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측근까지 다 결별
‘임재훈’과 ‘장진영’마저
무너진 교섭단체 지위
왜 손학규는?
청년 정치세력과의 연대도 어려워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말 그대로 바른미래당은 폭망했다. 바른미래당의 대주주였던 안철수·유승민 두 정치인의 이탈 이후에도 손학규 대표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구성하거나 뭔가 조치를 취하지 않자 최측근까지 하나 둘 그의 곁을 떠나고 있다. 

가장 먼저 전날(3일) 탈당을 예고한 이찬열 의원이 4일 아침 입장문을 내고 “오늘 바른미래당을 떠나 동토의 광야로 떠나겠다. 피도 눈물도 없고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비정한 정치판이지만 의리와 낭만이 있는 정치를 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제 한계인 것 같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1998년 한나라당 소속 경기도의원으로 당선돼 정치권에 입문했고 2009년 손 대표의 지지를 얻고 재보궐 선거를 통해 국회에 처음 입성했다. 손 대표를 따라 2016년 10월 더불어민주당에서 탈당했고 2017년 2월 국민의당에 입당했다. 누가 봐도 손학규계 정치인이지만 그런 이 의원마저 손 대표를 떠났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 의원은 곧 자유한국당에 입당할 예정이다. 

작년 12월12일 경기도 수원시 아주대병원 별관 대강당에서 열린 故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영결식에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이찬열 의원이 나란히 참석했다. (사진=연합뉴스)

바른미래당은 당적만 묶여있는 4명(박주현·장정숙·이상돈·박선숙)을 포함 겨우 원내 교섭단체 20명을 채우고 있었는데 △호남계 4명(김관영·김동철·박주선·주승용) △안철수계 7명(권은희·김삼화·김수민·김중로·신용현·이동섭·이태규) △당권파 3명(채이배·임재훈·최도자) △손학규계 1명(이찬열) △기타 수도권 1명(김성식) 등이다. 

현재 권은희 의원은 라디오를 통해 탈당 의사를 밝혔고 호남계 4명도 마찬가지다. 안철수계 비례대표 6명은 이미 ‘안철수신당’에서 각각 역할을 맡기로 했고 바른미래당 당헌당규상 셀프 제명을 통해 의원직을 유지한채 탈당할 것으로 보인다. 정책위의장직을 내려놓은 채이배 의원도 손 대표 위주의 당에 미련을 버린 듯하고, 당 수석대변인을 맡고 있는 최도자 의원이나 김성식 의원의 거취는 아직 미정이다. 

당장 이 의원의 탈당으로 바른미래당은 교섭단체 지위(20석)가 붕괴됐다. 따라서 국고보조금과 선거보조금으로 곧 지급받게 될 125억원 규모의 재정도 35억원 수준으로 급격히 줄게 됐다.

손 대표는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 불참하는 등 당무를 거부한 △김관영 최고위원(지명) △주승용 최고위원(지명) △임재훈 사무총장 △장진영 당대표 비서실장 △이행자 사무부총장 등 그야말로 손 대표와 가까웠던 측근들을 무더기 해임했다. 이 사무부총장은 곧바로 탈당계를 제출했다.

임 사무총장은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와 손 대표가 끝내 결별 수순을 밟게 됐을 때 공개적으로 손 대표가 당을 수호하느라 노고가 많았다는 점을 치하했을 만큼 최측근 당권파 인사다. 

하지만 그런 임 사무총장마저 4일 18시 페이스북을 통해 “허상을 쫓아 과도한 정치적 회생을 도모하려고 하는 것은 욕심이다. 당내 중지를 모아 다소의 시간을 드린 만큼 마지막 순간까지 거대 양당의 폐해를 견제할 제3당 재건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나와 당 재건을 위해 혼신을 다해온 중진들을 내쳐서 손 대표가 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은 다시 토담집으로 가는 길밖에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임재훈 전 사무총장은 손 대표의 측근으로 그동안 손 대표를 옹호해왔지만 끝내 해임됐다. (사진=박효영 기자)

장 비서실장도 22시 페이스북에서 “차마 월요일(3일) 아침 최고위회의에는 참석할 수 없었다”고 운을 뗐다. 

장 비서실장은 1월31일 금요일부터 소속 국회의원들의 탈당 러시가 현실화되고 있음을 감지하고 손 대표에게 3일까지 거취 표명을 해야 한다고 고언했다. 탈당 →교섭단체 붕괴 →비례대표 의원들의 셀프 제명 →더욱 허수아비가 될 손 대표의 처지 등 이렇게 펼쳐질 상황이 눈에 뻔히 보였다. 

