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가는 한국③]노인일자리 늘어도 정작 내겐 어려워, “폐지라도 주워야...”
[늙어가는 한국③]노인일자리 늘어도 정작 내겐 어려워, “폐지라도 주워야...”
  • 신현지 기자
  • 승인 2020.02.12 16: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복지 사각지대의 폐지 줍는 노인 해마다 늘어
11일 文 대통령 “고용 연장 본격적으로 검토 시작할 때...노인일자리도 확대”
폐지 줍는 노인의 마당에 고물이 가득 쌓여있다. 노인은 가격이 오르기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했다(사진=신현지 기자)
폐지 줍는 노인의 마당에 고물이 가득 쌓여있다. 노인은 가격이 오르기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했다(사진=신현지 기자)

[중앙뉴스=신현지 기자]한국 사회의 급속한 고령화에 2004년 정부는 ‘저출산 고령 사회 기본법’을 제정하고 이를 적극 추진해왔다. 특히 노인의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위한 노인복지 정책 일환으로 2020년 현재까지 노인일자리 사업을 국가와 지방 자치 단체를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다.

올해만도 정부는 노인일자리를 지난해 61만개에서 올해 74만개로 늘렸다. 이 가운데 73.4%에 해당하는 공익활동형 일자리 54만3000개가 노인들에게 주어졌고 노인 일자리 사업 예산으로만도 총 1조 2천15억 원이 확대됐다.

그러나 이 같은 정부의 대폭적인 노인일자리 지원에도 혜택을 받지 못한 채 폐지를 줍는 노인들이 매년 늘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여기에 관련한 공식적인 자료조차 나온 게 없다.  단, 지난 2018년 국회 김순례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각 지자체에서 파악한 폐지줍는 노인 현황은 1만9,623명 중 남자는 6,641명, 여자는 9,376명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65세 이상은 6,489명, 75세 이상은 1만569명, 85세 이상은 2,601명으로 집계됐다. 생활수준별로는 국민기초생계급여수급자가 2,842명, 차상위계층이 2,031명, 일반인이 1만1,162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와 관련하여 본지는 12일 서울 중심의 한 골목을 취재에 나섰다. 겨울답지 않게 포근한 날씨지만  비가 내려 폐지 줍기에 어렵지 않을까 싶었는데 대로변을 벗어난 동네 골목에는 리어카에 폐지를 가득 실은 노인을 여기저기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반면, 골목을 오가는 주민들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신종 코로나 공포 여파인 듯 했다. 그러니 마스크 착용도 없이 리어카를 끄는 노인들의 모습에서 생활고의 실상은 어느 때보다 크게 와 닿았다.

비가 오는 속에도 폐지 줍는 노인의 손은 바쁘기만 했다 (사진=신현지 기자)
비가 오는 속에도 폐지 줍는 노인의 손은 바쁘기만 했다 (사진=신현지 기자)

그런데 노인들의 인터뷰 요청은 쉽지 않았다. 폐지 주워서 먹고사는 게 뭐가 자랑이냐며 손을 내젓거나 얼굴을 붉혀 버럭 화를 내기도 했다. 아니면 말을 붙여도 아무런 대답 없이 앞을 지나치거나 너무 많은 연세에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물끄러미 바라보는 모습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취재에 어려움을 겪은 뒤에야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김 노인 (83세)을 취재에 모실 수 있었다. 물론 처음엔 김 노인도 손을 내저으며 말을 꺼리는 눈빛이었다. 다행히 미용실 앞 자판기 커피를 함께 나누고 나서는 조심스럽게나마 폐지 줍는 속내를 털어내었다.

