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출마 선언도
공천, 지분, 당권 요구 안 해
무급 당직자 고용승계
어차피 2022년 대선에 대항마로 호명될 것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역사상 최초로 보수 정당의 본류에서 벗어나 개혁보수를 천명했던 ‘바른정당’이 창립된지 3년만(2017년 1월24일)이고 ‘새로운보수당’으로 당명을 정한지 60일만(2019년 12월12일)이다. 결국 여기까지였다.

유승민 새보수당 의원이 9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새로운보수당과 자유한국당의 신설 합당을 추진하겠다”며 “나의 제안에 대한 한국당의 답을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명분은 “국가를 거덜내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 단일대오로 대항해야 한다는 보수통합론의 구태 방정식이었다. 

유 의원은 “대한민국을 거덜내고 있는 문재인 정권의 폭주를 막기 위해 보수는 합치라는 국민의 명령을 따르겠다”며 “보수가 힘을 합치고 다시 태어나 총선과 대선에서 권력을 교체하고 대한민국을 망국의 위기로부터 구해내라는 국민의 명령을 따르겠다”고 강조했다.

유승민 의원은 한국당과의 합당을 선언했다. (사진=연합뉴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이날 오후 출마선언을 했던 지역구인 서울 종로구의 ‘젊음의 거리’에서 기자들과 만나 유 의원의 최종 입장에 대해 “이런 것 하나하나를 모아 모멘텀 삼아 문재인 정권과 싸워 이기는 자유우파가 되도록 단합하고 통합해야 한다”며 “똘똘 뭉쳐 문 정권 심판에 기여해야겠다”고 말했지만 언제 만날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보수적 유권자들 중에서는 확실히 다 합치라는 여론이 다수인 게 사실이다. 하지만 중도와 무당층을 포함한 전체 유권자에서는 한국당이 아닌 개혁보수의 길을 개척해보라는 여론이 더 우세하다. 진영논리가 판치는 한국 정치권에서도 진보진영 인사들은 누구나 클리셰적으로 건강한 보수의 필요성을 말하곤 하는데 그만큼 절대 다수의 국민들은 한국당의 보수 대표성에 의문을 갖고 있다.

유 의원이 이날 기자회견에서 공식화 한 핵심 요지는 아래와 같이 4가지다. 

①새보수당과 한국당의 합당 추진 및 한국당의 답변 요청
②불출마 선언
③보수재건 3대 원칙(탄핵 수용/개혁보수 천명/한국당 해체 및 보수신당 건설) 반드시 수용
④새보수당 당직자 고용 승계 보장

②에 대해 유 의원은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건 나 자신을 내려놓는 것뿐”이라며 “보수가 힘을 합치라는 국민의 뜻에 따르겠지만 그와 동시에 개혁보수를 향한 나의 진심을 남기기 위해 오늘 나는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보수가 힘을 합쳐서 개혁보수를 향해 나아가는데 나의 불출마가 조금이라도 힘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108석의 한국당은 강성 반문(문재인 대통령) 기조에만 올인할 뿐 변한 게 하나도 없다. 유 의원 개인의 희생을 드러내 보이는 것은 좋지만 이로 인한 한국당의 개혁보수적 환골탈태는 전혀 보장될 수 없다. 무조건 반대, 반공 색깔론, 시장 지상주의(민부론), 강자나 부자 편에 서있는 이미지 등 한국당의 속성은 황교안 대표 체제 이후 더욱 오른쪽으로 가고 있다. 특히 이미 대구로 출마선언을 했던 유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했다고 해서 정치적 희생으로만 해석되지 않을 소지가 있다.

정국진 다준다 청년정치연구소 연구위원은 유 의원의 기자회견 직후 기자와의 SNS 대화를 통해 “(2022년 5월 대선) 그때까지 통합당에서 힘을 기르겠지. 수도권에선 인기있는 지원 유세자가 될 거고”라며 “유 의원이 봐도 황 대표로는 총선 승리를 못 할테고 유 의원은 총선 패배 책임에서 자유롭고 스스로를 희생한 것처럼 보이는 게 가능하고 그러면 기회가 온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무엇보다 유 의원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한국당 내 강성 친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반발을 최소화하려는 유 의원의 의도도 엿보인다. 

정 위원은 “한국당 내 비토 여론이 높은 본인이 불출마를 하는 대신 7인(하태경·이혜훈·정운천·오신환·지상욱·유의동·정병국)의 공천을 실질적 보장받고 본인은 2022년 대선을 바라보고 있으니 의원직 없어도 큰 무리가 없다”고 관측했다. 

