.
“한국말에 ‘겉볼안’이라는 말이 있어요. 스타일은 그 사람의 양식을 드러내죠. 양식이란 그의 지적인 배경이자 시대를 보는 태도잖아요. 남자들 옷차림이 뭐가 중요해? 하는 사람과는 친구 아니어도 괜찮아요. 인간이 되는 세속적 가치를 도외시 하는 사람과는. 그럼 벗고 다니라지.”

인본주의자 혹은 르네상스맨

이충걸이 GQ를 통해 얘기한 건 스타일이나 패션만이 아니다. 그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인본주의’라고 느꼈다. 그는 “인본주의란 정서이자 태도라고 말했다. “상식적인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건 도저히 바꿀 수 없는 사회 구조가 아니라 일상에서 부딪히는 매너의 문제예요.”
그는 작년 12월 이태원 ‘16P’라는 문화공간에서 시인이자 에디터 이우성의 진행으로 펼쳤던 ‘행복론’을 들려주었다. 18년 동안 어쩌면 그의 모든 것이었을 GQ를 떠난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니.
“제가 행복한 이유는 하루 중에서 내가 나를 행복하게 할 것들만 골라서 향유하기 때문이에요. 오전 11시에 혼자 어슬렁거리며 공원길을 지나 영화관에 가서 관객 다섯 명만 보는 영화를 보고, 근처에서 너무 훌륭한 ‘치레’ 커피를 마시고, 집에 와서 읽고 싶었던 책을 공들여 읽고, 엄마와 얘기하고, 저녁이 오면 와인 마시고, 약속된 글을 쓰고, 소설집도 준비하는 동안 행복한 것만 해요. 행복에는 현실적인 방법이 중요해요. 커피를 마시는 건 욕구가 아니라 구체적인 행위거든요.”

작가는 엄마에 관해 두 권의 책을 냈고, 에디터스 레터에도 엄마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종종 등장한다. 어느 한 순간도 특별하지 않은 인생을 사는 그에게 그의 어머니가 요구하는 덕목은 ‘평범’이었다고 한다.

“내가 뭘 해도 엄마가 이렇게 말하셨어요. 좀 보통으로 살아라. 엄마가 저를 기를 때 제일 괴로워했던 건 내가 너무 싫어하는 게 많다는 거에요. 지금도 마찬가지고. 엄마가 정한 규율 대로 살지 못하는 건 제가 못돼서가 아니라 스타일 문제일 뿐이에요. 나의 모든 주장이 엄마가 볼 때는 규율에 거스르는 것이었을 테고, 그 때문에 내가 마이너가 되길 원치 않으셨겠죠. 모두에게 속한 안전한 구역에서 내가 서식하길 바라셨겠죠. 하지만 내 가치가 통념과 다르다고 내가 파괴적인 사람은 아니잖아요.”

작가가 에디터 시절 첫 인터뷰이로 인연을 맺은 연극배우 박정자와는 세대를 뛰어넘는 우정을 간직하고 있다. 2월 6일부터 16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되는 박정자의 배우론 ‘노래처럼 말해줘’를 포함, ‘11월의 왈츠’ ‘내 사랑 히로시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이멜다 마르코스의 항변’ 같은 희곡은 모두 박정자하고만 작업했다.

“그분은 항상 나에게 ‘니가 써줘’ 하고 말씀하셨어요. 다른 사람에게 ‘나를 나보다 잘 아는 사람’으로 소개하곤 하셨죠. 90년 1월에 처음 인터뷰한 이후 그녀의 무대를 다 보았고, 희노애락을 같이 나눴고, 그녀의 슬픔과 언짢음을 다 목격했으니까 그렇지 않을까요? 참 경이로워요. 희곡 극작의 배경이 없는 채로 이때까지 당대 최고의 연극배우하고만 작업했다는 게. (그가 95년에 쓴 11월의 왈츠’는 압구정동 실험극장에서 8개월 간 매진사례를 기록할 정도였다)”

‘갖고 싶은 게 너무나 많은 인생을 위하여’라는 책을 출간할 만큼 쇼퍼홀릭이었던 그는 그러나 지금 물욕이 엄청나게 줄었다고 말했다.

“나는 너무 많이 가졌어요. 안경도. 시계도. 티셔츠도. 코트도, 스웨터도, 신발도, 바지도. 어떤 걸 걸쳐서 멋져지느냐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되었어요. 사람들에겐 자기가 얼마나 많이 가졌는지 놀라는 순간이 올 거예요. 이런 얘길 하면 이멜다 마르코스가 웃겠지만.”

인터뷰 내내 프랭크 시나트라의 목소리가 은은히 들렸다. 와인 두 병을 다 비우고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 비로소 'My way'가 흘렀다. 조금 상투적이지만 그야말로 적절하게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우리의 특별함’ 저자 이충걸.

이충걸은 ‘행복이 가득한 집’, ‘보그’ 에디터를 거쳐 ‘GQ KOREA’ 초대 편집장으로 18년 간 일했다.

저서로는 첫 소설집 ‘완전히 불완전한’을 비롯, 인터뷰집 ‘해를 등지고 놀다’, 산문집 ‘어느날 엄마에 관해 쓰기 시작했다’, ‘갖고 싶은 게 너무나 많은 인생을 위하여’, ‘슬픔의 냄새’, ‘엄마는 어쩌면 그렇게’를 썼다.

또, ‘11월의 왈츠’, ‘노래처럼 말해줘’, ‘내 사랑 히로시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같은 연극 대본도 썼는데 모두 배우 박정자와 작업했다.

격월간 소설잡지 악스트(Axt)에 중편 소설 세 편을 연재했고, 2월 6일부터 13일까지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되는 박정자의 연극 ‘노래처럼 말해줘’ 대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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