자식이 있어 노령연금 수급자에서 밀려...폐지라도 주워야

“아들이 알면 나 혼나, 자식 망신시킬 일 있냐고 난리야, 우리 딸도 그렇고. 그런데 지들이 돈을 대주기나 하면서 그리 말하면 야속하지나 않지. 어렵게 키워 놓으면 다 지들 잘라서 그리 사는 줄 알고 부모 보기를 지들 키우는 강아지만큼도 생각 안하는데, 하긴 우리집만 그러나 요새 세상에 늙은 부모 생각을 몇이나 하겠어.” 라며 입을 뗀 노인은 이 일도 경쟁자가 많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걸 줍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일찍 나와야 하루 4천원 벌까 말까 해. 더구나 폐지값이 엄청 떨어졌어, 전에는 1킬로에 120원까지 주었는데 지금은 40원이야. 그러니 리어카로 가득 실어가도 4~5천원이 나올까 말까해. 그래서 다들 새벽 6시도 안돼서 나와. 어떻게든 한 리어카를 채워야 돈이 되니까. 그런데 오늘은 비가 오니, 비에 젖으면 제 가격을 안 쳐주어.  그래도 놀면 뭐해, 집에 있으면 아프기만 하고, 이렇게라도 돌아다녀야 신문 한 장이라도 줍지. 오밤중에 나와서 돌아 댕기는 노인들도 많아”

폐지가 비에 젖지 않게 덮게를 씌운 채 처마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모습(사진=신현지 기자)
폐지가 비에 젖지 않게 덮게를 씌운 채 처마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모습(사진=신현지 기자)

리어카에 비닐을 덮어씌우고도 안심이 안 된다는 듯 앞뒤로 리어카를 다시 손보는 노인은 노령연금 수령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자식들이 있어서 받지 못한다고 했다. “지하방 18만원 월세주고 아프면 병원도 다녀야 하고, 밥도 먹어야 하고, 그런데 우리는 자식이 있다고 안줘, 우리보다 잘사는 노인들은 다 노령연금이 나오는데 우리에게는 해당이 안 된대.

노인일자리도 어렵고. 젊어서 우리 영감님은 미장일을 했어, 그런데 나이를 먹으니 병만 들고 아무 쓸데가 없어, 작년에 내가 요양원에 보냈어. 내가 보살피기가 너무 힘이 들어서. 그러니 거기도 한번 씩 찾아갈려면 돈이 필요한데. 이거라도 줍는 게 나한테는 도움이 되는 거야.”

비가 잠시 주춤하자 서둘러 리어카를 챙기는 김 노인을 뒤로 하고 모퉁이를 돌아오자 이번엔 허름한 주택가 대문 안에 산더미처럼 쌓여진 폐지와 대문 밖 리어카 위로 헌 옷 등을 내 걸고 있는 노인이었다. 노인의 표정을 보니 역시 말붙이기 쉽지 않을 듯 보였다. 그런데 슬쩍 쳐다보고 서 있으니 어디 구청에서 나왔느냐고 먼저 말문을 열어보였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입을 만 한데도 그냥 다 버려, 그러면서 돈이 없어 사네 못사네 하고.  내가 골목골목 댕기면서 다 챙겨왔어. 이것 봐 바, 어디 구멍이라도 하나 난데가 있나, 이렇게 멀쩡한데 벌 받으려고 원 쯧쯧...” 리어카 위에 옷들을 가리키며 혀를 차는 노인은 아마도 마당에 주워놓은 폐품 때문에 주위에 민원이 제기되었던 모양이었다.

마당의 내 물건 때문에 구청에서 나오지 않았나 놀랐는데 아니면 됐다며 스스럼없이 대화에 응했다. 그런데 뭔가 불만에 가득 찬 목소리였다. “남들은 쓰레기라고 하는데 나한테는 자들이 다 돈이여, 더구나 내 집 마당에 놓았는데 왜 상관들을 하는 것인지 몰라. 도와주는 것도 하나 없는 것들이, 도둑질을 하는 것도 아니고 남이 버린 고물 주워 모은 게 뭐가 어쨌다고.”

노인은 비가 오는 것도 아랑곳없이 모아둔 폐비닐을 리어카에 쌓아 올리며 계속 화가 난 목소리였다. "재산이라고는 이 집 하나인데 집을 팔아야 돈이 나오던가 뭐가 나오지, 집이 있다고 나는 아무것도 안 나와, 일자리도 없고, 그러니 폐지라도 주워야 먹고 살지.”