장 비서실장은 “당대표께서 나의 노력을 당권 투쟁으로 규정했다”며 “깊은 유감을 표한다. (교섭단체 붕괴로) 90억원 가까운 국고보조금 손실은 염려에서 현실이 되고 말았다. 내가 제안했던 청년지원프로젝트인 다윗 공천에 쓸 재원이 모두 날아간 것”이라고 허망한 마음을 드러냈다. 

이어 “손 대표께서 그간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면서 지킨 당과 손 대표를 위한 나의 충정임을 언젠가는 이해하리라 믿는다. 그저 그날이 하루라도 속히 와서 당이 재기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양당제에 염증이 난 국민들에게 제대로 된 선택권을 드리기 위해 제3지대에서 계속 노력하겠다”고 공언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손 대표의 비서실장으로서 충정을 보인 장진영 비서실장. (사진=박효영 기자)

손 대표는 다시 말을 잘 듣는 원외위원장들을 주요 당직에 앉히고 최고위를 정상화시킬 예정이고 5일 최고위회의에서 입장을 표명할 계획이다. 여러 주체들이 다양한 방식(전당원 재신임투표/사퇴/혁신위원회 전권 부여/비상대책위원회 체제 등)으로 물러나라는 취지로 요청했지만 모두 거부한 손 대표였기 때문에 바로 사퇴 의사를 표명할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손 대표는 지난 2017년 국민의당 대선 경선에서 패배한 뒤 같은 해 연말 바른정당과의 통합 국면에서는 원론적인 지지만 표명했지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그러다가 2018년 지방선거 시즌이 한창이던 5월3일 안 전 대표의 요청으로 바른미래당 중앙선거대책위원장으로 추대됐다. 이후 9월2일 당대표로 선출됐다. 

당대표 수락 연설에서 손 대표는 ①당의 통합(우리 안의 진보보수·영호남·계파 등 모든 이분법 극복) ②정파의 통합(모든 정당들과 개헌 프로세스 논의하고 선거제도 개혁 달성) ③국민 통합(정부여당의 나만 옳다는 오만과 독선이 국민을 분열시켰고 이를 극복) 3가지를 공언했지만 결과적으로 뭐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게 됐다. 

당내 정치에서 처절하게 패배했더라도 2018년 연말 단식을 감행해서 선거제도 개혁에 기여하긴 했다. 하지만 그 선거제도 개혁도 준연동형 캡 비례대표제로 누더기적인 것에 불과하고 개헌은 시작도 못 했다. 

이탈리아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 

현실 정치와 권력게임의 교과서로 알려져 있는 이탈리아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1469~1527)’는 16세기 초반 수많은 소국들로 분열돼 있는 이탈리아의 상황에서 정치와 ‘종교 및 도덕’을 분리해야 한다고 천명했다. 또한 권력의 효율성을 극대화한 통치술을 정리했다. 

손 대표는 마키아벨리적이지 못 했다. 예컨대 △2019년 초 당내 노선 투쟁에서 유승민계를 제압하거나 화합하지 못 했고 △4.3 재보궐 선거에서 판세를 읽지 못 하고 출마를 강행하고 스스로 올인했다가 처참하게 패배하고 권위를 실추했고 △물밑 정치를 통해 유승민계를 통제하지 못 한 상태에서 공개적으로 모욕을 당했고 △패스트트랙 정국 때부터 안철수계 의원들의 신뢰를 잃었고 △안 전 대표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지 못 했고 △마지막으로 최측근의 마음까지 잃었다.  

현재 남아 있는 바른미래당 당직자들은 손 대표에게 당 정상화를 촉구하고 나섰다. 

당 사무처 부서장들은 성명서를 내고 “당대표가 당의 화합 속에 작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정상화해줄 것을 요청한다”며 “당대표가 살신성인으로 이뤄낸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마저 당의 분열과 갈등 앞에서는 총선 승리에 기여할 수 없다는 것이 자명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손 대표가 이들의 집단 행동이 가시화되면 또 숙청의 칼을 휘두를지 아니면 어떤 묘안이라도 내놓을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그나마 청년 정치세력에게 당권을 내놓고 뒤로 물러서는 시나리오가 유력해 보이는데 쉽지 않다. 이미 언론에 거론된 3개 청년 정당은 △시대전환(조정훈·이원재 공동대표) △미래당(오태양·김소희 공동대표) △뉴파티(조성은 창당준비위원회 위원장) 등인데 어느 곳 하나 손 대표와 물밑 협상이 잘 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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