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맨 지역의 아덴만에서 호르무즈까지
파병 반대가 상수지만
미국과 이란 다 고려
미국으로부터 얻어야 할 것 많아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문재인 정부가 이란과의 긴장 고조로 인한 미국의 파병 요구에 곤혹스런 입장이었는데 그 해법으로 ‘독자 파병’을 결단했다. 국방부가 예맨 지역의 아덴만에 파병나가 있는 ‘청해부대’를 호르무즈 해협에까지 확장하는 방식으로 독자 파병을 결정한 것이다. 한미동맹은 물론 이란과의 외교적 관계 더 나아가 남북관계까지 염두에 둔 절충적인 조치라고 해석된다.

국방부는 21일 오전 이미 파병 중인 청해부대의 커버 구역을 기존의 아덴만 일대에서 오만만과 아라비아만 일대까지 확대한다고 선언했다. 명분은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한국인과 한국 선박을 보호한다는 것이다.

국방부가 21일 오전 호르무즈 해협 일대로 청해부대의 독자 파병을 결정했다. (사진=연합뉴스 및 해군작전사령부)

당장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자국의 민간 선박이 이란으로부터 공격 타겟이 될 수 있어서 공동방위를 위해 IMSC(국제해양안보구상) 등을 부각하면서 동맹국들의 동참을 압박하고 있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외교안보 참모들의 조언을 듣고 결단을 내렸다.

항상 그래왔듯이 미국의 파병 요구는 한국 정부가 거부하기 마련이지만 무엇보다 호르무즈 해협 자체가 두바이유를 비롯 한국으로 수입되는 원유의 70% 이상이 지나가는 곳이라 애써 무시하기도 어려웠다. 국방부는 이란이 미국 선박만 계속 노리고 있는 것도 불안하지만 오인 공격을 통해 우리 선박이나 우리 선원이 피해를 입을 경우에도 대비한다는 계획이다.

문 대통령은 2003년 故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의 요청으로 이라크 파병을 고심할 때 청와대 민정수석으로서 만류했던 바 있다.

구체적으로 2011년 출간된 <문재인의 운명>이란 자서전을 통해 “(미국-이라크 전쟁이)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보기도 어렵고 파병했다가 희생 장병이 생기게 되면 비난 여론을 감당하기 어렵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는데 실제 진보적 시민사회에서는 그 어떤 형태의 파병에도 반대하는 기조가 강하다. 미국의 패권적 움직임에 따른 파병은 더더욱 맹렬한 반대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이날 신년 기자회견 자리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원래 청해부대의 연장동의안을 작년에 승인할 때는 해적 퇴치의 목적이었다”며 “만약 청해부대를 호르무즈로 파병하는 취지로 배치하는 것은 이란과 적대하는 것이라 동의하기 어렵다. 또 파병 목적이 변동되는 것이라 반드시 국회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종대 정의당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사실상 새로운 파병을 국회 동의도 없이 파견 지역 확대라는 애매하고 부정확한 절차를 통해 감행하는 정부의 행태는 매우 위험하다”며 “오히려 호르무즈 해협 파병으로 우리 상선과 군에 심각한 피해가 있을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어 “유사시 IMSC의 군사적 지원을 받기 위해 연락장교를 파견하겠다는 등 (우리의 군사작전상) 협조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순수한 독자적 임무수행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청해부대 파병은 국회의 비준권을 보장하는 헌법 60조를 위반하는 것이다. 정의당은 국익과 안전을 위협하는 파병에는 단호하게 반대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기존의 아덴만 구역에서 호르무즈 해협까지 맡게 된 청해부대. (그래픽=연합뉴스)

사실 이란도 이란인데 미국으로부터 얻어내야 할 게 많은 우리 정부 입장에서 카드를 하나라도 더 구축할 필요가 있다. 즉 파병은 아무리 미국이 요구해도 반대가 상수인데 일단 해주는 것으로 결정하면서 뭔가 지렛대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작년 내내 ‘일본 문제’로 문재인 정부의 걱정이 컸을 때 한일 지소미아 폐기(GSOMIA/군사정보보호협정)의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역으로 대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 등의 의제에서 지렛대로 활용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청해부대의 독자 파병을 철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만들어놓고 △남북 간의 독자적인 교류(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북미관계 타개책(부분적 제재 완화 또는 종전선언) 등을 은근히 압박할 수 있는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 그런 목적이 있었다는 워딩을 공식적으로는 절대 줄 수 없겠지만 이러한 셈법이 없지는 않은 것으로 읽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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