노인주택연금 알지만, 남편이 남겨주고 간 집은 죽을때까지 내가...

그런 노인에게 노인주택연금에 대해서 설명하려니 더는 들을 필요 없다는 듯 대뜸 손부터 내저었다. “나는 늙어 죽을 때까지 가지고 있다가 저승에 갈 때 노자로 가져갈 거야. 우리 남편이 이 집을 어떻게 마련한 것인데” 그러면서 더는 귀찮게 하지 말라며  어서 가보라는 손짓이었다. 그 손짓에 떠밀리다시피 자리를 뜨려는데 “고물 값이 떨어져도 턱없이 떨어져 비쌀 때 팔려고 모아두었더니 웬 것들이 와 시비를 건다.”고 투덜거렸다.

그렇게 그곳을 벗어나 다음 골목을 들어서자 리어카 위로 누군가 버린 싱크대 판을 힘겹게 주워 올리는 노인이었다. 비가 제법 쏟아지고 있는데 노인 역시 비는 아랑곳없다는 모습이었다. 잠시 말을 건네니 의외로 순수하게 말을 받아주는 모습이 수더분해보였다.

(사진=신현지 기자)
(사진=신현지 기자)

17살에 임실에서 올라와 작년 7월까지 공장에서 용접공으로 일했다는 이 아무개 노인(70세)이었다.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부터 내보이던 이 노인은 “이거 가져가봐야 얼마나 하겠어, 이 싱크대는 알루미늄도 아니고 반은 스텐이라 돈도 안 돼, 그래도 나왔으니 한 리어카는 해가야 받아주니 이것저것 다 주워 채우는 거야.”라며 오늘은 5천원 벌이는 됐다는 웃음이었다.

그런 이 노인은 아내가 아파트 공사판에서 벌어서 먹고 사는데 그사람 미안해서 폐지를 줍는 것이라고 했다. 노인 역시 정부가 마련한 노인일자리는 차지가 돌아오지 않아 누군가에게 부탁을 해놓은 상태라고. 노령연금 역시 국민연금 30만원을 타고 있어 타지 못한다고도 했다.

30만원 국민연금에 정부의 노령연금은 제외...그래도 정부 돈 축내지 않으니 괜찮아

남은 다 타는 노령연금인데 욕심이 생기지 않느냐는 말에는 “정부돈 축내지 않으니 좋은 거지, 정부가 노인들에게 주는 돈 다 세금으로 걷어주는 것인데, 나 하나라도 입을 덜어야지”라며 웃었다. 집은 장만 하셨냐니, 다행스럽게 집이 있기는 한데 정말 거지같은 집이라고. 그러면서 작년까지 다니던 직장이 망하지만 않았다면 나이 80이 되어도 기술이 있으니 나는 다닐 수 있었는데 직장이 망해서 나오게 되었다며 아쉬운 표정이었다.

“요새는 공장도 모든 것이 컴퓨터로 하는 세상이니 중소업체 공장은 버티지를 못해, 그러니 노는 사람들만 많아지고, 노인일자가 많아졌다고 해도 정작 신청하면 나 같은 사람은 쉽지 않고, 작년에도 떨어졌는데, 그래서 올해는 아는 이에게 부탁을 해놨는데 어째 아직까지 연락이 없어, 거기라도 댕겨야 집사람 보기도 편하고 형편도 좀 나아질 것인데, 곧 소식이 오겠지 뭐”그러면서 이 노인은 리어카를 끌고 빗속을 멀어져갔다.

한편 문 대통령은 지난 11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의 ‘확실한 변화, 대한민국 2020! 더 좋은 일자리, 반등을 넘어 체감으로’를 주제로 열린 일자리 정책 관련 업무보고에서 여성의 경력단절 예방 대책과 노년층 일자리를 강조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노년층 일자리와 관련해선 “올해 노인 일자리 사업은 더 확대된다. 어르신들께는 일하는 복지가 되고. 또 더 늦게까지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것”이라며 “고용 연장에 대해서도 이제 본격적으로 검토를 시작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고 노인 일자리 사업 확대 방침을 언급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