장고 끝에 합당과 불출마를 선언한 유 의원. (사진=연합뉴스)

이미 현 상태의 한국당으로는 안 된다는 판단을 해서(물론 컷오프 등 공천을 못 받을 것이 두려워서 그랬을 가능성이 있지만) 불출마를 선언한 한국당 의원들도 9명(한선교·김세연·김영우·여상규·김도읍·김성찬·윤상직·유민봉·최연혜)이나 된다. 김무성 의원은 일찌감치 불출마 선언을 했다가 호남 험지 출마를 고심 중이다. 부산 금정구에서 3선을 한 김세연 의원이 한국당 해체를 주창하고 불출마를 공언한 만큼 유 의원의 불출마가 유일한 희소성으로 부각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③과 관련 유 의원은 “합당이냐 독자노선이냐를 두고 고민이 가장 깊었던 점은 바로 개혁보수의 꿈이었다”며 “한국당은 변한 게 없는데 합당으로 과연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합당 결심을 말씀드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솔직히 이 고민이 내 마음을 짓누르고 있음을 고백한다”고 털어놨다.

유 의원은 “탄핵을 인정하고 탄핵의 강을 건널 때 비로소 보수는 정당성을 회복할 수 있다”며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해야만 보수는 문재인 정권의 불법을 당당하게 탄핵할 국민적 명분과 정치적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 껍데기만 남은 낡은 집을 허물고 튼튼한 새 집을 지어야만 보수의 미래를 펼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3원칙 중 으뜸은 바로 개혁보수의 정신”이라며 “진정한 보수는 원칙을 지키되 끊임없이 개혁해야 한다. 개혁보수는 한국 보수정치가 가야만 할 결국 갈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길이다. 낡은 보수의 부끄러운 과거에 대한 진지한 반성 위에 헌법 가치를 지키고 시대정신을 추구해서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하는 것이 개혁보수가 해야 할 일”이라고 밝혔다.

유 의원에 따르면 개혁보수의 내용은 △경제와 안보를 튼튼히 수호 △정의로운 사회와 따뜻한 공동체 건설 △자유·평등·공정·정의·인권·법치 등 민주공화국의 헌법가치 온전히 수호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9년+야당이 된 3년간의 보수정치 모두 개혁보수라고 볼 수 없음 등이다.

②과 함께 유 의원은 “공천권, 지분, 당직에 대한 요구를 일절 하지 않겠다”며 “3원칙만 지켜라! 내가 원하는 건 이것 뿐이다. 3원칙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믿어보겠다”고 밝혔다.

다만 유 의원은 희생했던 동지들을 위해 ④을 요구했다. 

유 의원은 “공천권도 지분도 당권도 요구하지 않지만 합당 이후 보수신당의 새 지도부에게 유일한 부탁을 하나 하고 싶다”며 “새보수당에는 개혁보수의 꿈과 의지만으로 수 개월째 한 푼의 급여도 받지 못 하고 성실하게 일해 온 중앙당과 시도당의 젊은 당직자들이 있다. 이들이 보수의 승리를 위해 함께 일할 수 있도록 고용승계를 간절히 부탁한다”고 요구했다. 

유 의원은 당직자들의 고용승계를 한국당에 요구했다. (사진=연합뉴스)

김현동 새보수당 대변인은 페이스북을 통해 “유 의원의 불출마 선언과 신설 합당 추진 선언은 개인적인 나의 바람과 반대되는 두 개의 결정”이라며 ④에 대해 “지지자가 가지는 바람의 무게와 지도자가 내리는 결정의 무게는 많이 다를 것이다. 여러 미사여구와 메시지 보다도 내 눈에 들어왔던 것은 아래의 구절이었다. 비판은 잠시 접어두고 이 결정까지 얼마나 고민하셨을까 생각해본다”고 밝혔다. 

이어 “물론 내가 언론과 방송 등에서 이야기했던 이 상태로 합당하면 나부터 지지철회를 한다는 결심에 변함이 없다”고 공언했다. 

새보수당 8인의 의원들 사이에서도 고민과 갈등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2017년 10월~11월 바른정당 내부에서 자강파와 통합파가 극심한 의견 충돌을 일으켰을 때와 같다.

하태경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유 의원이) 보수통합을 절대 반대한다거나 당내 유 의원의 탈당을 압박하는 목소리가 있다는 등 유언비어가 돌고 있으나 모두 사실무근임을 알려드린다”고 환기했으나 내부적으로는 실제 그런 목소리가 나왔을 가능성이 높지만 그걸 공식 입장으로 일치시켜서 발표할 수 없다는 속내로 읽혀진다.

끝으로 유 의원은 “(보수신당의) 공천은 오로지 개혁보수를 이뤄낼 공천이 되기를 희망할 뿐”이라며 “도로친박당 도로친이당(이명박 전 대통령)이 될지 모른다는 국민들의 우려를 말끔히 떨쳐버리는 공정한 공천, 감동과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는 공천이 되어야만 한다”고 설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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